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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대북제재가 통했다 … 트럼프 임기 내 북핵 폐기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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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세종연구소와 남북-북·미 정상회담 관련 긴급 좌담회를 26일 중앙일보에서 가졌다. 왼쪽부터 정성장 실장, 김준형 교수, 진창수 세종연구소장, 김민석 소장, 이상현 본부장, 신범철 교수. [최정동 기자]

세종연구소와 남북-북·미 정상회담 관련 긴급 좌담회를 26일 중앙일보에서 가졌다. 왼쪽부터 정성장 실장, 김준형 교수, 진창수 세종연구소장, 김민석 소장, 이상현 본부장, 신범철 교수. [최정동 기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극비 북·중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 북한 비핵화의 단계적 접근 방안이다. 남북 및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단은 북한의 몸값을 올린 셈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더 복잡해질 양상이다. 그렇다고 중국 카드가 먹힐까. 북한 비핵화를 풀어갈 정상회담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정부의 해법은 오리무중이다. 본지 군사안보연구소가 세종연구소와 긴급 좌담회를 갖고 사태를 전망해봤다.

북, 중국 카드로 지연에 몸값 올려 #미, 북 시간 끌면 제재 강도 높일 판 #문 대통령, 8월 또는 10월 평양 방문 #남북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중요 #그랜드 바겐식 북핵 폐기와 보상 #북, 경제제재로 2년 이상 못버텨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와 진정성=김 위원장과 중국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북한의 비핵화는 한·미의 생각과는 다르다. 북한의 단계적 접근법은 협상 과정을 얇게 썰어 시간만 끄는 ‘살라미 전술’로 보고 있다. 미국은 과거 제네바 합의나 6자회담의 2·13합의 등에서 북한의 살라미 전술을 이미 경험했다. 그 결과 북한의 비핵화는 두 차례나 실패했다. 미국은 이런 북한의 전술을 비핵화에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국립외교원 신범철 교수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없애고 나중에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며 “하지만 시간을 지나치게 끌거나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으면 강한 제재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연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과거에는 비핵화 시점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0년 말까지 완료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도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실천에 옮기려면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북핵 폐기가 이뤄져야 한다. 김 위원장 또한 경제제재를 2년 이상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이렇게 2020년은 3자가 북핵 문제 해소,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등의 교환을 조기에 해결하겠다는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한동대 김준형 교수는 “북한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은 협상 중에 한·미 대통령의 임기가 바뀌는 것”이라며 “북핵 폐기 시한을 한·미 대통령 임기 내로 정하면 한 번에 CVID(완전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를 추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북·중이 합의한 것처럼 지지부진한 핵 협상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체적인 의견이었다.

◆최대 압박 위한 미국 전시내각 분위기=트럼프 대통령이 내각에 강경 인사들로 배치한 것은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기 위한 협상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강경 매파인 비핵화 전문가 존 볼튼 전 대사를, 국무장관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장(CIA)을 지명했다. 이들은 니키 헤일리 유엔대사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과 북핵 협상의 행동대장으로 섰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전시내각’이라고 표현했다. 신 교수는 “미국은 북한이 정상회담장에 올 때까지 최대 압박하면서 북한 스스로 양보할 수 있는 최대치를 가져오라는 계산”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제재가 일단 성공했고 자신의 전략이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경질 이유도 서두르는 트럼프 대통령을 자제시키려다 발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미국의 강경한 태도에 북한은 중국을 통해 세력균형을 꾀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남북 → 북·미 → 남북 정상회담=김 교수는 “남북 정상회담은 철저히 북·미 정상회담의 예비회담 성격이 짙다”며 “남북 회담이 북·미 회담의 디딤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에선 비핵화를 포괄적으로 합의하되 ‘비핵화’라는 문구는 꼭 넣어야 한다고 신 교수가 지적했다. 특히 “북한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 직후 양 정상의 공동기자회견도 중요하다”고 진창수 세종연구소장이 말했다. 이어지는 북·미 정상회담에선 구체적인 콘텐트가 발표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이 마치면 후속 조치를 위해 문 대통령이 빠르면 오는 8월이나 10월에 평양을 갈 수도 있다”며 “북핵 검증 문제가 생략되지는 않겠지만 굉장히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이 중국을 내세워 지연전을 펼칠 경우 미국은 대북제재와 대중국 무역보복 강도를 더 높일 전망이다.

◆그랜드 바겐과 북핵 폐기 CVID=핵 무력에 자신감을 가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세종연 이상현 연구기획본부장, 신 교수) 최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남북 정부 및 민간 전문가들의 1.5트랙 회의에 다녀온 김 교수는 “북한은 한국은 믿지만 미국에 대해선 의구심이 있다”며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저렇게 빨리 정상회담을 받아들일 줄 몰랐다고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북한 내부적으로도 (정상회담에 대한) 정리가 잘 안 된 느낌이었다”며 “북한은 미국이 정상회담을 안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갖고 있다”고 했다. 최근의 파격성과 전격성을 감안하면 북한이 오히려 미국과의 일괄타결방식인 ‘그랜드 바겐’을 들고나올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CVID식 핵 폐기를 미국에 주는 대신 되돌릴 수 없는 완전한 체제안전과 보장(CVIG)을 얻겠다는 게 그랜드 바겐이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핵무기 폐기에 동의하되 그 대가로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방식이다.(정 실장) 현재로선 최종 결정은 김 위원장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과거핵을 가진 채 한반도 평화를 미국에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 본부장)

◆대북제재 통했다=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온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효과와 핵 무력 자신감이 동시에 작용해서다. 정 실장은 “북한이 지난해 6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성공을 거뒀지만 핵 무력 완성을 너무 서둘러 발표했다”면서 “그 바람에 대북제재가 거세졌고 북한은 핵 무력 개선을 더 이상 진전시킬 수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의 계산에 오차가 생긴 것이다. 그는 “현재 북한은 준 봉쇄상태로 모든 수출이 막히고 북·중 사이에 밀무역도 끊겼다”며 “북한으로선 제재가 목 끝까지 조여오는 느낌”이라고 했다. 북한 내에선 제2 고난의 행군이라는 말도 나돈다고 한다. 헬싱키 회의에서 북한도 제재 효과를 인정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비핵화 얘기만 나오면 북한측 인사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는데 이번 헬싱키 회의에선 비핵화 얘기를 꺼내도 화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좌담회 참석자들은 미국도 핵 무력을 완성한 북한과 담판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며 북한 역시 비핵화에 어느 정도 융통성을 내보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회=진창수 세종연구소장
◆토론자=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어문학부)
◆정리=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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