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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와 윤이상은 어떻게 집에 돌아왔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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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바로크 시대 악기와 성악곡, 한국의 악기와 판소리가 함께한 음악극 ‘귀향’.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바로크 시대 악기와 성악곡, 한국의 악기와 판소리가 함께한 음악극 ‘귀향’.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지난달 30일 오후 10시 통영국제음악당의 블랙박스 극장. 관객 200여명이 두 줄로 입장해 긴 직사각형 무대의 양쪽에 마주보고 앉았다. 패션쇼의 관객 대형이었다. 한쪽에는 대금·거문고·해금·장구, 그리고 여창 가객이 있었다. 반대편에는 소프라노와 바이올린·쳄발로·비올라 주자 등이 자리했다. 공연 제목은 ‘귀향’. 17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몬테베르디 오페라 ‘율리시스의 귀환’과 한국 전통 가곡을 교차시킨 음악극이다.

통영음악제 첫선 음악극 ‘귀향’ #서양 오페라와 한국 가곡의 만남 #패션쇼 닮은 직사각형 무대 눈길 #이별과 재회, 전쟁의 상처 물어

무대에서 율리시스의 아내 페넬로페가 부르는 노래 ‘돌아와요, 율리시스’가 끝나자마자 국악기의 연주가 시작됐다. 가객 박민희는 황진이의 시에 붙인 가곡 ‘동짓달’을 불렀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한 허리를 둘러내어/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율리시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고향 이타카를 떠난다. 아내 페넬로페는 많은 구혼자를 물리치며 20년을 견딘다. 율리시스는 가까운 고향에 돌아오는 데 긴 세월을 쓴다. 마침내 귀환한 율리시스를 아내는 알아보지 못하고,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몬테베르디 ‘율리시스의 귀환’의 내용이다. 독일 연출가 루트거 엥겔스와 음악감독 틸만 카니츠는 여기에 17세기의 한국 가곡 세 곡을 넣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그 사랑에 대한 의심,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가곡이다.

루트커 엥겔스

루트커 엥겔스

음악극 ‘귀향’은 여러 방식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 여창 가객이 이탈리아 말로 아리아를 부르거나, 동서양의 악기 연주자들이 클럽 같은 분위기에서 다같이 연주하며 춤을 추고, 국악기에 맞춰 서양 창법의 성악가들이 대사를 읊었다.

올해 통영국제제음악제에서 초연된 음악극 ‘귀향’은 이번 음악제의 최대 화제작 중 하나였다. 루트거 앵겔스는 2013년에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신선한 작품을 올렸다. 헨델 오페라 ‘세멜레’에 영국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패션쇼를 접목시켜 만든 오페라였다.

초연 후 만난 엥겔스는 작곡가 윤이상의 유해 반환에 맞춰 제작한 작품이냐는 질문에 “윤이상과 율리시스는 서로 독립된 스토리”라고 말했다. 율리시스는 고향을 떠나 20년을 떠돌다 돌아왔고 윤이상은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난 23년 만인 올해 고향 통영으로 묘소를 옮겨왔다. 엥겔스는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을 묻고 싶었다. 오래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담았다”고 했다.

‘귀향’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 선 인간의 미약함, 사랑·고향·전쟁의 의미 등을 청중이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했다. 율리시스 역으로 참여한 바리톤 이응광은 “인간에게 남은 전쟁의 트라우마를 표현하기 위해 원작 스토리를 각색해 극적인 전환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윤이상의 귀향을 둘러싼 여러 방식의 의미 부여로 시작했다. 최근 악보가 발견된 윤이상의 초기작 ‘낙동강의 시’(1956) 세계 초연(5일 공연)을 비롯해 이번 음악제에는 윤이상의 작품이 많이 연주된다.

2018 통영국제음악제는 지난달 30일 오후 2시 윤이상의 추모행사로 시작했다. 같은 시간 추모지 바로 옆에서는 윤이상의 친북 행적을 비판하는 집회가 열렸다.

통영=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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