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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5만 원의 민낯’, 착한 정책이 낳은 갈라파고스 정책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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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15일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에게 연 1035만원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취업 대책을 내놓았다. 청년들의 지지는 뜨겁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 찬성률은 71.5%에 달한다. 하지만 야 4당 전체와 주류 경제학자들의 반응은 다르다. 야당은 “국가주의 포퓰리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최저임금에 이은 또 하나의 가격통제”라며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높은 청년 실업률을 해소하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정부ㆍ여당과 “6월 선거용”이라는 야당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1035만원 지원 정책의 실효성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왜 이런 정책이 나왔고, 누가 이런 의사결정을 했는지 추적해보기로 했다.

추적은 쉽지 않았다. 문 정부의 경제 컨트롤타워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하지만 허울뿐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J노믹스)은 장하성 정책실장, 홍장표 경제수석, 김수현 사회수석, 반장식 일자리수석,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 청와대의 정책 실세 5명이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3년 내 최저임금 54.5% 인상, 비정규직의 획일적 정규직화, 공공부문 81만명 채용 정책은 모두 J노믹스의 핵심인 ‘소득 및 일자리주도 성장’정책에서 나온다. 한마디로 성역이다. 그래서 이번 정책 역시 김 부총리가 주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론 J노믹스의  정책기조와 철학에서 비롯되고 있다.

재정 물쓰듯 퍼붓는 포퓰리즘과 #세종시에 갇힌 관료 무능이 합작 #경제사령탑 불분명해 치명적 결함 #효과 없는 정책 덤터기는 청년몫 #서비스업 활성화ㆍ규제 완화와 #노사정 대타협만이 청년 탈출구

그럼에도 얘기를 들어볼 곳은 김동연 부총리뿐이었다. 청와대 정책실세들에게도 설명을 부탁했지만 응하지 않거나 “다른 수석에게 물어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기재부 쪽을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김 부총리를 만나야 했다. 하지만 산적한 현안으로 동분서주하는 그를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대책 발표 직후 장기 해외출장 중이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국회 정치부 기자들과 만나 청년 일자리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국회 정치부 기자들과 만나 청년 일자리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결국 김 부총리를 만난 건 지난달 27일 국회에서였다. 문 대통령 수행을 포함해 7박11일 동안 5만2000km의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국회를 찾았을 때였다. 청년 일자리 대책과 이에 필요한 4조원 규모 추경안의 국회 통과를 위한 정지작업을 위해서였다. 여야 5당을 30분 간격으로 돌아가며 만나는 강행군을 펼치던 그를 국회 로텐더홀에서 조우했다. 그에게 물었다.
-1035만원 지원책은 효용성이 문제 아닌가. 기존 직원과의 임금 역전 등 논란이 많다.
“너무 과장된 얘기다. 중소기업에도 세제지원을 확대해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야당의 반대가 극심하다.
“청년실업률이 10%에 육박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필요성을 충분히 말씀드렸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김동연 부총리는 4월 추경을 위해 국회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김동호 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김동연 부총리는 4월 추경을 위해 국회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김동호 기자

잠도 제대로 못 잔 그를 붙들고 1035만원의 결정 과정까지 묻기는 어려웠다. 그 실무 과정은 기재부 간부들에게 물었다. 이들은 “실무적 결정은 기재부가 내렸다”고 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청년 일자리대책 TF를 중심으로 16차례 회의를 하고, 지난해 12월 가동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청년TF의 의견도 수렴했다고 했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자와 야당의 정책통 의원들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J노믹스의 틀 속에서는 기재부가 그런 결정을 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일자리와 관련된 문 대통령의 발언을 복기해보면 타당한 추론이다. 문 대통령은 올 1월 25일 청년일자리 점검회의에서 “향후 3~4년 동안 긴급자금을 투입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등 특단의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각 부처 장관들을 질책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민간과 시장이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오랫동안 실패해 왔고 정부의 대책도 충분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기재부가 50일 만인 3월 15일 열린 ‘청년일자리대책 보고대회’에서 내놓은 것이 1035만원 지원책이다.

국회 로텐더홀. 경제 부총리가 국회 문턱이 닳도록 이곳을 찾아야 정책을 실행시킬 수 있다. 김동호 기자

국회 로텐더홀. 경제 부총리가 국회 문턱이 닳도록 이곳을 찾아야 정책을 실행시킬 수 있다. 김동호 기자

기재부는 “청년단체와 현장 전문가 의견을 반영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긴급자금을 투입해서라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는 대통령 지시를 구체화했을 뿐이다. 문제는 2003년 이후 정부가 28차례의 일자리 대책을 내놓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정공법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금도 가격이기 때문에 잠깐 보조금을 준다고 해서 중소기업에 취업할 청년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가격통제보다는 근본 대책을 주문한다. 조성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은 미래가 불투명하니 취업을 꺼리고, 죽든 살든 청년들이 대기업이든 공기업으로 가려고 한다”면서 “근본 대책인 구조개혁과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에서 김동연 부총리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조우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국회에서 김동연 부총리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조우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사실 김 부총리도 생각이 다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는 이런 단기 대응책으로 일자리가 늘어나겠느냐는 질문에 “잘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혁신을 통한 성장, 산업구조 개편, 노동시장 구조개선, 교육개혁, 직업훈련 등이 임기 내에 꾸준히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할 때 유독 목소리가 작았다. 그래서 공허한 독백처럼 들렸다. 마치 ‘답정너’처럼 김 부총리가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J노믹스의 틀 안에 갇힌 그에게 본격적인 구조개혁이나 노동개혁은 사실상 정책 대상으로 고려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무원들은 세종시에 갇혀 민간과의 교류가 단절돼 있다. 주류 전문가와 현장의 진짜 목소리를 듣지 않고 결정되는 이들의 정책은 ‘갈라파고스 정책쇼’에 불과한 것이다. 최저임금에 이은 또 한 번의 정치적 포퓰리즘과 관료의 무능이 합작한 결과라는 얘기다. 야당의 정책통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김동연 부총리도 많이 힘들 것”이라고 했다. “시장 원칙을 중시해 온 김 부총리가 최저임금 과속 인상에 이어 중소기업 연봉 지원 등 임금에 직접 손을 대 시장을 왜곡시키는 정책을 하려니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추경호 의원. 기획재정부 출신인 그는 "인위적 임금 조정은 시장을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김동호 기자

추경호 의원. 기획재정부 출신인 그는 "인위적 임금 조정은 시장을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김동호 기자

문제는 잘못 끼운 단추처럼 임금(최저임금과 중소기업 연봉)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데 따른 부작용은 고스란히 청년 세대가 뒤집어쓴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가부채 1555조원 가운데 공무원ㆍ군인에게 지급해야 하는 연금 재원은 845조원에 달한다. 이는 두고두고 청년세대가 짊어져야 한다. 1035만원 지원의 재원 역시 국가의 부담이고 청년들이 갚아 나가야 한다. 이런 모순을 줄이려면 경제 컨트롤타워부터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말(기업 활동) 앞에 마차(임금과 일자리)를 놓고 앞으로 달리길 바라는 정책이 견제될 수 있을 것이다.

노믹스 운영자들은 청년 실업의 원인을 민간의 실패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광범위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이 정책의 실패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연간 20조원에 달하는 고용재원을 쓰고도 최악이 된 청년실업 사태가 그 근거다. 아무리 착한 정책이라도 현실성이 없으면 후유증만 키울 뿐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정책실험을 중단하고 경제 체질 개선에 힘 쏟아야 한다. 청년이 중소기업에 가려면 매력 있는 중소기업이 먼저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시장의 경직성 해소와 구조개혁은 필수다. 일자리는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