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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의 금융산책] 부채와의 전쟁 속에 새 임기 시작하는 한ㆍ중ㆍ일 중앙은행 총재

중앙일보

입력

한ㆍ중ㆍ일 중앙은행이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한국과 일본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의 연임으로 ‘임기 2라운드’가 시작된다.

 중국은 16년간 자리를 지켰던 ‘미스터 런민비’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총재가 물러나고 이강(易綱) 신임 총재가 통화정책의 키를 잡게 됐다.

 삼국 통화정책의 수장 앞에는 어려운 과제가 산적해 있다.

 대외적으로는 ‘트럼프발 무역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통화정책 정상화도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무엇보다도 대내적으로는 커지는 부채가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한국은 가계 부채, 일본은 국가부채, 중국은 기업 부채가 경제를 짓누르는 요인이다.

 블룸버그는 “금리를 올리면 빚 부담이 커지게 되는 만큼 아시아 전반의 대규모 부채 부담이 긴축적 통화정책으로의 전환을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열 총재…1450조 돌파한 가계부채와 한ㆍ미 금리 역전이 부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월 금융통화위원회 전체 회의에 앞서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중앙포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월 금융통화위원회 전체 회의에 앞서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중앙포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일 취임식을 가졌다. 한국은행 총재로 44년 만에 연임했다.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맡은 뒤에는 첫 연임이다.

 ‘이주열 2기’의 돛을 올렸지만 순풍은 기대하기 힘들다. 주요국의 통화정책 정상화와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은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이다.

 한ㆍ미 정책금리에 따른 자본 유출 가능성도 상존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달 21일 연방기금 금리를 0.25% 포인트 올렸다. 미국 기준금리는 연 1.5~1.75%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1.5%다. 10년 7개월 만에 정책금리가 역전됐다.

 지난해 145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도 풀어야 할 과제다. 금리 인상은 취약 차주와 한계 기업을 부실화할 수 있고 회복세를 보이는 듯한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것도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이 총재는 이날 취임사에서 “잠재성장률 하락과 함께 기준금리 운용 폭이 종전보다 협소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중장기적 관점에서 정책 여력 확보를 위한 방안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듯 이 총재는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경제)성장세와 자본유출, 금융안정 등을 다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한국은행도 당분간 완화적 통화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총재는 2일 취임사에서 “경제 성장세를 뒷받침하기 위해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유지하되 실물 경제나 금융안정 상황 변화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완화 정도 조정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로다 총재…오르지 않는 물가와 1086조엔 넘은 국가부채 증가폭 확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구로다 총재는 8일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다.

 ‘아베노믹스의 첨병’으로 대규모 금융완화정책과 엔저를 주도하며 수출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등 일본 경제 회복을 이끌었다.

 하지만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사학 스캔들’에 연루돼 정치적 위기를 맞으며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 무역 전쟁과 미국 달러 약세 기조 속에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 이어지며 엔화 강세가 나타나고 있다. 재임 기간 내내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물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구로다 총재는 “2019년에 물가목표치(2%)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완화적 통화정책의 지속을 천명했지만 출구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구로다 총재의 발목을 잡는 것은 막대한 규모의 국가 채무다.

 일본은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비용 등을 세수로 충당할 수 없어 국채 발행을 통해 이를 메우고 있다. 때문에 일본의 국가부채는 지난해 말 1085조7537억엔(1경 886조9609억원)으로 사상 최대치 기록했다.

 정부가 늘린 재정 지출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메우고 있다. 일본의 국채발행 잔액은 9조 달러(960조엔)가 가 넘는다. 일본은행은 이 중 41%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정부 부채를 갚는 형국이다. 일본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면서 10년물 국채금리는 0%대에 묶여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앙은행의 ‘철통 그립’으로 인해 정부 재정 적자의 우려 등이 채권시장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커지는 만큼 일본은행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좁아질 수 있다.

이강 총재…GDP의 163% 이르는 기업 부채로 인한 금융 불안 진정시켜야

이강 중국인민은행 총재

이강 중국인민은행 총재

 부채의 덫에 빠진 곳은 한국과 일본만이 아니다. 지난달 19일 인민은행 수장으로 임명된 이강 총재는 급증하는 기업 부채와 지방 정부의 과도한 부채로 인한 금융안정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중국의 기업 부채(비금융부문)는 163.4%로 미국(73.35)과 독일(53.8%) 등 주요국에 비해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정책에 호응해 고정투자를 위한 차입을 확대한 데다 과잉설비와 경기 둔화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함에 따라 부채 상환을 위한 차입도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의 대응과 기업 실적 개선 등의 영향으로 다소 기업 부채의 증가세는 다소 잡힌 듯하지만 발화점은 높다. 한은은 “부동산 경기가 둔화하는 조짐을 보이면서 부동산 경기와 밀접한 다수 기업이 한계기업으로 전환되고 부채도 확대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정부의 은폐성 채무와 늘어나는 가계부채도 인민은행에는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중국 정부 전체 부채 중 지방 정부의 비중은 2007년 말 34.2%에서 지난해 6월 말 65.2%로 확대됐다.

 가계부채도 꾸준히 늘고 있다. 중국의 가계 부채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GDP 대비 46.8%로 선진국(75.4%)보다 낮지만 2007년 말 대비 2.5배 상승했다.
 은행보다 더 높은 수준의 금리를 제공하는 자산관리상품 등 그림자 금융을 통한 신용공급이 늘어나는 것도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이다.

 늘어나는 중국의 부채에 대한 우려는 안팎에서 이어진다.

 저우 전 인민은행 총재는 지난해 10월 제19차 공산당 당대회에서 중국 경제의 ‘민스키 모멘트’ 가능성을 언급하며 중국의 부채 문제를 경고했다.

 민스키 모멘트는 과도한 부채에 의존한 경기 호황이 끝난 뒤 잠재적 위험 요인이 실현되면서 부채 상환을 위한 자산 매각이 늘어나 자산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는 시점을 의미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중국의 늘어나는 부채가 금융 시장의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러한 시장의 우려를 반영하듯 이강 총재는 지난달 25일 중국개발포럼 연설에서 “부채증가를 억제하고 금융위기 방지하는 한편 금융개방을 가속화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밝혔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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