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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50만대 초미세먼지 내뿜는 컨테이너선에 숨막힌 부산

중앙일보

입력

부산 동구에서 바라본 부산항 부두 시설들이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뿌옇게 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부산 동구에서 바라본 부산항 부두 시설들이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뿌옇게 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국내 주요 항만 도시의 미세먼지 오염이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이 수도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주요 오염원의 하나인 선박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8일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항만과 공단이 밀집한 부산시 사하구와 사상구는 지난해 초미세먼지(PM 2.5) ‘나쁨’ 기준인 ㎥당 35㎍(마이크로그램)을 넘은 날이 각각 128일과 119일을 기록했다. 초과일수 기준으로는 초미세먼지 관측망을 갖춘 전국 158개 시·군·구 중에서 전북 익산시에 이어 두 번째와 네 번째로 많았다.

네이처가 선정한 초미세먼지 세계 10대 오염 항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네이처가 선정한 초미세먼지 세계 10대 오염 항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대표적인 항만 도시인 부산이 이처럼 오염이 심한 것은 선박에서 배출하는 미세먼지 탓이 크다. 국립환경과학원의 2014년도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자료에 따르면 부산에서 배출한 초미세먼지 중 선박이 차지하는 비중은 51.4%로 절반을 넘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2016년 부산항을 중국의 7개 항만, 두바이, 싱가포르와 함께 ‘10대 초미세먼지 오염 항만’으로 선정했다.

정장표 경성대 건설환경도시공학부 교수는 “부산은 초미세먼지 농도가 2008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수도권 등 다른 지역과 달리 선박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남 목포(59.3%), 경남 거제(42.7%), 충남 서산(49.1%) 등 다른 주요 항구 도시들도 선박에서 배출하는 초미세먼지의 비중이 높았다.

“선박 오염물질 배출로 1100명 조기 사망”

컨테이너선박과 트럭 초미세먼지 배출량 비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컨테이너선박과 트럭 초미세먼지 배출량 비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박은 벙커C유 등 질 낮은 연료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초미세먼지를 비롯해 황산화물(SOx)과 질소산화물(NOx) 같은 대기 오염물질을 다량 배출한다. 전 세계 질소산화물의 15%와 황산화물의 5~8%를 선박이 배출할 정도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컨테이너 선박 1척이 배출하는 황산화물은 디젤 승용차 5000만 대, 초미세먼지는 트럭 50만 대의 분량이다.

특히 선박 운항에 따른 대기오염 배출은 연안의 400㎞ 이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항만 도시에 집중적으로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중국 칭화대 연구팀은 2016년 '네이처 기후변화'에 게재한 논문에서 선박의 오염물질 배출로 한국에서 500~1100명이 조기 사망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세먼지 예산과 규제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보니 주요 항구 도시들도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비상 저감조치를 발령해도 근거 법령이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아직 권고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위험 수준에 이른 항만 도시의 미세먼지를 줄이려면 선박에 대한 규제를 하루빨리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장 2020년부터는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에 따라 국제 항해 선박은 황 함량이 0.5% 이하인 연료를 사용해야 한다. 중국 역시 2016년 초부터 핵심 항만 구역을 대상으로 연료유 규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연료 규제를 강화하면 물동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반발에 부닥쳐 지금까지 황 함량 기준 3.5%를 유지하고 있다.

김근섭 KMI 항만정책연구실장은 “유럽에선 오래전부터 항만 도시의 대기오염 문제를 관리해 왔지만 우리는 이제야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정박 중인 선박에는 육상전원공급장치(AMP)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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