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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교통사고 사망자 5명에서 1명으로 줄어든 까닭

중앙일보

입력

2016년 대구 교통사고 사망자 158명…이 중 55.7%가 노인

지난달 1일 오후 대구 수성구 달구벌대로에서 한 노인이 파지가 가득 담긴 수레를 밀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일 오후 대구 수성구 달구벌대로에서 한 노인이 파지가 가득 담긴 수레를 밀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월 24일 오전 6시30분쯤. 새벽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 대구 북구 침산동 한 횡단보도를 건너던 A씨(76)가 화물차에 치였다. 화물차는 침산네거리에서 오봉오거리 방향으로 달리다 A씨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를 덮쳤다. 다행히 A씨는 목숨을 잃지 않았지만 큰 부상을 당했다.

A씨의 교통사고는 전국에서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유형이다. 바로 야간·새벽시간에 일어나는 65세 이상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다. 사고가 일어난 대구에서만 매년 50~80명의 노인이 교통사고로 숨진다. 하지만 노인 교통사망사고는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연 평균 1~2명씩 사망사고를 일으키는 어린이 교통사고가 주목 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인구 250만여 명인 대구시는 인천시(290만여 명)보다 인구가 적지만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더 많다. 인천시는 2016년 6만172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대구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6만1454건(보험 접수 기준)보다 1282건 적은 수치다. 이 때문에 대구시는 지역 교통사고의 유형을 분석해 사고 건수를 줄이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2016년 대구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158명.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가 분석한 결과 이 가운데 68.8%가 야간(일몰 후부터 일출 전까지)에 길을 걷다 발생했고 55.7%가 65세 이상 노인 보행자였다. 숨진 노인 보행자 중 대다수가 야간에 사고를 당했다. 결국 야간에 길을 걷는 노인이 가장 교통사고에 취약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야간에 집이 아닌 바깥에서 활동하는 노인은 주로 파지 수집을 하거나 노점상에 종사하는 '빈곤 노인'일 가능성이 높다.

야간에 도로에서 파지를 담은 리어카를 끌고 가고 있는 노인(붉은 원).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

야간에 도로에서 파지를 담은 리어카를 끌고 가고 있는 노인(붉은 원).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이하 공단)는 2016년부터 전국 최초로 '취약계층 어르신 살리기 특별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교통사고에 가장 취약한 빈곤 노인을 사고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공단은 가장 먼저 2014~2016년 대구의 어느 지점에서 어느 시간대 노인 교통사고가 발생했는지 빅데이터 분석에 나섰다. 동구 큰고개오거리, 서구 북비산네거리, 남구 안지랑네거리, 북구 칠성시장 인근, 중구 대구역네거리, 수성구 삼육초 인근, 달서구 성당네거리, 달성군 화원역 동편 등 모두 103곳이 노인 보행자 최고 위험 지역으로 꼽혔다. 각 지역별로 사고 확률이 높은 시간대도 파악했다.

공단은 노인 보행자 최고 위험 지역에서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활동을 계획했다. 우선 대구 8개 구·군 중 남구에서 시범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각 지자체 소속 공공근로자 4~6명씩을 위험지역·위험시간대에 배치했다. 이들은 2~3시간씩 보행자 안전을 돕고 교통 안전 캠페인을 펼쳤다.

지난해 8월 중순부터 12월까지 약 5개월간 시범사업을 실시한 결과는 놀라웠다. 노인 교통사망사고가 전년 동기보다 5배(5명→1명)나 줄었다. 공단 관계자는 "부상자 수와 교통사고 발생건수 통계가 발표되는 오는 5~6월엔 이들 수치도 크게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가 분석한 노인 교통사고 다발지점 중 일부. 대구 동구 큰고개네거리 인근의 2014~2016년 교통사고 현황을 분석한 것이다. [사진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가 분석한 노인 교통사고 다발지점 중 일부. 대구 동구 큰고개네거리 인근의 2014~2016년 교통사고 현황을 분석한 것이다. [사진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

공단은 올해 7개 구·군에서 '취약계층 어르신 살리기 특별 프로젝트'를 확대 실시하고 있다. 위험 지역에 위험 시간별로 공공근로자를 이틀에 한 번씩 배치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공단은 야간에 파지 수집을 하는 노인을 보호하기 위해 야광밧줄과 반사지를 배부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단디바'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야광밧줄은 리어카에 짐을 싣고 이동하는 노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밧줄이다.

공단 실험 결과 야광밧줄과 반사지를 사용한 리어카는 100m 거리에서도 리어카를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빛을 반사했다. 파지 수집 활동을 하는 노인들이 대구에서만 2만5000~3만 명 정도 있을 것으로 추산돼 교통사고 발생 비율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공단은 기대하고 있다.

파지를 담는 리어카에 사용할 수 있는 '단디바.'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가 개발한 야광밧줄이다. 야간에 차량 전조등 빛을 반사한다. [사진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

파지를 담는 리어카에 사용할 수 있는 '단디바.'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가 개발한 야광밧줄이다. 야간에 차량 전조등 빛을 반사한다. [사진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가 개발한 노인 보행 안전 아이템. 리어카에 감을 수 있는 야광밧줄 '단디바'와 각종 반사지. 대구=김정석기자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가 개발한 노인 보행 안전 아이템. 리어카에 감을 수 있는 야광밧줄 '단디바'와 각종 반사지. 대구=김정석기자

프로젝트를 주도한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 김정래 박사는 "노인 교통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장소와 시간대에 인력을 배치하고, 야간에 활동하는 노인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개발해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다른 지역에서도 각자 실정에 맞는 노인 교통사고 대책을 세워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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