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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ㆍ노태우 때 전제했던 北 체제 인정…'국회 비준' 노림수는?

중앙일보

입력

4ㆍ27 남북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북한의 비핵화다. 그리고 북한은 비핵화의 반대급부로 사실상 체제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4월 남북→5월 북ㆍ미 정상회담의 핵심은 비핵화와 체제보장 간의 ‘빅딜’이 성사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4월27일과 5월말,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을 매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3각 대화가 진행된다. [중앙포토]

4월27일과 5월말,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을 매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3각 대화가 진행된다. [중앙포토]

비핵화에 대해서는 이념과 진영을 떠나 반대 의견이 없다. 그러나 ‘김씨 왕조’를 국가로 인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존재한다.

“남과 북은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한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74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기자회견에서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김일성과 이후락.

김일성과 이후락.

박정희 대통령의 대북 특사였던 그는 전쟁 이후 남북이 맺은 최초의 합의문인 ‘7ㆍ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의 1항에는 아래와 같은 통일의 3대 원칙인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 명시돼 있다.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한다. 통일은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한다.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해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

3번째 원칙인 ‘민족 대단결’은 북한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전제가 깔렸다. 이러한 전제는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북한과 맺은 ‘남북공동 합의서’에서 구체화했다.

총 4장, 25조로 구성된 당시 합의서의 제1장 제1조는 “남과 북은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이다. 합의서는 같은 해 9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한 직후인 12월에 나왔다. 북한을 ‘국가’로서 인정한다는 것을 사실상 명문화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북 당국간 대화 촉진 1000만 서명 운동에 서명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북 당국간 대화 촉진 1000만 서명 운동에 서명하고 있다

文 대통령 “국회 비준 준비하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제도화해야 한다”며 “이번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지난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기본 사항을 다 담아서 국회 비준을 받도록 준비하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간의 합의문을 도출해낼 것이며, 이는 지난 두 차례의 정상회담의 결과물을 기초로 한다는 것을 천명한 발언이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두 차례 정상회담의 결과물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과 합의한 ‘6ㆍ15 남북공동 선언’과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역시 김정일과 맺은 ‘10ㆍ4 선언’을 뜻한다.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트랩까지 영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트랩까지 영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핵심은 통일의 방식이다. 6ㆍ15공동선언의 2항에는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이 있다. 공동선언의 내용을 구체화한 10ㆍ4선언은 1항에서 “6ㆍ15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간다”는 항목을 명시해 통일 원칙을 계승했다.

그러나 보수 진영에는 당시부터 해당 항목이 헌법에 위배된다면서 6ㆍ15공동선언의 폐기를 주장하며 논란이 일었다. 현행 헌법 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附屬島嶼)로 한다”고 돼 있다. 헌법대로라면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불법 점유한 정치집단이 된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발의한 개헌안에도 영토의 개념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으로 입장하자 ‘방송장악 음모 밝혀라!’등이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으로 입장하자 ‘방송장악 음모 밝혀라!’등이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실기(失期)하고 말았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인 『운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더 아쉬운 것은 국회 비준이다…(중략)…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하면 한나라당도 감히 정략적으로 반대하기 어려웠을 분위기였다. 그런데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가 끝내 안 했다…(중략)…그러나 실기하고 말았다. 결국 정권이 바뀌면서 정상 간의 소중한 합의가 내팽개쳐지고 말았다”

4ㆍ27 정상회담의 결과물에 대한 국회 비준도 만만한 상황이 아니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야권은 이미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과 함께 정상회담의 전제가 될 통일방안에 대한 쟁점화에 착수한 상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한 저지 농성장에서 “정부가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 개헌을 한다고 한다. 종국적 목표는  남북연방제 통일”이라며 “대한민국 내에 연방제를 실현해 놓고 남북 연방제를 하자는 게 이 정부의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 등 소속의원과 관계자들이 지난 2월 26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북한 김영철 방남 규탄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 등 소속의원과 관계자들이 지난 2월 26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북한 김영철 방남 규탄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청와대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1991년 노태우 정부가 합의한 공동합의서 성격의 결과물을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는 6ㆍ15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연합제와 연방제의 유사성’과 이를 지향하는통일방안이 전제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 비준 쉽지 않겠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2012년 대선 이후 보수 진영이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세우면서 사실상 여야 정당의 차별성이 거의 사라진 상태”라며 “현재는 사실상 보수 진영이 ‘종북’ 프레임으로 공격하고 있는 통일 방안에서만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준 과정에서 보수 진영은 마지막 남은 정체성에 대한 수정을 가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그러나 과거 박정희ㆍ노태우 정부 때 이미 북한을 국가로 인정했기 때문에 무조건 반대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자기 부정’을 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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