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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수거 대란…2년 전 '경고' 무시하던 환경부 늑장 대응

중앙일보

입력

2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인근 아파트 단지 내 수거되지 않은 재활용품이 쌓여있다. 우상조 기자.

2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인근 아파트 단지 내 수거되지 않은 재활용품이 쌓여있다. 우상조 기자.

정부와 재활용 업체가 2일부터 폐비닐 등을 정상 수거하기로 합의하면서 우려됐던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일단 급한 불은 끄게 됐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재활용 시장 붕괴에 따른 폐기물 처리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뒤늦게 땜질 처방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환경부는 2일 “수도권에서 폐비닐 등 재활용 쓰레기 수거 거부를 통보한 재활용 업체와 협의한 결과, 48개 업체 모두가 폐비닐 등을 정상 수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수도권 일대 아파트 단지들이 “폐비닐 등 분리 배출 대상 품목을 종량제 봉투로 배출하라”고 안내하면서 촉발된 쓰레기 대란 우려는 일단 사라지게 됐다.

그렇다고 재활용 쓰레기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지난 1월 중국이 폐자원 수입 금지 조치를 시행한 이후 불거진 재활용 시장의 위기는 앞으로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상황에 따라 재활용 업체의 수거 거부 품목이 폐비닐을 넘어 폐플라스틱과 폐지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1~2월 폐플라스틱의 중국 수출량은 180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2100t)보다 92%가 급감했다. 폐지의 중국 수출량도 5만1800t에서 3만800t으로 49.6%가 줄었다.
재활용 선별 업체인 금호자원의 안소연 대표는 “여름이 되면 폐비닐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고형연료 공장이 가동을 중지하기 때문에 비닐류의 판로가 더욱 막히게 된다”며 “앞으로는 단지 수거 거부가 아니라 재활용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게 돼 재활용 처리나 가공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전 대책 나왔지만 ‘흐지부지’ 

재활용품 수거업체들이 비닐과 스티로품 수거를 하지 않은 2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인근 아파트 단지 내 수거차량이 비닐과 스티로폼을 수거하지 않은 채 단지를 떠나고 있다.

재활용품 수거업체들이 비닐과 스티로품 수거를 하지 않은 2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인근 아파트 단지 내 수거차량이 비닐과 스티로폼을 수거하지 않은 채 단지를 떠나고 있다.

문제는 재활용 대란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조짐을 보여 왔지만,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본지가 입수한 환경부의 ‘재활용제품 수요창출을 위한 재활용시장 실태조사’ 보고서는 “폐기물 및 재생원료 수출입에 대한 규제 강화 및 정책 변화 등으로 인해 재생 제품에 대한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재활용 시장 붕괴에 따른 자원 낭비 및 폐기물 처리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2016년 환경부가 5000만원의 연구 용역 예산을 투입해 작성했다.

보고서는 재활용 시장의 단기 변동에 대비할 수 있는 예비 기금을 조성하고, 공동주택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또, “동아시아 등 중국 외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업계에서 노력하고 있으나 업계만의 노력으로 한계가 있다”며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선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보고서의 대안 중에서 실제 정책으로 이어진 것은 거의 없다.
당시 연구 책임자였던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당시에도 지방의 일부 업체가 재활용품 수거를 거부하는 문제가 발생, 당시 환경부 차관의 지시로 2016년 7월 보고서가 완성됐지만, 이후 차관이 교체되면서 후속 논의가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뒤늦게 긴급 지원책 내놨지만…

서울시가 환경부의 관리지침에 따라 최근 배포한 분리배출 방법 안내문.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서울시가 환경부의 관리지침에 따라 최근 배포한 분리배출 방법 안내문.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논란이 커지자 환경부는 뒤늦게 재활용 시장 안정화를 위한 대책을 내놨다.
우선, 재활용품으로 수거한 비닐 속 이물질이나 재활용이 어려운 것들이 생활폐기물로 인정되도록 관련 규정을 이달 안에 개정하기로 했다. 지금은 사업장폐기물로 간주해 t당 20만원 이상의 처리 비용이 필요했지만, 생활폐기물로 인정되면 t당 4~5만원 정도로 처리가 가능하다.

또, 폐비닐, 페트병 등 재활용 비용 대비 지원금이 낮은 품목에 대해 생산자의 분담금을 올리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생산자들과 별도 합의가 필요한 데다, 그 효과가 재활용업체에서 선별업체로, 다시 수거 업체까지 가는 ‘낙수효과’를 거두려면 시간이 걸린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중국의 폐기물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서는 이달 중에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겠다는 대책을 내놓는 데 그쳤다.
홍정기 환경부 자연환경정책실장은 “작년에 중국에서 수입 금지 조치가 예고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좀 더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홍수열 소장은 “재활용 시장의 위기는 제품 생산에서부터 쓰레기 분리,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에서 발생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단기 처방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전체 폐기물 흐름과 시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서 이를 선순환 구조로 바꾸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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