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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정시 확대' 논란에 분노 후폭풍 "교육부 폐지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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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추진 교육부 입시정책 논란  

밀실에서 이뤄진 교육부의 갑작스러운 대학입시 정책 변경에 교육 현장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꾸준히 수시를 확대해온 교육부가 갑자기 주요 대학에 정시 확대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다. 무엇보다 2020학년도 대입전형이 불과 1년 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부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로 학생·교사·학부모의 불안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 올해 고3 학생이 치르는 입시에서 수시 모집인원은 76.2%, 정시는 23.8%다.

교실에서 수능 문제집을 풀고 있는 수험생들. [중앙포토]

교실에서 수능 문제집을 풀고 있는 수험생들. [중앙포토]

문제의 시작은 지난달 30일 박춘란 교육부 차관이 주요 대학 총장들과 정시 확대 방침을 논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박 차관은 주요 사립대 총장들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해 정시 모집인원 확대 방안을 문의했다. 실제로 이날 서울 9개 대학 입학처장들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틀 후인 지난 1일 연세대는 “정시 모집인원을 늘리겠다”는 2020학년도 입시 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또 각 대학에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의 세부사항을 안내하면서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물론 교육부가 정책을 변경할 수는 있다. '깜깜이 전형'으로 불리는 학생부종합전형을 폐지하거나 그 대신 정시와 수능을 늘려달라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문제는 국가교육회의 출범, 정책숙려제 도입 등 유난히 소통을 강조해온 교육부가 대학입시처럼 중요한 정책을 변경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대학입시는 한국에서 가장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3년 전 주요사항을 예고하게 돼 있다. 그런데도 총장들에게 직접 전화해 정책 변경을 논의한 것은 현장 의견을 무시한 처사이다”고 말했다.

박춘란 교육부 차관. [중앙포토]

박춘란 교육부 차관. [중앙포토]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학사모) 대표도 “이해 당사자인 학생 의견을 듣지도 않고 덜컥 현재의 고2 학생부터 입시정책을 바꾼다고 하니 어느 학부모가 화가 나지 않겠느냐”며 “말로는 소통을 강조하면서 정작 누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입시정책의 주요 당사자인 학생·교사·학부모에 대한 ‘패싱’ 논란이 일자 주말 동안 학교 현장에선 교육부를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교육부를 폐지해 달라’거나 ‘김상곤 사회부총리를 교체해달라’는 등 교육당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청원 게시판의 한 네티즌은 “3년 예고제는커녕 하루가 다르게 오락가락하는 교육부를 폐지해 달라. 선거 앞두고 정시를 늘리겠다며 입장을 바꾼다. 내일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본질적인 문제는 교육부의 오락가락 행보가 주요 사안마다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턱대고 정책을 추진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 여당이 나서 견제를 하고, 결국엔 정책을 유보하거나 철회해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수능 절대평가 전환이나 올 초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한 여당 관계자는 “민감한 사안일수록 사전 논의가 많아야 하는데 현재의 교육부는 당과 의견 조율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일각에선 이번 조치가 수시와 정시의 성격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주석훈 서울 미림여고 교장은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없애고, 특기자 전형 등을 축소해 정시 인원을 늘리는 건 두 전형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 교장은 “입시정책이 아무리 바뀌어도 결국 가르치는 것은 교사이고, 공부하는 것은 학생”이라며 “학교와 학생·학부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갑작스럽게 정책을 바꾸는 건 매우 유감이다”고 말했다.

 교사·학부모 등은 교육부가 형식적인 게 아닌 실질적인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재철 대변인은 “입시정책 3년 예고제는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줘 교육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취지”라며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해도 될 것을 조급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임기 안에 성과를 내겠다는 집착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투명한 여론 수렴 절차 없이 몰래 전화해 밀실에서 결정하는 것은 정책의 신뢰성을 점점 떨어뜨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미숙 대표는 “10년 넘게 학부모단체 활동을 하면서 요즘처럼 교육부와 대화를 못 해본 건 처음”이라며 “자기들끼리만 결정하지 말고 다양한 주체들의 의견을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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