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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세계유산 등재 추진하는 한국전쟁기 ‘임시중앙청’

중앙일보

입력

부산시는 ‘한국전쟁기의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8건을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추진 중이다. 지난해 문화재청에 등재 신청을 한 결과 조건부 잠정목록에는 올랐다. 조건은 피난 생활상 유산을 추가하고 종합 보전·관리계획을 세우라는 것이다.

1925년 최초 경남도청 건물로 건립 #한국전쟁기 임시수도 정부청사 사용 #붉은 벽돌의 고풍스런 외관 'ㄷ'자 형태 #지금은 국보 등 소장한 동아대 박물관

부산시는 오는 6월쯤 문화재청에 신청서를 보완해 다시 제출할 계획이다. 문화재청을 거쳐 오는 202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이 목표다.

한국전쟁기 부산 유산 2025년 세계유산 등재 목표 

임시 중앙청이었던 동아대 석당박물관(붉은 건물). [사진 동아대]

임시 중앙청이었던 동아대 석당박물관(붉은 건물). [사진 동아대]

등재 대상 유산 8건은 한국전쟁기의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관저), 임시 중앙청(임시수도 정부청사),국립중앙관상대(부산지방기상청),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근대역사관), 부산항 제1부두, 하야리아기지(부산 시민공원), 유엔지상군사령부(워커 하우스), 유엔묘지(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 괄호 안은 현 명칭이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으로 이들 유산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 가운데 한 곳인 ‘임시중앙청’을 찾아 얽힌 사연을 알아봤다.

임시 중앙청은 붉은 벽돌로 지은 고풍스런 모습 

한국전쟁기 임시 중앙청으로 사용된 석당박물관.황선윤 기자

한국전쟁기 임시 중앙청으로 사용된 석당박물관.황선윤 기자

임시 중앙청이었던 동아대 석당박물관 야경.[사진 동아대]

임시 중앙청이었던 동아대 석당박물관 야경.[사진 동아대]

봄 날씨가 완연한 27일 오후 동아대학교 부민 캠퍼스(서구 부민동). 학생들이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농구를 하는 등 대학 캠퍼스는 활기가 넘쳤다. 정문을 들어서자 유리 외관에 현대식으로 지은 캠퍼스의 높은 건물 사이로 붉은 벽돌로 지은 ‘ㄷ’ 형태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나타났다. 동아대가 ‘석당(石堂)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임시 중앙청이었다. 석당은 학교 설립자이자 박물관장을 역임한 석당 정재환(1904~1976) 박사의 문화유산에 대한 염원과 신념을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임시중앙청은 원래 1925년 ‘경남도청’으로 건립됐다. 지하 1층, 지상 3층(옥탑 포함, 연면적 4500㎡)에 좌우대칭의 고전주의 양식 건물이다. 1931년 8월, 1940년 11월 증·개축 공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석당박물관 1층에 있는 광개토대왕비. 탁본을 근거로 만들었다.황선윤 기자

석당박물관 1층에 있는 광개토대왕비. 탁본을 근거로 만들었다.황선윤 기자

피란수도 당시에는 모든 정부 소관 부처의 업무를 조정·결정한 국정 최고 합의제 의결기관이었던 국무회의소와 국무총리실, 8개 정부부처 등이 사용하는 정부종합청사였다. 피란기 ‘임시 중앙청’으로 불렸다. 경남도청사를 긴급 활용하면서 신청사로의 이전준비를 고려해 ‘임시’를 붙였다고 한다.

역사 자료에 따르면 임시중앙청은 1950년 8월 21일 김활란 공보처장이 기자단 회견에서 정부이전 상황을 발표하였던 장소이자 한국에 군사병력과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1952년 5월 24일 체결된 한미경제조정협정의 현장이었다.

타일에 재현한 동래고지도. 황선윤 기자

타일에 재현한 동래고지도. 황선윤 기자

또 임시 중앙청 지하 현상소에서 '대한 늬우스' 등을 송출했으며, 공보처에서는 1952년 특별전선 뉴스 등을 전하기도 했다.

임시중앙청에서 '대한 늬우스' 송출

종전 이후 경남도청 건물로 환원됐으며, 1984년부터는 부산지방법원 및 검찰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어 동아대가 인수해  2002년부터 2009년 5월까지 보수·복원공사를 거쳐 박물관으로 개관해 사용 중이다.

등록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된 박물관 1층에 들어서자 높이 6m가 넘는 거대한 광개토대왕비가 나타났다. 광개토대왕비의 탁본을 근거로 실물 크기로 다시 제작한 비석이다. 비석 속 글씨는 실제 비석의 글씨와 달리 또렷했다.

경남도청으로 건립 당시의 벽돌. 세월의 흔적인양 곳곳이 파여있다. 황선윤 기자

경남도청으로 건립 당시의 벽돌. 세월의 흔적인양 곳곳이 파여있다. 황선윤 기자

2층은 고고실·도자실·와전실·불교미술실·서화실·민속실 등으로 나누어 실제 박물관 전시실로 사용 중이었다. 2층 전시실 로비에는 발굴 당시의 ‘금조총’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박물관 전시실엔 동궐도 등 국보 전시

한 전시실에 들어가자 국보 제249호인 동궐도(東闕圖)가 나타났다. 경복궁 동쪽에 있는 동궐, 즉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작품으로 거대한 궁궐과 산수가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보여준다. 또 다른 곳엔 ‘동래 고지도’를 타일로 재현해 관람객이 지도 위에 서서 부산의 옛 지명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해놓았다.

박물관에 전시 중인 개 뼈. BC 1세기경 개 뼈다. 황선윤 기자

박물관에 전시 중인 개 뼈. BC 1세기경 개 뼈다. 황선윤 기자

경남 사천시에 있는 ‘늑도’유적지에서 출토된 개 뼈를 개 형상 그대로 전시해놓은 곳도 있었다. 늑도에서는 인골과 함께 20기 이상 매장된 개가 출토됐다. 당시(BC 1세기)의 장례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된다고 패널에 적혀있었다.

박창열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박물관은 국보인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녹권’과 ‘동궐도’, 보물인 안중근 의사의 유묵(見利思義 見危授命), 중요민속문화재, 부산시 지정 유형문화재 등 다양하고 진귀한 유물 3만여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물관 인근에는 부산 마지막 전차도

박물관 인근 야외에는 1952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부산의 마지막 전차가 전시돼 있었다. 부산은 1915년부터 전국에서 2번째로 전차가 운행됐다. 전국에 남아있는 3대(서울)의 전차 가운데 부산에 남은 유일한 전차다.

경남도청으로 건립당시의 나무기둥과 보, 지붕(사진 아래쪽). 그 위는 보수 복원된 지금의 지붕 골조. 황선윤 기자

경남도청으로 건립당시의 나무기둥과 보, 지붕(사진 아래쪽). 그 위는 보수 복원된 지금의 지붕 골조. 황선윤 기자

전시실 2층과 3층 곳곳에는 건립 당시 사용된 붉은 벽돌이 군데군데 파여있는 등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기존 벽체를 그대로 두고 최소한으로 수리·복원한 때문이다. 3층에는 건립 당시 사용된 나무기둥과 보, 기와, 수막새 등을 전시해놓았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동아대 경영학과 2학년 박정민·김경은 학생은 “등잔 밑이 어둡다고 박물관 구경을 제대로 못 했다. 구경해보니 너무 신기하고 진귀한 유물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이날 설명을 도와준 박물관 문화해설사 서영희(69)씨는 “석당 박물관은 연간 9만여명이 찾는 손꼽히는 박물관 중 하나”라며 “세계유산 등재 추진으로 시민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석당박물관 인근에 전시 중인 부산의 마지막 전차.황선윤 기자

석당박물관 인근에 전시 중인 부산의 마지막 전차.황선윤 기자

임시 중앙청 인근엔 한국전쟁기의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관저, 현 임시수도 기념관), 한때 부산지법·검찰청 건물로 사용된 동아대 법대 건물과 미술관이 있다. 박 학예연구사는 “임시중앙청과 경무대 등은 부산 근대유산의 1번지”라고 말했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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