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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년 걸릴 문제 100초에 푼다 … 양자컴퓨터 시대 성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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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19일부터 22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BM 싱크2018 콘퍼런스에 전시된 ‘50큐빗 양자컴퓨터’의 저온유지 장치. 가운데 원통형 부분에 50큐빗 프로세서가 탑재된다. [박수련 기자]

19일부터 22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BM 싱크2018 콘퍼런스에 전시된 ‘50큐빗 양자컴퓨터’의 저온유지 장치. 가운데 원통형 부분에 50큐빗 프로세서가 탑재된다. [박수련 기자]

“커피를 마시면 왜 잠이 잘 안 오는 걸까.”

IT기업들 ‘꿈의 속도 컴퓨터’ 도전 #0과 1 공존하는 양자상태 정보 처리 #선두 구글 이어 IBM도 개발에 박차 #삼성전자·다임러·혼다 등도 참여 #신약·인공지능·금융에 폭넓게 활용 #상용화하려면 연산 오류율 낮춰야

이 간단한 질문에 현대 과학은 명확하게 답을 못한다. 커피 속 카페인의 분자 구조와 원자들의 상호 작용, 그리고 에너지 크기 등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리 차우 IBM리서치 연구원은 “현존 최고 성능의 반도체를 지구 크기 이상으로 쌓아도 카페인 분자에 담긴 방대한 정보를 분석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이런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다. 현재의 수퍼컴퓨터가 풀지 못하는 복잡하고 방대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양자(quantum·퀀텀) 컴퓨터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구글·IBM·인텔·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IT 기업들이 기술 경쟁에 나섰다.

IBM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BM 싱크2018(Think2018)’에서 양자컴퓨팅 분야의 글로벌 연대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공상과학(SF)이었던 퀀텀, 이제 현실이 되다’는 기조연설에서 아빈드 크리시마 IBM 리서치 디렉터는 “IBM Q 생태계에는 삼성전자·JP모건체이스·다임러·혼다 같은 글로벌 선두 기업들이 참여해 IBM의 20큐빗(qubit) 양자컴퓨터로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IBM의 16큐빗 양자컴퓨터 프로세서. [사진 IBM]

IBM의 16큐빗 양자컴퓨터 프로세서. [사진 IBM]

큐빗은 양자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는 최소 단위다. 양자컴퓨터에 탑재되는 프로세서의 연산 능력은 큐빗이 커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지난해 11월 IBM은 50큐빗의 양자컴퓨터 프로세서도 개발했다고 공개했다.

이 무대에 오른 박성준 삼성종합기술원 박사(상무)는 “삼성 내부에 전담 연구팀을 꾸려서 인공지능(AI)·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퀀텀컴퓨팅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자컴퓨터는 디지털 컴퓨터보다 연산 능력이 월등히 높다. 현재 사용 중인 디지털 컴퓨터가 0과 1로 정보를 구분하는 비트(bit) 단위로 연산한다면, 양자컴퓨터는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 상태(중첩)도 정보로 처리할 수 있다. 가령, 디지털 컴퓨터가 동그란 도넛에 대한 정보를 앞·뒷면 2가지로만 처리한다고 치자. 양자컴퓨터는 360도 각도에서 본 도넛 모양은 물론이고, 도넛이 빙그르르 회전 중인 상태도 정보로 표현할 수 있다.

구글의 72큐빗 프로세서. [사진 구글]

구글의 72큐빗 프로세서. [사진 구글]

IBM이 개발 중인 50큐빗 양자컴퓨터는 한 번에 2의 50 제곱(약 1125조) 비트의 정보를 연산할 수 있다. 제시카 포인팅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원은 “현재 컴퓨터가 10억년 걸려서 풀 문제를 양자컴퓨터는 단 100초 만에 끝낸다”며 “못 풀고 있는 여러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BM은 지난해부터 개발자와 기업 등이 IBM의 5큐빗 양자컴퓨터를 써볼 수 있는 ‘IBM Q 익스피어리언스’를 클라우드에 공개했다. 현재까지 여기에 전 세계 8만 명이 참여했고 60건 이상의 연구논문이 나왔다.

양자컴퓨터로 가장 큰 혁신이 기대되는 분야는 화학이다. 신약·신물질 개발이 현재보다 훨씬 속도감 있게 이뤄질 수 있다. 삼성전자가 언급한 AI도 양자컴퓨팅 파워로 ‘퀀텀 점프’가 기대된다. 양자컴퓨터에 탑재된 AI는 현재보다 훨씬 빠르게 머신러닝(기계학습)을 할 수 있다. 현재 변수 분석이 어려운 금융 리스크 분석이나 물류·교통 최적화도 가능해진다.

구글도 양자컴퓨터 개발의 선두 주자다. 구글은 이달 초 열린 미국물리학회에서 72큐빗 프로세서(일명 브리슬콘)를 선보였다. 구글 퀀텀 AI 랩의 줄리안 켈리 박사는 “72큐빗 프로세서를 계기로 양자컴퓨터가 디지털 컴퓨터의 성능을 뛰어넘는 ‘양자 우위’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2014년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공동으로 퀀텀 AI 랩을 설립한 구글은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을 접목하려고 한다. 이외에 반도체 강자 인텔도 올해 초 49큐빗 프로세서를 공개하며 경쟁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지난해 양자컴퓨터에서 알고리즘을 실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컴퓨터 언어를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일단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 구글의 줄리안 켈리 박사는 “양자 컴퓨터의 프로세서가 알고리즘을 실행할 수 있으려면 큐빗 용량을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양자컴퓨터의 판독·연산 오류율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박수련 기자 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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