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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금감원장 시대...은행들 이자놀이 끝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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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52ㆍ사진) 금융감독원장 시대가 열렸다.

김 원장은 2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점 강당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그는 취임사에서 “우리 금감원이 처한 상황은 엄중하기 그지 없다”며 “여러 논란에 휘말리면서 금감원을 향한 국민들의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쓰리고 아프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세세한 감독현안에 대한 언급 대신 앞으로 금감원이 나아갈 방향을 말하겠다”고 밝혔다.

‘재벌 저격수’ ‘금융권 저승사자’로 불리는 김기식(52) 전 의원이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됐다. 1999년 1월 통합 금감원 출범 이후 시민단체나 정치인 출신이 원장이 된 것은 처음이다. [중앙포토]

‘재벌 저격수’ ‘금융권 저승사자’로 불리는 김기식(52) 전 의원이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됐다. 1999년 1월 통합 금감원 출범 이후 시민단체나 정치인 출신이 원장이 된 것은 처음이다. [중앙포토]

그가 취임사에 밝힌 금감원이 나아갈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금융 감독ㆍ정책의 분리, ^금융소비자 보호 우선, ^금융감독의 일관성 등이다.

규제를 크게 강화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에 대해서 김 원장은, 이날 취임식 후 기자실에 들러 ‘역할론’으로 해명했다. 그는 “참여연대나 야당의원으로서 해야할 역할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금감원장이 됐기 때문에 맞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의 위치에 맞는 역할을 할 것이고, 조화와 균형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일방적인 규제 강화론자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지난 정무위 시절에도 금융관련, 자본시장 관련 규제는 제가 주도해서 풀어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 원장이 밝힌 금감원이 나아갈 방향 3가지.

①금융 감독ㆍ정책 분리…금융위와 갈등 예고

김 원장은 “금감원의 정체성을 바로하고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금감원의 역할을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하고, 영업행위를 감독하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 측면에서 정책과 감독은 같이 가야 하지만 “정책기관과 감독기관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금융감독의 원칙이 정치적ㆍ정책적 고려에 의해 왜곡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금감원 노조는 김 원장 취임에 맞춰 낸 성명서에서 그간의 금감원이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영업행위 점검의 받침돌인 검사 기능은 내팽개치고 ‘금융꿀팁’ 같은 생색 내기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김 원장이 금감원 기능 회복을 위한 대안을 찾는데 신중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실제 금감원 내부에서는 금융관료, 소위 모피아 출신 원장들이 금융위원회의 ‘예스맨’ 노릇을 하며 금감원 권한을 축소해 왔다는 불만이 누적된 상태다. 한 금감원 직원은 “저연차 직원들 사이에서는 김 원장을 환영하는 분위기”라며 “이제 좀 제대로 감독기관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세’ 금감원장의 취임으로 금융감독 체계 개편 논의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그간 시어머니 역할을 해왔던 금융위와 금감원의 갈등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김 원장은 현 정권 사람이고, 금융위 수장은 관료 출신이다. 금감원 쪽에 무게추가 실리면서 금융위 내부에서는 “금융위 패싱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나온다.

②수수료 장사 이제 끝…금융소비자보호 우선
김 원장은 취임사에서 “금융감독에 있어 조화와 균형이 유지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금감원이 ‘금융회사’와 ‘금융회사의 건전성 유지’를 우위에 둔 채 ‘금융소비자 보호’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금융회사의 불건전한 영업행위로 인한 금융소비자의 피해 사례가 빈발하고, 가계부채문제에 대해 일각에서는 ‘약탈적 대출’이라는 주장까지 제기하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김 원장은 “금융감독기구도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 간에, 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 간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김기식 금감원장 시대에는 금감원이 금융소비자 보호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약탈적 금융’이라는 말까지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간 금융회사들이 과도한 수익 추구에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 정부 금융정책의 기조인 ‘포괄적 금융’과 궤를 같이 한다.

지난해 은행들은 11조2000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올렸다. 2011년(14조4000억원) 이후 6년 만에 최대 수준이다. 대출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예대금리차 확대로 순이자마진(NIM)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은행들이 여전히 ‘이자놀이’로 쉽게 돈을 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도 이에 따라 가산금리 산정 체계가 적정한지를 들여다 보겠다는 게 올해 업무 계획에 들어있다. 김 원장의 취임으로 예대마진과 수수료의 적정성에 대한 감독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도 주장한다. 김 원장은 19대 국회의원 시절 슈퍼마켓이나 편의점ㆍ약국과 같이 소액결제가 많거나 영세중소가맹점에서 갓 졸업한 가맹점에도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③재벌 금융회사도 예외 없다…금융감독의 일관성
김 원장은 취임사에서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을 통해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감독당국의 권위와 위상을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법규를 집행하고 감독행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법률이 규정하지 못하는 경우에 발휘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도 꽤 넓은 편”이라며 “감독업무를 수행할 때에는 일관된 일처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간 금융감독 업무를 수행할 때 금감원의 각종 예외를 인정해 준 것에 대한 반성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 목소리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그러나 인터넷전문은행이라고 예외를 둬서는 감독 업무의 일관성을 지킬 수 없다는 게 김 원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원칙이다.

또, 보험사 자산의 시가평가는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그간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가치를 취득원가로 하는 것도 국제회계기준에는 어긋나는 처사다. 향후 예외없는 원칙 적용에 따른 감독을 예고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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