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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어도 안된 특수학교, 대구에선 반대 없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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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지역에 들어설 예정인 특수학교 서진학교 설명회 [중앙포토]

서울 강서지역에 들어설 예정인 특수학교 서진학교 설명회 [중앙포토]

"왜 우리 동네에 특수학교를 짓느냐."
"주민 의견을 무시하는 일방적 설명회는 즉각 철회하라."

지난달 26일 서울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 건물에서 열린 특수학교 설립 추진 설명회. 20여 명이 설명회장으로 들어서려는 조희연 서울교육감을 막아섰다. 강서지역 특수학교인 서진학교의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었다. 지난해 9월 '서울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토론회'에서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한 '무릎 엄마'의 사연이 알려졌지만 여전히 주민들의 반대는 거세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8일 서진학교의 개교를 내년 3월에서 9월로 늦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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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대구 달성군 옥포면 강림초에서 신학기를 맞아 열린 '학부모회'. 200명의 학부모가 모여 전국 최초로 달성군에 생기는 문화예술 중점 특수학교 설립 배경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그동안 달성군에는 특수학교가 없어 83명의 학생이 수성구, 남구 등 20~30km 떨어진 학교로 1시간 이상 버스로 통학해왔다. 특히 달성군에서 가장 가까운 달서구 용산동 세명학교는 2014년 25학급으로 개교해 2017년 42학급으로 증설됐지만, 과밀로 인해 2017년 38명의 신입생을 받지 못했다.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을 호소하며 지난해 9월 5일 지역주민 앞에 무릎 꿇은 장민희씨.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고 있다. [중앙포토]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을 호소하며 지난해 9월 5일 지역주민 앞에 무릎 꿇은 장민희씨.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고 있다. [중앙포토]

설명회에선 반대의 목소리나 고성이 오가지 않았다. 이날을 포함해 총 3차례의 설명회가 열렸지만 주민들은 차분하게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구시교육청은 특수학교 설립이 원활히 진행돼 2020년 3월이면 개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강서구와 달리 대구 달성군민들이 특수학교 설립에 공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성귀영 대구시교육청 학교지원과 사무관은 "반대가 있을까 우려했지만 주민들이 특수학교의 필요성을 이해해 줘서 다행"이라며 "달서교육지원청이 특수학교 옆으로 함께 이동하고 새로 짓는 수영장과 소 공연장 등을 공유할 수 있어 특수학교가 지역주민들과 상생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달성군 특수학교는 달성군 경서중학교 부지에 생긴다. 경서중이 2019년 3월 인근 학교로 이전하고 나면 1만8000여㎡ 면적의 터에 300여 억원을 들여 유치원과 초·중·고 25학급(정원 154명) 규모로 지을 예정이다.

대구 달성군에 오는 2020년 3월 개교 예정인 특수학교 조감도. [사진 대구시교육청]

대구 달성군에 오는 2020년 3월 개교 예정인 특수학교 조감도. [사진 대구시교육청]

장애학생들의 예술적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학교인 만큼 대구시교육청은 이 일대를 교육문화복합타운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지역주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수영장, 체육관, 소 공연장 등 다양한 시설도 들어선다. 특수학교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민 접근성과 친화성을 높여 개방형 특수학교로 만들 방침이다.

달서교육지원청이 특수학교 옆으로 함께 옮기면서 질 높은 교육행정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대구시 달성군은 인구 25만 명의 거대 군이다. 지속적인 인구증가로 교육행정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2000년부터 남구에 있는 달서교육지원청을 달성군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부지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진행하지 못했다. 대구시교육청은 지난해 12월 특수학교 설립 승인이 나면서 복합화 시설을 유치하라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 권고사항에 따라 달서교육지원청까지 함께 이전하기로 했다. 달성교육지원청 옆에 교육지원센터·주민복지시설도 생긴다.

전문가들은 특수 학교 설립은 상생모델이 답이라고 말한다. 홍정숙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는 "물론 지역마다 집값, 문화 인프라 등에 차이가 있지만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도 특수학교와 지역사회의 상생이 일어났다"며 "강남 밀알학교가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2015년 서울 강남구 ‘밀알학교’의 북카페를 이웃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 학교가 들어서려 하자 상당수 주민들은 "집값 떨어진"“며 반발했다. 하지만 체육관과 미술관, 음악홀 등을 개방한 이 학교는 ‘주민 사랑방’이 됐다. [중앙포토]

2015년 서울 강남구 ‘밀알학교’의 북카페를 이웃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 학교가 들어서려 하자 상당수 주민들은 "집값 떨어진"“며 반발했다. 하지만 체육관과 미술관, 음악홀 등을 개방한 이 학교는 ‘주민 사랑방’이 됐다. [중앙포토]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97년 개교한 밀알학교는 발달장애 아동이 다니는 특수학교다. 밀알학교 설립 당시 주민은 물론 구청장까지 나서 반대했다. 주민들이 막아서 포크레인 등 공사장비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개교 후 학교 1층 미술관에서 매월 전시회를 열고 카페를 운영하며 체육관을 지역주민을 위한 행사장으로 제공하면서 밀알학교는 더는 특수학교가 아닌 주민 전체가 이용하는 복합문화공간이 됐다.

홍 교수는 "주민들이 장애인과 시설을 공유하면서 막연한 두려움이나 편견이 깨지고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달성군도, 다른 지역에서도 특수학교가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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