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 내집살이가 전세 첫 추월…부모가 사줘야 결혼?

중앙일보

입력 2018.04.03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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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재영(37·가명)씨는 2015년 결혼하면서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전세를 얻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과감히 ‘내 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비용 부담을 고려해 그가 선택한 건 가격이 3억4000만원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인 주거용 오피스텔이었다. 부부의 저축액 1억2000만원과 양가 부모님들로부터 지원받은 1억2000만원에 1억원 정도의 대출금을 보태 집값을 마련했다.

결혼·내집마련 힘든 사회의 역설

서씨는 “지금이 아니면 집을 살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혼수나 신혼여행 비용을 줄이고 집을 마련했다”며 “아이를 낳은 뒤에도 살 수 있는 집을 가지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규제 강화 소식에 무리해서 산 것”

결혼 후 사글셋방에서 시작해 월세, 전세를 거쳐 자가 주택을 마련하는 수순은 과거 한국 신혼부부의 전형적인 ‘내 집 마련’ 패턴이었다. 고금리, 고속성장 시대였던 만큼 일단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더라도 근검절약해 돈을 모으면 집 한 채 마련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런 패턴, 이미 옛말이 된 듯하다.

자가 주택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신혼부부의 비중이 ‘전세살이’ 신혼부부의 비중을 사상 처음으로 앞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2일 발간한 ‘KOSTAT 통계플러스’ 창간호에 실린 ‘결혼하면 어떤 집에 살고 왜 이사를 할까’ 보고서에 실린 내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결혼 1년 미만 신혼부부의 주거 점유 형태는 자가 비중이 전체의 37.7%에 달해 전체의 35.1%에 머문 전세 비중을 앞질렀다. 2010년과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 중 20%의 표본을 추출해 2010년에만 해도 자가 비중은 32.3%로, 44.1%인 전세 비중에 못 미쳤다. 불과 5년 사이에 세태가 달라진 셈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박시내 통계개발원 통계분석실 사무관은 “2010년과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 중 20%씩의 표본을 추출해 주거 점유 형태 비중을 뽑은 것이라 그 이전의 자료는 가진 게 없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그 이전에는 신혼부부의 자가 비중이 더 낮았을 가능성이 큰 만큼, 이번에 처음으로 자가 비중이 전세 비중을 앞질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거 통계로 본 결혼 트렌드

주거 통계로 본 결혼 트렌드

부모 노후자금 자녀 집 사는 데 보태

결혼 5년 미만 부부들의 주거 형태 조사에서도 자가 비중이 뚜렷하게 높아졌다. 2010년 45.6%였던 결혼 5년 미만 부부의 자가 비중은 2015년 50.6%로 높아졌다. 반면 전세 비중은 같은 기간 33.2%에서 27.4%로 하락했다. 전세로 결혼생활을 시작한 경우라도 되도록 빨리 ‘내 집’을 마련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2013년 결혼한 김민영(34·여)씨가 이런 경우다. 보증금 4억원대의 전세 주택에 거주하고 있던 그는 지난해 말 서울 송파구에 있는 11억원대 주택을 매입했다. 그동안 모았던 2억6000만원에 신용대출로 2억원을, 주택담보대출로 3억원을 빌려 자금을 마련했다. 금리 인상기에 대출을 받는 게 부담이었지만 ‘내 집 마련’에 대한 의욕이 더 컸다. 김씨는 “올해 대출 규제가 심해진다는 소식을 듣고 다소 무리해서 집을 샀는데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예전 ‘결혼 후 집 마련’서 변화 추세

젊은 부부들의 자가 선호 경향이 짙어지는 이유는 뭘까. 결혼과 주거 안정성에 대한 의식과 행태가 변화한 것이 첫 번째 이유로 꼽혔다.

박 사무관은 “과거에는 주거 형태와 관계없이 일단 결혼부터 한 뒤 천천히 집을 마련했다면 최근 세대는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혼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선(先) 결혼→후(後) 주거’에서 ‘선 주거→후 결혼’으로 의식과 행태가 변화한 것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결혼 적령기인 세대가 베이비붐(1955~63년생) 세대의 자녀인 에코 세대라는 사실도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된다. 베이비붐 세대는 경제 발전의 수혜를 입은 덕택에 그 이전 세대보다 비교적 풍부한 노후자금을 확보했다. 자녀가 결혼할 때 주택마련 자금을 일부 지원하는 경향이 강한 이유다. 신혼부부 특별분양 같은 주택지원 정책과 고가의 전세보다는 대출을 얻더라도 자가를 선호하는 주택 수요 패턴의 변화 등도 이유로 지목됐다.

"혼인율 하락은 집 장만 어려운 탓”

뒤집어 보면 집을 마련할 수 없는 처지의 청년들은 결혼을 엄두조차 못 내는 시대가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해 혼인 건수가 4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로 추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26만4500건으로 1974년의 25만9100건 이후 가장 적었다.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은 5.1건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70년 이하 최저치로 추락했다. 이지연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취업난과 함께 주거 문제를 혼인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과장은 “혼인은 독립적인 생계를 전제로 하는데 취업이나 주거 등 여건이 좋지 않아 건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한 청년과 결혼하지 못한 청년의 양극화도 심해졌다는 의미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주택 구입이 결혼의 전제 조건처럼 되면서 혼인 건수 하락, 만혼으로 인한 출산율 하락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하되 임대주택 의무 건축 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전체적인 주택 공급을 늘려야 다양한 소득층의 신혼부부들이 집을 구하기 쉬워진다”고 말했다.

세종=박진석·심새롬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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