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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고용노동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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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논설위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논설위원

도대체 무슨 관계로 봐야 할까. 고용노동부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말이다. 따지고 보면 행정개혁위원회는 자문기구다. 적폐청산이든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든 그 목적 또한 자문의 범주 안에 자리한다. 그 선을 넘어 ‘감 놔라 배 놔라’하면 그게 비선세력으로 둔갑하기에 십상이다.

노동 존중이 노동단체 중심의 ‘노중설’로 변질 안 돼 #제대로 된 정책 만들려면 부처 내 분절부터 치유해야

자문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과 관련된 전문가나 전문기관에 의견을 묻는’ 거다. 그렇다면 고용부 자문기구는 고용부에 ‘답신’을 하는 게 맞다. 한데 지난달 28일 느닷없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것도 정부 청사에서다. 고용부 내 일부 국장은 “사전에 내용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이 정도면 자문기구의 영역을 넘어선 건 아닐까. 국민을 직접 상대할 정도로 세력화된 건가. 자문의 속뜻에는 ‘아랫사람에게 묻는다’는 뉘앙스가 있다. 고용부에선 이게 뒤바뀐 느낌이다. 자문기구가 상전인 듯하다. “자문단이 기자회견을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고용부 직원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기껏 “부역자로 낙인찍은 것 아니냐”는 푸념 정도다. 기가 빠진 모습이다.

최근 들어 고용부 내 활기가 사라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불만은 차곡차곡 쌓이고, 정책 입안자로서의 자존감은 퇴색해가는 분위기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고용시장의 혼란을 바로잡으려면 노동개혁이 꼭 필요한데, 개혁의 ‘개’ 자도 못 꺼낸다. 노동단체가 난리를 친다”고 했다.

혹자는 ‘노중설(勞中說)’ ‘한동설’ ‘민동설’로 표현하기도 했다. 천동설이나 지동설을 본떠 시류를 빗댄 말이다. 노동계(한국노총, 민주노총)가 중심에 자리한 상태에서 도는 시대라는 얘기다. 고용부 직원은 그 중심축의 변방에서 행여 원심력에 튕겨 나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 고용부 간부는 “노동시장에는 위험신호가 깜빡이는데 소신껏 빨간불을 걱정하는 언동을 했다간 몸보신 하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고용부가 지금 하는 정책은 지난 정부에서 입안됐던 거다. 노사정 대타협을 위해 경영계와 정부가 양보했던 사안이 대부분이다. 패키지로 타협했는데, 노동계의 관심 사안을 쏙 빼서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출퇴근 산재 인정, 실업급여 인상, 1년 미만 근로자에 퇴직금 지급 등이다. 대신 공공기관 성과급제, 임금체계 개편과 같은 사안은 폐기되거나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일할 맛이 나지 않으면 수동적이 된다. 심해지면 위아래가 따로 논다. 고용부 내 간부 간 불화설에 전횡까지, 흘러나오는 소문마다 심각한 분절 냄새가 풍긴다. 문제는 빈 소리로 흘리기에는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 예를 들며 혀를 차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예컨대 이런 거다. 지난 2월 근로시간 단축 방안을 두고 휴일 근로를 아예 금지하고, 대체휴가를 주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용부가 혼란을 겪었다. 노사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았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 과정에서 일을 저지른 곳 따로, 수습하는 곳 따로라는 말이 나왔다.

최근엔 김영주 고용부 장관이 민감한 고용현안에 대해 질문을 하려는 언론 인터뷰를 거절했다가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이 업무와 관련된 공무원에 대한 인사가 곧 단행된다는 말이 나온다.

실력행사도 벌어진다. 고용부 산하 근로복지공단 등의 노조는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실적 채우기에 반대한다”며 정부에 직격탄을 쐈다. 일선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근로감독관도 이 반발에 동조한다. 심지어 지방 고용청의 간부는 “김영주 장관이 외로울 것”이라며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아니나다를까. 지난해 고용부의 정책평가에서 안전업무와 근로기준 업무를 맡는 부서가 꼴찌를 했다. 김 장관이 취임한 뒤 ‘현장 노동청’을 설치하는 등 역점을 둔 부서다. 그 이유를 따지는 게 행정효율을 높일 첫걸음인 듯싶다. 노동존중은 공직사회라고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