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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최강 바둑 AI '돌바람', 이창호 9단 전성기 때 느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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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진석 9단, 한국 최강 바둑 AI ‘돌바람’과 대국해보니… 

지난달 서울 중앙일보 편집국에서 열린 프로기사 목진석 9단(바둑 국가대표 감독)과 한국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돌바람’의 특별 대국. 대국이 70여수가 넘어가며 모양이 잡혀가자 백을 잡은 목 9단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 9단은 “내가 특별히 잘못 둔 곳은 없고, 돌바람이 묘수를 둔 곳도 없다”며 “그런데 이상하게 백이 불리한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 바둑기사 목진석 9단(오른쪽)이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본사에서 바둑 인공지능 '돌바람'과 대국했다. 목 기사와 '돌바람'을 만든 임재범 대표가 이날 대국을 복기하며 대국을 분석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프로 바둑기사 목진석 9단(오른쪽)이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본사에서 바둑 인공지능 '돌바람'과 대국했다. 목 기사와 '돌바람'을 만든 임재범 대표가 이날 대국을 복기하며 대국을 분석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날 대국은 돌바람의 약점을 찾아보고, 바둑계에서의 활용 방안을 찾아보기 위해 마련됐다. 대국은 269수까지 진행됐으며, 돌바람이 3집 반을 승리했다. 돌바람을 개발한 임재범 돌바람네트워크 대표는 목 9단과 복기를 하며 주요 국면에서 돌바람이 제시한 다른 착수를 목 9단에게 소개하고, 목 9단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목 9단 “돌바람 기풍은 이창호 9단 전성기 때 느낌”

목 9단은 “이미 구글이 개발한 알파고로 수차례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돌바람이 이해가 안 되는 수를 둔다고 해도 크게 당황할 것 같진 않았다”며 “직접 대국해보니 느리게 움직이면서도 확실한 수를 두는 이창호 9단의 전성기 때 기풍과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요즘 중국의 줴이(絶藝), 일본의 ‘딥젠고’ 등 알파고 이후 등장한 바둑 인공지능의 대국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수법을 많이 배운다”라고 덧붙였다.

돌바람은 딥젠고ㆍ줴이는 물론 최근 중국의 커제 9단을 격파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바둑 인공지능으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최고수 기사들을 상대로 90%가 넘는 승률을 거두고 있다. 임 대표는 “2016년 이세돌 9단과 대국했을 당시의 알파고 수준”이라고 했다.

대국과 별개로 진행한 실험에서 돌바람은 각종 꼼수에 정확하게 대응하고, 흉내바둑에는 적절한 타이밍에 천원(바둑판의 중심점)에 돌을 둬 따라두기를 원천봉쇄하는 등 고수의 면모를 과시했다.

목진석 9단과 바둑 인공지능 '돌바람' 간의 대국 기보. 흑을 잡은 돌바람이 3집반 승리했다. [자료 돌바람네트워크]

목진석 9단과 바둑 인공지능 '돌바람' 간의 대국 기보. 흑을 잡은 돌바람이 3집반 승리했다. [자료 돌바람네트워크]

지난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의 5번기에서 승리한 알파고는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알파고에게 무대를 내준 바둑계는 본의 아니게 예상치 못한 ‘후폭풍’을 겪어야 했다.

알파고 등장 이후 기존 정석ㆍ행마 등 패러다임 파괴 

바로 정석·행마 등으로 불리던 기존 바둑 패러다임의 변화다. 바둑에는 그 전까지 좋은 수, 나쁜 수에 대한 정형화된 사고의 틀이 존재했는데 알파고가 이런 고정관념을 철저히 파괴한 것이다. 초반 다짜고짜 3ㆍ3에 침입하는 게 대표적이다. 초반 3ㆍ3 침입은 집을 확보할 수 있지만, 상대방의 세력을 두텁게 한다는 점에서 ‘소탐대실’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알파고의 등장 이후 프로기사 간의 대국에서도 빠른 3ㆍ3 침입이 자주 등장한다. 초반부터 상대방에 돌에 바로 돌을 붙이거나, 자발적으로 두 점 머리를 맞는 것도 예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수다.

돌바람이 계산한 목진석 9단과의 대국에서의 수순별 이길 확률. 70수가 넘어가면서 돌바람이 이길 확률이 60%를 넘어갔다. [자료 돌바람네트워크]

돌바람이 계산한 목진석 9단과의 대국에서의 수순별 이길 확률. 70수가 넘어가면서 돌바람이 이길 확률이 60%를 넘어갔다. [자료 돌바람네트워크]

목 9단은 “인간이 앞으로 바둑 인공지능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면서도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바둑의 미래를 낙관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정수라고 알고 있던 것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스타일의 바둑을 만날 수 있어 바둑 기사의 발상이 자유로워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임 대표는 “인간이 두터움ㆍ세력이라고 표현하며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뒀던 중앙의 공간을 인공지능은 정밀한 계산력으로 정복해 냈다”며 “인간은 기세ㆍ직관력 등을 중시하지만, 인공지능은 철저히 가장 확률이 높은 수만을 둘 뿐”이라고 말했다.

 프로 바둑기사 목진석 9단(오른쪽)이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본사에서 바둑 인공지능 '돌바람'과 대국했다. 목 기사와 '돌바람'을 만든 임재범 대표가 이날 대국을 복기하며 대국을 분석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프로 바둑기사 목진석 9단(오른쪽)이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본사에서 바둑 인공지능 '돌바람'과 대국했다. 목 기사와 '돌바람'을 만든 임재범 대표가 이날 대국을 복기하며 대국을 분석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하지만 인공지능도 약점이 발견된다. 알파고와의 4국에서 이세돌 9단이 회심의 일격을 날린 78수가 그 예다. 가끔 인공지능이 사활을 착각해 막판에 패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프로그램에 따라 특정 모양이 나타나면 똑같은 형태의 수를 두는 버그도 있다는 게 목 9단과 임 대표의 설명이다. 임 대표는 “빈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업그레이드된 알파고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바둑 AI, 국가대표팀 훈련이나 바둑 교육 등에 활용 전망  

돌바람 같은 바둑 인공지능은 앞으로 국가대표팀의 훈련이나 바둑 교육 등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목 9단은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승률이 높은 수를 연구하고, 특정 수에 대한 인공지능의 대응을 연구하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프로기사의 학습에 있어 보조수단으로 활용될 뿐, 지금과 같은 기본적인 공부방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대표는 “레벨에 따라 실력을 조절하고, 급수에 맞춰 접바둑을 두는 식으로 만들면 교육용으로도 좋은 반응을 얻을 것”이라며 “입문자가 쉽고 재미있게 바둑을 익힐 수 있다”라고 예상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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