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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남한·미국 저마다 다른 계산 … 꼬이는 비핵화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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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이선권 북한 조평통 위원장이 29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남북 고위급회담 공동보도문을 교환하고 있다. 이날 양측은 4월 27일을 정상회담 날짜로 정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이선권 북한 조평통 위원장이 29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남북 고위급회담 공동보도문을 교환하고 있다. 이날 양측은 4월 27일을 정상회담 날짜로 정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청와대는 29일 오전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방한한 직후 뒤늦게 북·중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서면 논평을 발표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정상회담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의지를 확실히 밝힌 것은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북·중은 살라미식 주고받기 요구 #미, 리비아처럼 선 핵폐기 원해 #남, 단계 협상 뒤 한번에 매듭 구상 #“한·미 긴밀 조율, 북한에 대응해야”

하지만 김정은이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비핵화의 조건으로 내걸고 중국이 이에 동의하면서 복잡해진 북핵 체스판을 바라보는 정부의 속내가 편치만은 않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했다고 하는 단계적·동시적 조치의 구체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향후 남북 및 북·미 회담 등 과정을 통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방안들이 협의돼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현재로선 북·중과 한국, 미국이 염두에 두는 북핵 로드맵은 서로 다른 세 갈래다. 목표부터 다르다. 북한은 정상국가화+∝, 한국은 항구적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마련,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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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제시한 단계적·동시적 조치는 비핵화의 과정을 여러 단계로 쪼갠 뒤 조치를 취할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달라는 뜻이다. 김정은은 “한·미가 우리 노력에 선의로 응할 것”이란 말도 했다. 북한 소식통은 “이는 ‘불안하고 못 믿겠으니 한·미가 그간의 불신부터 해소하라’는 뜻”이라며 “특히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조치를 원하는 것으로 한·미 연합훈련이나 주한미군과 관련한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은 선(先) 핵 포기를 주장한다. CVID를 향한 실질적인 조치가 이행되기 전까지는 어떤 보상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비핵화 과정을 협의하는 데 시간을 쏟다가 북한이 보상만 챙기고 대화 테이블을 걷어찼던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생각이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한·미 동맹이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조치를 했구나’라고 믿을 만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제재의 경감은 없다”고 못 박았다. 의미 있는 조치가 무엇인지는 아직 확인된 것은 없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이란이 농축우라늄 제거, 원심분리기 및 농축 시설 제거, 중수로 노심 제거 등 ‘핵 관련 초기 조치’를 취하고 국제사회가 대이란 제재를 일부 해제한 이란 핵 합의에 대해 “너무 급하게 많은 것을 내줬다”는 취지로 비판해 왔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8일(현지시간) 북·중 정상회담에 대해 “조심스럽게 낙관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준비가 되는 대로 가능한 한 빨리 하길 바라지만, 또한 적합하게(properly) 개최되는 것을 확실히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북한에 끌려다니진 않겠다는 뜻을 표한 셈이다.

한국은 단계적·포괄적 로드맵을 북핵 해법의 방향으로 제시해 왔다. ‘핵 동결→핵 폐기’라는 2단계를 큰 틀로 하며, 협상이 어느 수준에 도달한 뒤에는 비핵화와 종전선언, 평화협정, 제재완화 등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꺼번에 합의를 이끌어 내자는 것이 골자다. “(복잡한 매듭을 단숨에 자르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 버리는 방식”이라는 청와대 입장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는 단계마다 보상을 원하는 북한, 실질적 핵 폐기 관련 조치가 우선이라는 미국과 차이가 있다. 하지만 3국 모두 기존 입장만 고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어렵게 성사된 이상 3국 정상 모두 성과를 내는 것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정상들이 직접 담판을 짓는 톱다운 방식으로 과감한 주고받기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올 가을 중간선거가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국내정치적 카드로 쓸 외교적 성과가 필요하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북·미가 만나 김정은은 ‘우리 체제를 인정해 주면 비핵화를 포함한 어떤 요구도 수용할 수 있다’고 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고 비핵화 약속만 하면 단계적으로 보상을 해줄 수 있다’고 큰 합의를 하면서 이후 과정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언적인 비핵화 합의와 ICBM 능력 제거 정도에서 만족한다면 실질적 비핵화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9·19 공동성명과 비슷한 수준에서 원론적인 합의를 낼 가능성이 큰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 자체를 성과로 생각한다면 그 뒤에는 우리가 이전에도 해 봤던 긴 협상이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고집하는 이상 단계적 접근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겠지만, 우리로서는 미국과 긴밀히 조율해 그 단계를 최대한 압축하고 어떤 패키지로 채워 넣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지혜·위문희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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