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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원안위가 국민을 안심시키지 못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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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국민이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의심의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대다수의 선진국은 원전을 활용한다. 심지어 미국이나 일본, 러시아는 대형 원전 사고를 경험하고도 원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은 지난 40년간 단 한 번의 원전 사고도 없었다. 이로 인한 사망자 역시 없었다. 원전은 다른 발전원과 달리 정상 운전 중에는 이산화탄소 등을 배출하지 않는다. 미세먼지 걱정도 없다. 한국 원전은 안전성도 매우 뛰어나다. 전 세계가 인정하고,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1호기 완공이 확실한 증거다. 그런데도 국민은 원전의 안전성을 의심한다. 따지고 보면 이는 정부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원안위는 규제기관의 역할을 비교적 잘 수행해왔다. 그러나 원안위가 잘못한 일이 있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원전 안전성을 왜곡하는 가짜뉴스가 나돌 때, 원전 사업자에게만 맡기지 말고 직접 나섰어야 했다. 예컨대 일부 환경단체가 월성원전 인근에 사는 어린이의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검출량은 극히 미미하고, 인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아니다. 원안위가 먼저 그 정도는 서울에 사는 일반인에게서도 검출된다는 걸 밝혔어야 했다.

갑상샘암에 걸린 것이 고리원전 때문이란 소송이 제기된 것도 그렇다. 고리원전 주변에서 기체·액체의 형태로 방출되는 방사성동위원소의 양이 극히 적은 양이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이게 갑상샘암의 원인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어야 했다. 심지어 사업자인 한수원이 원안위 기준치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운전하고 있어 혹 문제가 된다면 한수원이 아니라 원안위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라는 점도 밝혔어야 했다.

이런 사실관계에 대해 침묵하던 원안위는 최근 원전에서 나오는 법적 기준치 이하의 방사선량과 주민 건강과의 연관성에 대해 주민건강영향평가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방사선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비상식적 발상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현재의 기준치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의 권고를 따르고 있다. 이는 100mSv 이하의 저선량 방사능은 병증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실제 규제는 100분의 1인, 1mSv로 정하고 있다. 모든 선진국이 사용하는, 충분히 안전하다는 게 입증된 기준마저 부정하는 게 원안위의 역할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주민건강영향평가를 한다고 어떤 새로운 문제점이 발견될 확률은 매우 낮다. 또 이것이 당장 원안위가 연구를 해야 할 만큼 시급한 것도 아니다. 원안위의 이런 움직임은 불필요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원안위가 지금 하는 일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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