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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터졌다 '日 망언폭탄' 아소 "신문들 수준하고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모리토모 (의혹)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보다 중대하다고 생각하는 게 일본 신문의 레벨(수준)이다.~”

"신문들 모리토모만 보도,TPP 한 줄도 안써" #사실 6개 이상 신문이 보도한 걸로 판명 #칠레서 열린 회의를 '페루'로 둔갑시켜 #"모리토모 당사자가 관련 보도를 무시" #30일 "반성한다"면서도 "신문 잘 안봐" #日 기자들 "당신 레벨은 어떤가" 질문 #

일본 정부의 폭탄이 또 터졌다. ‘안하무인의 아이콘’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 자신의 주특기인 망언을 또다시 폭발시킨 것이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 [EPA=연합뉴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 [EPA=연합뉴스]

29일 일본 참의원 재정금융위에 출석한 그는 'TPP에 관한 기사가 (아베 정권을 흔드는 스캔들인)모리토모(森友)의혹에 비해 적다'는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TPP는 일본이 주도해 ‘체결’됐는데, 경제산업상이 무박4일로 ‘페루’까지 왕복했지만 일본의 신문에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일본 신문의 레벨이 이렇다고 경제부 사람들에게 실컷 욕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소 재무상의 발언 가운데는 팩트가 틀린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먼저 TPP는 아직 ‘체결’된 것이 아니라, 지난 8일 서명식이 진행됐을뿐이다.

또 관련 회의가 열린 곳은 ‘페루’가 아니라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였다.

또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는 말과 달리 최소 6개 신문(조ㆍ석간 별도 집계)이 서명식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팩트 논란보다 일본 정계를 더 들끓게 만든 건 그가 재무성의 총 책임자라는 사실이다.
모리토모 사학재단 특혜의혹과 관련 문서 조작을 실행한 관청의 최고책임자가 어떻게 신문들의 관련 보도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와 함께 “문서 조작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국민들의 압박을 받고 있는 당사자다.

지난 2016년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아베 신조 총리(왼쪽)가 가와노 가쓰토시 통합막료장 의 보고를 받고 있다. 오른쪽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사진제공=총리관저 페이스북]

지난 2016년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아베 신조 총리(왼쪽)가 가와노 가쓰토시 통합막료장 의 보고를 받고 있다. 오른쪽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사진제공=총리관저 페이스북]

 야당인 희망의당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郞)대표는 “(문서조작 파문의 당사자인 재무성의 책임자가)신문 보도를 야유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걸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 위원장도 “문서 조작이 헌법을 위반한 역사적인 범죄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말을 멀쩡하게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아소 재무상은 30일 오전 참의원에서 "(TPP와)모리토모를 비교한 것은 적절치 못했다. 반성한다"고 물러섰다. 하지만 앞서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신문은 잘 읽지 않아 상세히는 모르지만 TPP를 작게 다룬 건 사실"이라고 말하는 등 계속 오락가락하는 모습이었다. '일본의 신문 레벨'운운하는 그의 말에 불쾌감을 느낀 기자에게서 "(문건 조작 등의)부정을 용인한 (재무성 조직의)장으로서 자신의 레벨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아소 재무상은 "레벨은 자기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아소 재무상의 태도가 문제가 된 건 이번뿐이 아니다.최근 모리토모 의혹과 관련 해명과정에서도 이미 여러차례 논란이 됐다.

망언 외에 또다른 특기가 반말인 그는 재무성 관료들을 지칭할 때 직책을 붙이지 않고 이름만 부르다 야당 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야당은 “관료들을 낮춰 부르는 건 문서 조작의 책임이 자신이 아닌 관료들에게 있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질문서를 일본 정부에 제출했다.

급기야 일본 정부는 아소 재무상을 변호하기 위해 “그는 평소에도 관료들을 경칭을 사용하지 않고 이름으로 부른다. 이번이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다”라는 황당한 내용의 정부 답변서를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해야 했다.

또 문서 조작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지켜봤던 아베 총리가 “왜 아소 재무상은 머리를 안 숙이느냐”며 깜짝 놀라 자신이 대국민 사과에서 먼저 머리를 숙이게 됐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전 총리가 아소 재무상의 외조부다. 또 그의 증조부는 조선인 강제 연행의 현장 아소 탄광을 세웠던 아소 다키치(麻生太吉)다. 화려한 정ㆍ재계 가문을 배경으로 승승장구해왔지만 그의 언행은 일본 정가에서 늘 논란의 대상이었다. 반경 5m 안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잘해주고, 그 바깥에 있는 이들은 완전히 무시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반경 5m의 남자’로도 불려왔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연합뉴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그를 공식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모리토모 문제로 인한)국민들의 엄중한 시선을 아소 재무상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변호했다.

지난 27일 모리토모 사건의 키를 쥐고 있던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 전 국세청 장관은 국회 증언에서 “아베 총리와 아소 재무상, 총리 관저 등은 이번 문서 조작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이 증언을 계기로 모리토모 정국에서 완전히 벗어나길 기대하지만, 아소 재무상의 망언은 아베 내각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을 더 날카롭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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