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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사진관] 목욕 여인 훔쳐보기, 베낀 듯 같은 두 그림.

중앙일보

입력

'에르미타시 박물관전'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주제는 '겨울궁전에서 온 프랑스 미술'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시 박물관은 프랑스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프랑스 미술품을 소장한 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다. 예카테리나 2세를 비롯한 로마노프 왕조의 황제들과 귀족, 기업가들이 열정적으로 수집한 결과다.

이번 전시회는 2016년 에르미타시 박물관에서 열린 '불꽃에서 피어나다. 한국도자명품전'의 교환전시다. 니콜라 푸생,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 클로드 모네, 앙리 루소 등 프랑스 거장들의 작품 89건이 전시된다. 모처럼 눈 호강을 할 기회다.

위 그림은 장레옹 제롬의 '고대 로마의 노예시장'이다. 노예 상인이 군중들에게 여자 노예들을 보여주고 있다. 피 정복지 주민을 잡아 와 노예로 부리는 것은 고대 로마의 일상이었다. 오른쪽 검은 옷을 입은 여인과 네 아이는 일가족으로 보인다.

'안나 오블렌스카야의 초상'. 에밀 오귀스트 샤를 카롤리스뒤랑의 작품이다. 이번 전시회의 포스터에 사용되었다. 작가는 밝은 색채를 통해 인상주의 화가들의 기법을 결합하고자 했다. 작품의 주인공은 국가평의회 의원이자 상원의원인 알렉산드르 오블렌스키 공작의 부인이다.

'작은 동굴 속의 막달라 마리아'. 쥘 조제프 르페브르 작품이다. 르페브르는 로마의 프랑스아카데미에서 수학하며 고전주의 조각상을 연구했고, 주로 신화와 종교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 1876년에 완성된 이 작품에 대해 동시대 비평가들은 성경의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라 경박한 여인을 연상시킨다고 비판했다.

르누아르의 '여인의 얼굴'이다. 여인은 르누아르가 가장 즐겨 그린 소재 중 하나다. 그가 그린 여인들의 신분은 다양했지만 르누아르는 그들을 가족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흐르는 듯한 붓질의 자유로움과 부드러운 색조, 빛과 공기의 효과가 절묘하다.

클로드 모네의 그림 '지베르니의 건초더미'다. 지베르니는 모네가 생애 후반을 보낸 곳으로 수련 연작을 그린 곳이다. 이 작품은 건초더미를 주제로 그린 작품 중 초기 작품과 이후의 연작 사이에 있는 작품이다. 능숙한 솜씨로 구름 낀 하늘과 바람이 부는 가운데 지평선이 밝아오는 순간을 포착했다.

장바티스트 파테의 '목욕하는 여인들'이다. 우아한 분위기와 인물들의 화려한 복장, 경쾌한 색조의 작품이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림의 아랫부분만 잘라서 보면 더욱 그렇다.

신윤복/ 단오풍정/ 지본담채/ 28.2*35.2cm/ 간송미술관

신윤복/ 단오풍정/ 지본담채/ 28.2*35.2cm/ 간송미술관

바로 이 그림이다.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
여인들이 물가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파테의 그림과 매우 흡사하다. 물이 흐르는 방향, 인물들의 방향과 자세, 나무의 위치까지 비슷하다.

특히 사내들이 여인들을 훔쳐보는 모습은 베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프랑스 화가, 조선의 화가가 똑같은 짓을 하는 두 사내를 똑같이 그렸다.

파테(1695~1736)는 18세기 전반기, 혜원 신윤복(1758∼?)은 후반기를 살았는데 두 나라에서 거의 같은 분위기의 그림이 그려진 것이 신기하다. 파테의 작품 설명에는 "목욕하는 여인들을 훔쳐보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들을 좋아했던 당시 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되어 있다.
두 그림을 번갈아 보면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한 것은 18세기 프랑스뿐 아니라 점잖은 조선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장 출구에 걸려있는 작품이다. 베르나르 뷔페의 '겨울궁전'이다. 위 작품들의 고향이다. 베르나르 뷔페는 뚜렷한 윤곽선과 검은색이 주를 이루는 그래피즘(Graphism) 회화를 제작했던 화가다.

이 작품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때 받은 인상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1993년 개인전에서 판매가 되었으나 다시 그려 에르미타시 박물관에 기증했다.

전시는 4월 15일까지 계속된다.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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