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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집사] #5. 집냥이의 중성화수술, 꼭 해야만 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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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보호자님~”

입양을 위해 나무를 포획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간 날, 처음으로 어떤 존재의 ‘보호자’라고 불렸다. 그 자리엔 나무를 나보다 오래 돌봐 온 다른 캣맘들도 함께였고 평생 나의 보호자였던 어머니도 계셨지만, ‘나무 보호자’는 나를 부르는 말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조금씩 나눠 가졌던 책임이 그 순간 오롯이 나에게로 왔다. 집사가 될 준비를 하느라 시간과 돈을 부지런히 들이면서도 체감하지 못했던 사실이 확 와 닿는 순간이었다.

백수진의 어쩌다 집사 #(5) 마이너스x마이너스=플러스

이날 나무는 급식소 앞에서 캣맘들이 준비해 간 분홍색 이동장 안에 제 발로 쏙 들어갔다. 생전 처음 보는 아늑한 집 모양 상자에 홀랑 낚인 것이다. 그대로 약 냄새 나고 강아지들이 왕왕 짖어대는 동물병원에 실려 왔다. 나무 입장에선, 가장 믿고 따랐던 이들이 웬일인지 한꺼번에 나타나더니만 이런 괴상한 공간으로 납치를 해 온 셈이다. ‘세상에 믿을 인간이 하나도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동장 문을 열어줬는데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기만 하는 모습을 보니 분명했다.

나무에겐 미안하지만, 병원은 나와 함께 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아무리 그루밍을 잘해서 외관이 깔끔한 길냥이여도 곧바로 집에 들일 수는 없다. 다른 집고양이나 사람에게 해가 되는 전염병이 있는지, 기생충은 없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곰팡이균의 일종인 피부사상균은 사람에게도 감염이 될 수 있어 검사가 필수라고 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 별다른 질병은 없었다. 다만 귓속에 가려움을 유발하는 진드기가 잔뜩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외 혼합예방접종·광견병접종 등 필요한 예방접종까지 모두 마쳤다.

남은 건 중성화수술이었다. 이건 나무의 입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나무맘1님을 비롯한 동네 캣맘들과 합의를 한 부분이었다. 당시 나무의 묘령이 10~12개월로 추정되었으므로 적기였다. 그런데 나무가 이토록 병원을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니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집냥이에게도 중성화수술이 필수일까? 길냥이 개체 수 조절을 위해 TNR(포획-중성화수술-방생)이 필요하다는 점은 앞서 이해했다. 그런데 무분별한 종족 번식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집냥이도 꼭 몸에 칼을 대야만 하는 걸까? 남들이 할 땐 당연하게만 여겼던 수술을 ‘내 새끼’에게 시킨다고 생각하니 망설여졌다. 아니 그래도, 타고난 신체의 기능을 인위적으로 빼앗아 버리는 건데… 몸에 나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전문가와 집사들의 답은 백이면 백 일치한다. 산이나 들에 사는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묘’라면 중성화수술을 하는 게 오히려 몸에 이롭다는 것이다.

짝을 찾을 기회가 단절된 채 보내는 발정기는 고양이에게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준다. 발정기가 온 고양이는 집 밖의 길냥이 울음소리를 듣고 열린 문이나 창문을 통해 탈출을 감행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유기묘가 되어 길냥이로 살거나, 최악의 경우 교통사고나 낙상사고를 당해 사망할 수도 있다. 사람과 고양이의 안전한 공동생활을 위해서는 적당한 시기(생후 1년 내외)에 반드시 중성화수술을 해줘야 한다.

나무는 그렇게 소중한 신체의 일부를 잃게 됐다. 수술은 순식간에 끝났다. 자궁을 들어내야 하는 암컷과 달리, 수컷의 중성화수술은 ‘땅콩(항문 근처에 있는 둥근 모양의 음낭)’을 잘라내는 게 전부다. 환부를 핥지 못 하게 하는 플라스틱 깔때기를 목 둘레에 완장처럼 두르고, 드디어 나무가 우리 집 문턱을 넘었다.

집으로 들어오며 생각했다. 아마도 나무가 제 발로 이 문턱을 다시 넘어가는 일은 없을 거다. 고양이가 목줄에 적응하고 사람의 손에 이끌려 산책을 나서는 건 아주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집냥이들은 이동장에 실려 병원 나들이를 할 때를 빼고는 대개 평생을 실내에서 지낸다. 너른 공원을 누비던 자유 영혼에서 ‘어쩌다 집냥이’가 된 이 날 하루, 나무는 생식 능력 외에도 많은 것들과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고양이가 인간과의 공존을 위해 많은 것을 잃어버리듯, 사람도 고양이와 살면서 포기하는 것들이 생길 터였다. 그래도 이젠 어쩔 수 없다. 나는 이 노란 줄무늬 고양이와 한배를 탔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를 곱하면 플러스니까, 서로 잃는 게 있어도 함께 하면 무언가 새롭게 채워지겠지. 처음 누워본 내 침대에서 천연덕스럽게 기지개를 켜는 나무를 보고 있으니, 아무것도 겁나지 않았다.

글·그림=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도움말=이리온동물병원 이미경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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