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트렌드]196도 타임캡슐 2세의 반쪽 '저축'

중앙일보

입력 2018.04.0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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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자·정자 얼리는 사람들

 박수홍·윤정수(개그맨)·사유리(방송인)·쉬징레이(중국 배우 겸 감독)…. 이들에겐 미혼이라는 점 외에 공통점이 또 있다. 바로 자신의 난자·정자를 얼려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외 미혼 연예인이 난자·정자를 미리 얼려두는 일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난자·정자의 냉동 보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실제로 냉동 보관하는 일반인도 많아졌다. 이들에겐 결혼의 적정 나이란 없다. ‘만혼(滿婚)’이란 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직장인 김정희(여·35·가명)씨는 얼마 전 난임센터에서 자신의 난자 10개를 채취해 냉동 보관했다. 검사·채취 비용을 포함해 첫해에 30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였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김씨는 “보험을 든다는 생각으로 2세 건강에 투자한 것”이라며 “조금이라도 난자가 건강할 때 보관했다가 언젠가 결혼할 때 난임 판정을 받으면 냉동 난자를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처럼 결혼 계획을 세울 수 없거나 남들보다 조금 늦게 결혼하려는 사람은 다른 무엇보다 ‘난임’을 걱정한다. 난임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 노화이기 때문이다. 난임 치료술이 진화하고는 있지만 아직 배우자를 찾지 못한 이들에겐 불안이 엄습할 수밖에 없다. 이들을 위해 난자·정자의 노화 시계를 냉동 기술로 멈출 수 있다.

건강한 난자·정자 냉동은 ‘사회적 동결’

난자·정자 냉동은 본래 시험관아기 시술을 시도하려는 난임 부부, 항암 치료를 앞두고 있는 암 환자, 자궁·고환 같은 생식기관의 수술을 앞둔 환자의 가임 능력을 보존하기 위해 개발됐다. 김자연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 산부인과 교수는 “최근 초혼 나이가 늦어지고 재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건강상 특별한 문제가 없는 사람의 난자·정자 냉동 보관 문의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건강한 사람의 난자·정자 냉동을 ‘사회적 동결’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동결을 선택한 사람은 젊은 시절 그대로의 난자·정자를 냉동 보관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혼 시기에 대한 압박감이나 부담이 줄어든다. 이들은 ‘혼기가 꽉 찼으니 내키지 않더라도 결혼한다’는 생각을 비운다. 그 대신 ‘여유 있는 마음으로 내가 원하는 짝을 찾는다’는 생각을 채울 수 있다. 만혼이란 말이 옛말이 된 셈이다.

 사회적 동결은 미혼 남녀뿐 아니라 이혼 후 새 가정을 찾는 사람, 성전환 수술을 앞둔 사람에게도 인기 있다. ‘돌싱남’(이혼 후 혼자 사는 남성) 박병국(52·가명)씨는 얼마 전 45만원(1년치)을 내고 자신의 정자를 냉동 보관했다. 아직 혼자이지만 빠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엔 짝을 찾아 결혼할 생각이다. 박씨는 “하루라도 젊을 때의 신선한 정자로 건강한 2세를 갖고 싶다”고 밝혔다. 어릴 때부터 동성(同性)을 좋아한 남성 김호군(35·가명)씨는 얼마 전 자신의 정자를 냉동 보관한 뒤 고환(정자를 만드는 기관)을 들어내는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그가 정자 보관을 결심한 이유는‘2세의 반쪽’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김씨는 “아기를 가질 순 없겠지만 정자가 잘 보관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고 말했다.

여성은 만 37세 이전 채취해야

이처럼 다양한 그룹에서 주목 받는 사회적 동결은 시험관아기 시술의 단계 중 난자·정자를 채취하는 과정과 똑같다. 난자·정자의 냉동 보관을 난임센터에서 실시하는 것도 그래서다. 정자 채취는 비교적 간단하다. 정자 보관을 원하는 남성은 병원 내 정자 채취실에서 ‘야동’(야한 동영상)을 시청하면 된다. 보통 발기부터 사정까지 1~10분가량 소요된다.

 이렇게 얻어낸 남성의 정액은 평균 2mL 이상이다. 정액 1mL당 정자가 2000만 마리 이상 들어 있다. 정액량에 따라 최대 4개 바이얼(vial·정액 보관용기)에 나눠 담는다. 김대근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 비뇨의학과 교수는 “정액 검사를 통해 정자의 숫자·운동성·모양 및 염증 여부를 확인한 후 정자를 냉동 보관한다”고 설명했다.

 의학적으로 정자 보관 나이는 젊으면 젊을수록 좋다. 하지만 냉동 정자를 쓰려면 자연임신은 포기해야 한다. 냉동 정자는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 시술을 대비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진규 가천대 길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언젠가 아기를 가질 계획이 있는 30대 후반 또는 40대 이상 중년 남성이라면 정자 보관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권했다.

 난자 채취는 비교적 까다롭다. 우선 생리를 시작한 지 2~3일째 되는 날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 그리고 과배란 주사를 7~10일간 투여해야 한다. 난포가 가장 성숙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수면마취 또는 전신마취 후 난포(난자가 든 주머니)를 채취한다. 사람에 따라 난포가 적게는 1개, 많게는 수십 개 성숙해 있다. 긴 바늘을 난포에 찔러 난포액을 빨아들이는 형식이다. 이 난포액에 난자가 한 개 들어 있다. 난포액에서 난자를 분리해낸 다음 난자 속 수분을 빼는 작업이 진행된다. 전승주 가천대 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경우에 따라 난포에 난자가 없는 ‘공(空)난포’가 있기도 하다”며 “과배란을 유도해 성숙한 난포는 모두 채취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난자의 기능은 20대에 최고 수준을 발휘하다 만 35세 때 크게 떨어지고 다시 만 37세에 급감한다. 따라서 늦어도 만 37세 이전에 난자를 채취하면 좋다.

 채취한 난자·정자에선 냉동 직전 모두 수분을 빼고 동결억제제를 넣는다. 난자·정자 속 수분을 그대로 얼리면 결정체가 뾰족해져 나중에 해동한 뒤 난자·정자가 제 기능을 잃기 쉬워서다. 이 작업을 끝낸 뒤 영하 196도에서 난자·정자를 빠르게 냉동해 보관한다. 사회적 동결의 경우 난자·정자는 법적으로 최대 5년간 보관할 수 있다. 더 오래되면 보관 의뢰자에게 통보 후 폐기 처분한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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