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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부모가 집사줘야 결혼? 신혼 자가 비중, 전세 첫 추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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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훈(37ㆍ가명)씨는 지난 2015년 결혼하면서 서울 도림동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앞으로 더 사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맞벌이인 아내와 서씨의 출퇴근 거리를 생각해 서울시내에 있는 계약 면적 127㎡(38평), 전용면적 87.36㎡(26.5평) 정도의 오피스텔을 샀다. 당시 매매가 3억4000만원 중 1억원 가량은 대출을 받고, 양가 부모님께 1억2000만원 가량을 지원받았다. 나머지는 각각 직장생활을 6년 가량 해 온 부부의 저축액으로 충당했다. 서씨는 “혼수나 신혼여행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내 집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면서 “오피스텔이라 집값이 많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낳은 뒤에도 살 수 있는 집을 가지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2013년 결혼한 김민영(34ㆍ여ㆍ가명)씨는 지난해 말 서울 송파구에 있는 40평대 오피스텔을 한 채 샀다. “더는 전세 생활을 계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부부가 살고 있는 인근 아파트 전세가는 4억원이다. 김씨는 “결혼할 때 양가 도움으로 전세를 마련했는데, 아이(3세)가 더 크기 전에 부부가 모은 돈으로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집값(11억6000만원) 마련에 필요한 추가 자금 7억6000만원 중 2억원 가량은 회계사와 공기업 직원인 부부의 신용대출로 마련했고 3억원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나머지(2억6000만원)가 그간 모아온 김씨 부부의 저축액이다. 김씨는 “올해 대출 규제가 심해진다는 소식을 듣고 그 이전에 무리해서라도 집을 샀는데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결혼 후 사글세방부터 시작해 월세, 전세를 거쳐 내 집 마련. 과거 한국 신혼부부의 전형적인 내집 마련 패턴이다. 고성장 시대였던 만큼 일단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더라도 열심히 모으면 내 집 마련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이런 패턴은 이미 옛 말이 된 듯 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이미 지난 2015년에 결혼 1년 미만 신혼부부 중 자기 집에서 사는 부부의 비중이 전세 거주중인 부부 비중을 앞질렀다. 집이 없으면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일 통계청의 ‘KOSTAT 통계플러스’ 창간호에 실린 ‘결혼하면 어떤 집에 살고 왜 이사를 할까’ 보고서에 따르면 1년 미만 신혼부부의 주거점유 형태는 2015년 기준 자가 비중이 37.7%로 35.1%인 전세 비중을 앞질렀다. 5년 전인 2010년, 자가 비중이 32.3%로 전세 비중 44.1%에 많이 못 미쳤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세태다.

결혼기간별 자가 비중

결혼기간별 자가 비중

결혼 5년 미만 신혼부부의 자가 대 전세 비중 격차도 2010년 45.6%와 33.2%에서 2015년 50.6%와 27.4%로 크게 벌어졌다.

보고서를 작성한 박시내 통계개발원 통계분석실 사무관은 선결혼→주거에서 선주거→결혼으로 의식과 형태 변화가 반영된 것"이라며 "과거에는 일단 결혼한 이후 내 집을 마련했다면, 최근 세대는 주거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결혼을 지연시키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지금 결혼하는 세대가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세대인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의 자녀 세대인 에코 세대라는 점도 세태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노후자금을 여유있게 확보한 만큼 자녀 결혼 시 주택 자금을 지원해주는 경향이 강하다는 얘기다.

물론 지역별로 차이는 있다. 5년 미만 신혼부부의 자가 비중은 2015년 기준으로 집값이 비싼 서울은 31.3%, 수도권은 37.0%에 머물렀지만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비수도권은 52.8%에 달했다.

자가 비중은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높아진다. 신혼부부가 출산을 통해 가족을 늘리는 결혼 5∼19년 차가 되면 자가의 비중이 59.7%로 상승한다. 자녀의 독립과 결혼, 부부의 은퇴가 이뤄지는결혼 20∼34년 차에는 자가 비중이 67.0%로 치솟는다. 부부의 노화와 사망이 이뤄지는 가족 해체기인 결혼 35년 차 이상에서 자가비중은 76.7%에 달했다.
세종=박진석·심새롬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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