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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철군, 이란합의 폐기, FTA 연계…'트럼프 변수' 부각

중앙일보

입력

3월29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리치필드에서 연설중인 트럼프 대통령. [EPA=연합뉴스]

3월29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리치필드에서 연설중인 트럼프 대통령. [EPA=연합뉴스]

북한과의 핵 담판을 앞두고 ‘트럼프 변수’가 본격화하는 조짐이다. 예측하기 힘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독특한 스타일로 인해 5월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인 기회가 마련됐지만, 똑같은 이유 때문에 전체 그림이 흔들리는 조짐도 생겨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리치필드 연설에서 북핵 협상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연계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양국 대표단이 원칙적으로 합의한 FTA에 대해 “북한과의 (핵·미사일)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그것을(개정 최종 확정을) 미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매우 강력한 카드”라면서다. 또 “한국에서 미군이 군사분계선을 지키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불받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진행중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해서도 노골적인 압박 의사를 드러냈다.

이를 두고 북한의 한·미 동맹 간 이간 혹은 이해 분리(de-coupling) 시도를 트럼프 대통령이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워싱턴 조야에서도 나온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의 군사 분석가인 애덤 마운트는 자신의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의 FTA 관련 발언은 그가 한국에 대해 정말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는 한·미의 이익이 대립되며 문재인 대통령이 그에게 이를 숨기고 있다고 여긴다. 그는 지금 동맹에 대한 (압박)레버리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하는 것 역시 북핵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가 간 합의라 해도 미국의 필요에 따라 깨버릴 수 있다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란 핵 합의는 양자 간 합의가 아닌 ‘P5+1(미·중·러·영·프+독일) 대 이란’이라는 형식의 다자 간 합의였다. 합의의 공신력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이해 당사자가 참여한 것인데, 이를 미국이 일방적으로 거부해 폐기 수순으로 간다면 북한 입장에서도 의심을 가질 수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부 만빌 지역에서 미군 차량 옆을 지나며 밝게 웃고 있는 시리아 소년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 주둔중인 미군 철수 의사를 밝혔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부 만빌 지역에서 미군 차량 옆을 지나며 밝게 웃고 있는 시리아 소년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 주둔중인 미군 철수 의사를 밝혔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시리아에서 철군 의사를 밝힌 것 역시 북핵 협상에 있어 좋지 않은 징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이 시리아 재건 지원을 위해 편성한 2억 달러 규모의 예산을 트럼프 대통령이 집행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고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서 곧 나올 것이다. 곧 한다. 이제 다른 사람들이 처리하게 하자”(3월29일 오하이오 연설)며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중동 문제로 지금까지 7조 달러를 낭비했다”면서다.

미국을 필두로 한 연합군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거의 궤멸시키긴 했지만, 아직 IS 잔당들은 시리아를 중심으로 공격을 자행중이다. 또 IS 세력이 패퇴하자 오히려 시리아 내에서 미국 대 러시아 등 열강 간 대립 구도가 형성되면서 시리아 내전은 더욱 격화하고 있다. 미군이 철수한다면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가 내전 상황에서 주도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북핵 구도에도 시사점을 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본토에 직접적인 위협만 제거된다면, 또 단기적으로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지 못한다면 개입을 중단하고 내버려둘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만 제거한다면 장기간 이어질 수 있는 비핵화 협상에는 진지하게 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또 주한미군 철수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쓸 수 있는 하나의 대북 협상 카드라는 의미도 된다. 미국이 원하는 선(先) 핵 폐기 일괄 타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향후 국면은 예측하기 힘들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지낸 콜린 칼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관의 핵심은 힘에 기반하지만 냉담한 군국주의다. 엄청난 군사력을 원하고, 비군사적 방법에는 관심이 없고, 얼마든 적을 폭격할 수 있다”며 “하지만 시리아에서든, 유럽에서든, 아시아에서든 미 군사력의 영향력을 키우길 원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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