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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스펀지 교육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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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2008년 12월 한국계인 미셸 리 워싱턴DC 교육감이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을 때 못마땅하게 여긴 집단이 있었다. 교사들이었다. 빗자루를 들고 있는 이채로운 사진이 문제였다. ‘교사 퇴출’ 메시지로 해독한 교사들이 심사가 뒤틀렸던 거다. 한 해 전 임명된 미셸 리 교육감이 무능교사 200여 명을 해고하면서 ‘불량교사 쓸어 내는 빗자루’로 불렸으니 그럴 만했다. 이뿐만 아니다. 불량학교 폐쇄, 학생 성적에 근거한 교사 평가, 유능한 교사 발굴과 성과급 지급 등 그의 공교육 개혁은 파장이 컸다. ‘공교육 개혁 전도사’라는 평가에 ‘무자비한 마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교육감이 지역 교육 방향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우리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시·도 초·중·고 교육의 수장인 교육감은 예산 편성, 인사, 학교 신설 등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다. ‘교육 소(小)통령’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2014년 6월 4일 치러진 17개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인사 13명이 대거 당선되면서 교육계가 충격에 빠진 것도 그래서다. 과반의 진보 교육감 시대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교육현장의 변화와 진통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대세였다. ‘학생 대상 교육실험’ ‘돈키호테식 교육’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진보 교육감 시대는 다른 말로 전교조 교육감 시대다. 진보 교육감 13명 중 8명이 전교조 지부장·지회장 출신인 까닭이다. 이러니 교육감과 학교현장이 전교조에 휘둘리기 일쑤다. 진보 교육감도 예외가 아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2015년 전교조 서울지부와의 단체교섭을 미루고 있을 때다. 송원재 전 지부장이 페이스북에 “진보 교육감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 더 이상 진보라는 이름을 욕보이지 말라”고 했을 정도다.

진보 교육감 시대가 낳은 문제는 이념 대립 심화다. 이념과 철학이 다르다 보니 자사고 폐지·축소나 고교 평준화 확대처럼 정책 널뛰기가 다반사다. 6·13 지방선거가 코앞인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이런 와중에 그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인 고석규 목포대 교수가 진상조사 발표 직후 교육감 출마 선언을 했다. ‘스펀지 교육감’을 자임했다. “진보의 교육관을 기본으로 하되 보수 진영도 포용하겠다”는 거다. 진영 논리에 갇힌 우리 교육을 살리는 데 절실한 자세다. 그런데 공염불로 들린다. 진상조사 발표를 개인 선거 홍보에 이용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어서다. 정도를 신봉하는 이가 앉아도 버거운 게 교육감 자리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