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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맨 출신 제주농부 … 커피 생두로 세계 첫 와인 빚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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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김영한 대표가 선보인 커피코냑은 자체 개발한 커피와인을 증류해 만든 일종의 브랜디(brandy)다. 지난해 10월 알코올 도수 35도짜리를 처음 만들었고, 올들어 40도 코냑 생산에 성공했다. [사진 제주커피수목원]

김영한 대표가 선보인 커피코냑은 자체 개발한 커피와인을 증류해 만든 일종의 브랜디(brandy)다. 지난해 10월 알코올 도수 35도짜리를 처음 만들었고, 올들어 40도 코냑 생산에 성공했다. [사진 제주커피수목원]

“커피 생두를 발효시켜 와인을 만드는 기술은 전 세계 최초입니다. 커피 체리(열매 껍질과 과육)로 만든 와인은 제조법이 베일에 가려진 채 고대 문헌 기록에만 남아 있었죠.”

김영한 커피수목원 대표 반퇴 성공기 #마흔 때 삼성전자 이사 박차고 나와 #컨설턴트,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약 #예순 넘어 디지털시대 한계 느껴 #제주로 귀농해 커피 농사에 도전 #커피 열매로 와인·코냑 개발 성공 #CNN 등 소개되며 기술 수출 추진

김영한(70) 제주커피수목원 대표는 제주도에서 커피로 와인을 만들어 파는 일흔 살 농부다. 지난해 8월 ‘제주몬순 커피와인’이라는 이름의 커피생두와인 2종(레드·화이트) 판매를 시작했다.

흔히 알려진 깔루아 등 ‘커피술’은 커피 원두에 설탕과 럼주(또는 소주)를 부어 만든 담금주다. 발효주인 커피와인은 이와 다르다. 김 대표는 “천연 당분을 10%가량 함유한 커피 생두를 액상화해 효모를 넣고 자연발효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대학교 연구팀과 산학협력을 맺고 4년간의 연구 끝에 상용화에 성공했다.

김 대표는 “커피와인은 100세 시대 인생 2막을 향한 무모한 도전의 결과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1988년 나이 마흔에 삼성전자 임원직(컴퓨터사업부 마케팅담당 이사)을 박차고 나와 마케팅 컨설턴트·베스트셀러 작가로 2000년대 초반까지 이름을 날렸다. 외환위기(97년) 직후 생활고를 겪었던 김 대표는 ‘총각네 야채가게’, ‘스타벅스 감성 마케팅’ 등 67권의 책을 펴내며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곧 새로운 기회가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예순을 넘기니 그동안 몸담았던 디지털 지식사회에서의 내 ‘유통기한’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날로그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무작정 제주로 낙향했습니다.”

2011년 제주에 와 처음 시작한 일은 웨딩전문 사진관이었다. 보기 좋게 실패하고 카페를 열었지만 운영이 녹록지 않았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며 커피에 관심이 생겼고 커피나무 재배로 눈을 돌리게 됐다. “한국 대표 관광지인 제주에 외국산이 아닌, 노지 자생 토종 커피나무를 키우고 싶었죠.” 2013년 서귀포시 안덕면에 제주커피수목원을 세우고 농사를 본격 시작했다. 이듬해 국내 최초로 영하에서 자랄 수 있는 ‘제주몬순커피’ 품종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제주커피수목원 개요

제주커피수목원 개요

커피와인 개발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했다. 생두(씨앗)를 얻기 위해 버리는 커피 과육과 껍질이 아깝다는 생각에서다. 커피 열매·껍질에 많이 들어있는 당분을 활용해 ‘커피체리와인’을 만들고 특허 등록도 했다. 하지만 맛이 아쉬웠다. “과육이 아닌 생두로 와인을 만들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컴퓨터를 만들던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 개발에 도전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그렇게 커피생두와인이 탄생했다. 알코올 도수 11%다. 일반 포도주와 비슷하지만 단맛이 적고 부드러운 커피향을 느낄 수 있다. 김 대표는 “낯선 풍미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젊은 층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고 귀띔했다. 커피와인을 증류해 만든 커피코냑은 알코올 도수(40도)가 훨씬 높지만 맛과 향 면에서 대중성을 갖췄다. 미국 CNN 등 외신에 소개된 뒤 미국(하와이)·중국(윈난성) 커피농장과 업무협약(MOU)를 맺고 기술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커피와인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현대 농업은 더 고도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과감한 발상 전환을 통해 새로운 작물과 농법, 판매처 개척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신기술 접목을 시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마케팅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라며 “제주에서도 감귤 같은 기존 특산품만 재배해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제주커피수목원에서는 방문객들을 상대로 커피와인을 직접 만들고 시음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최근 체험형 관광이 인기를 끌면서 주말에는 하루에 30~40여 명이 방문한다. 수목원을 짓고 와인·코냑을 개발하기까지 들어간 비용이 어림잡아 7억~8억원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어떻게 마련했냐고 묻자 “노후 자금으로 모은 전 재산을 몽땅 털고, 정부 지원도 받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원하는 ‘제주 농촌융복합산업 인증 사업자’로 선정돼 지금까지 약 1억원가량을 지원받았다.

농식품부는 2016년부터 전국에서 6차산업 사업자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농산물 생산(1차 산업)과 제조·가공(2차 산업), 체험 및 유통(3차 산업)을 연계한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해 기르는 게 목표다.

제주=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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