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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레저터치] “헌책 보내주세요 축제하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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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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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헌책페어 공식 포스터. 강우현 탐나라공화국 대표가 직접 만들었다.

제주헌책페어 공식 포스터. 강우현 탐나라공화국 대표가 직접 만들었다.

두 달쯤 뒤 열리는 행사를 소개한다. 제주헌책페어. 이름처럼 제주도에서 열리는 헌책 축제다. 5월 25일부터 6월 30일까지 37일간 진행된다.

헌책으로 잔치를 벌이겠다는 발상이 생뚱맞다. 어떤 꼴을 갖출지 짐작도 안 된다. 그래도 믿음은 간다. 이 엉뚱한 일을 도모하는 주인공을 잘 알고 있어서다. 강우현(65). 한류관광 1번지 남이섬을 일군 주인공이다. 현재는 제주 탐나라공화국 대표다. 5년째 탐나라공화국이라 명명한 중산간에서 땅 파며 살고 있다.

작년 봄에도 축제를 열었었다. 그때 이름은 ‘제주노랑축제’였다. 중산간 언덕이 봄이면 유채·금계국·루드베키아 등으로 노랗게 물들어 노랑축제라 이름지었다. 평소 닫아뒀던 탐나라공화국 정문을 축제 동안에 열었다. 올해도 개방 계획은 같다. 주제만 달라졌다.

“헌책 버리지 마세요. 보내주세요. 제가 잘 써버리겠습니다. ‘내버리다’를 ‘써버리다’로 바꾸겠습니다. 내버리면 청소, 써버리면 창조 아니겠습니까?”

전형적인 강우현 어투다. ‘헌책도 책이다, 두고 보시라!’라는 축제 주제에서도 특유의 장난기가 묻어난다. 이 기발한 구호를 내걸고 그는 사방에서 헌책을 구하고 있다. 한국은행·경기도의회·서울아산중학교·충청북도·연세대 등 50개 넘는 단체·기관에서 이미 3만 권이 넘는 헌책을 보냈다. 앞으로 최소 20만 권은 더 받을 작정이란다. 10만㎡(약 3만 평) 면적의 탐나라공화국을 책으로 덮어버릴 기세다.

“독서 캠페인 한편에선 수많은 책이 폐기되고 있어요. 책이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지요. 헌책도서관을 지어 폐기대상 도서의 수명을 연장하려고 합니다. 더 이상 연장할 수 없으면 ‘책 무덤’이라도 만들어줄 생각입니다.”

축제 프로그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래도 걱정은 안 한다. 강우현은 잠실의 은행잎을 실어와 남이섬에 깐 재활용의 달인이다. 더욱이 그는 남이섬에서 10년 넘게 세계책나라축제를 꾸렸다. 책으로 의자·책상에 미끄럼틀까지 만들었더니 아이들이 온종일 책과 놀았다. 그리고 스스럼없이 책과 어울렸다.

마침 올해는 ‘책의해’다. 1993년 이후 25년 만에 정부가 책의해를 선포했다. 강 대표가 인연 한자락을 읊었다. “맨 처음 헌책페어를 구상할 때는 몰랐어요. 근데 아시나? 내가 25년 전 책의해 기획위원이었던 거? 그때 로고랑 디자인 내가 다 만들었어. 관제행사라고 오해할까 걱정이네.”

낙엽도 명물이 됐는데 헌책이라고 안될 이유가 없다. 헌책 보내자(제주시 한립읍 한창로 897). 참, 헌책페어는 참가 요령이 별나다. 헌책 5권을 갖고 가야 입장이 가능하다.

손민호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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