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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응원가 '무한도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MBC 간판 예능 무한도전 [사진 MBC]

MBC 간판 예능 무한도전 [사진 MBC]

이번 시즌 무한도전의 마지막 이야기가 31일 방송된다. 무한도전이 다음 회에 대한 기약없이, 자의에 의해 휴식기를 갖는 건 2005년 4월 방송을 시작한 지 4726일(12년 346일) 만이다. 돌아올 일시도, 형식도 확정하지 않은 상태. 하지만 팬들은 "언제든 돌아오라"며 기다릴 준비를 끝마쳤다. 김태호 PD도 '사실상 종영이냐'는 질문에 "사실상 종영이라고 표현하면 오보가 될 수 있다"며 웃었다.

그저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멈춘 것인데 왜 그리 유난이냐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한도전을 챙겨봤던 시청자에게 무한도전의 공백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비단 무한도전이 똑같은 예능 포맷을 자가복제해왔던 한국 예능 시장에 ‘리얼버라이어티’라는 굵직한 새 획을 그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10여년간 무한도전은 만성 결핍의 현실 속에서 시청자 옆에 나란히 서 그들을 응원했다.

MBC 간판 예능 무한도전 [사진 MBC]

MBC 간판 예능 무한도전 [사진 MBC]

무한도전이 내세운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키워드는 그래서 상징적이다.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사회와는 반대로 그럴듯한 스펙이나 뭣도 없는 현실. 하지만 절망 대신 자그마한 행복을 좇으며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젊은 세대는, 자신들을 ‘대한민국 평균 이하’로 지칭하며 어이없게 웃음을 만들어내는 이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무한도전의 팬덤이 됐다.

연예인의 사적인 이야기라면 질색부터 하고 보는 요즘이지만, 무한도전 멤버들의 소소한 소식을 전하는 ‘무한뉴스’에는 친구 이야기처럼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는 사이 무한도전의 주 시청 층인 10대와 20대는 어느덧 20대와 30대가 됐다. 무한도전의 종영 소식이 전해지자 적지 않은 팬들이 시청자 게시판과 관련 기사 댓글을 통해 “나의 청춘을 함께 버텨준 무한도전, 고맙다”라고 아쉬움을 전하는 이유다.

귀퉁이 코너로 시작한 '무한도전' 

2005년 방송을 시작한 MBC '무모한 도전'. 1회에서 멤버들은 황소와 줄다리기 대결을 했다. [사진 MBC]

2005년 방송을 시작한 MBC '무모한 도전'. 1회에서 멤버들은 황소와 줄다리기 대결을 했다. [사진 MBC]

2005년 4월 ‘무한도전’은 MBC 주말 예능 ‘강력 추천 토요일’의 귀퉁이 코너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됐다. ‘일류 연예인이 되기 위한 초특급 도전’이라고 외치는 유재석과 정형돈, 노홍철 등은 첫 회 황소와 줄다리기 대결을 펼친다. 대결에 앞서 황소와 기 싸움(?)도 한다. 당시 시청률이 낮아 폐지까지 고려됐지만, 무한도전 열혈팬들은 이때를 떠올리며 ‘향수병’을 느끼곤 한다. 배수구 물빼기, 지하철과의 달리기 대결, 모기향보다 모기 많이 잡기, 동전 분류기보다 동전 더 빨리 분류하기 등 대결이 이어졌는데,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는 도전과 이에 과할 정도로 몰입하는 멤버들의 태도는 실소를 거쳐 ‘피식’ 하는 웃음으로 자리 잡았다.

각 멤버들 별명만 수백개, 캐릭터의 힘

2006년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을 맡으며 지금의 형태를 갖췄고, 상황만 주어지고 대본은 사실상 없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시작된다. 김태호 PD는 "워낙 캐릭터 쇼를 좋아해서 끌렸다. 결국 예능은 캐릭터 싸움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태호 PD의 얘기처럼 제작진과 멤버들은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각 멤버들에게 붙여진 별명들이 이를 보여준다. 2013년 초 유행한 ‘무한도전 별명 정리’ 글에 따르면 박명수만 하더라도 당시 기준으로 ‘고유명수’ ‘찮은이형’ ‘산유국’ ‘흑채1기 개그맨’ 등 총 294개의 별명이 붙었다.

무한도전은 ‘물’과 같았다. 정해진 형식 없이 원통에 담으면 원기둥이 됐다가, 사각 그릇에 담으면 사각이 됐다. 이 때문에 일부 예능 PD들 사이에선 “모든 예능 포맷을 끌어다 쓰는 예능계의 ‘황소개구리’”라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이는 반대로 무한도전이 모든 포맷을 소화할 만큼 유연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유연함은 무한도전의 13년을 가능하게 했던 힘이다. 여기에 각각의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입혀진 친숙한 캐릭터는 어떠한 새 이야기를 끌어와도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콩트서부터 장기프로젝트까지…변화무쌍 무한도전

2010년 9월 방송된 WM7 레슬링 편 [사진 MBC]

2010년 9월 방송된 WM7 레슬링 편 [사진 MBC]

멤버들의 소식을 전하는 무한뉴스나 무한상사와 같은 상황극은 물론 에어로빅, 레슬링, 조정 등 굵직한 장기 도전 프로젝트까지 소화할 수 있었던 이유다. 축구 선수 앙리와 테니스 샤라포바, 격투기 표도르, 농구 스테판 커리, 복싱 파퀴아오 등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세계적 스타들도 무한도전에는 문을 두드렸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무한도전은 시사적인 내용까지 예능의 범주에 끌어들여 ‘예능은 웃기면 그만’이라는 오래된 틀을 허물었다.

무한도전 ‘위기설’이 등장한 건 2010년 이후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였던 멤버들이 입지를 다지고 톱스타 반열에 오르면서 캐릭터 쇼는 한계를 보였다. 그럼에도 김태호 PD 등 제작진은 무도 가요제, 못ㆍ친ㆍ소, 토ㆍ토ㆍ가 등 기획력으로 한계를 극복했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법. 김태호 PD는 "예전에는 아침에 멤버들을 깨우는 것만으로도 한 회 에피소드가 나왔는데 지금 이런 에피소드는 대한민국 예능에서 한 번쯤은 봤음직한 그림이 됐다. 여전히 할 만한 소재들은 너무 많은데 쉽게 풀리는 건 없다"고 말했다. 김태호 PD는 특히 "2010년 이후 무한도전의 방송시간도 늘어나고, 멤버들이 이탈하는 등 변곡점이 생겼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괜찮은데, 만족할만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물리적 시간도 안 되다 보니 어떤 때는 보여드리기 부끄러운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29일 이번 시즌의 마지막 녹화를 한다. 31일 방송이 끝난 뒤에는 약 한 달간 옛 무한도전을 재방송한다. 무한도전의 후속작은 음악퀴즈쇼 컨셉의 프로그램으로 최행호 PD가 기획을 맡았다. 무한도전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김태호 PD의 얘기를 그대로 옮긴다.

"지금 상황에서 표현은 종영보다는 시즌 종료가 맞다. 시청자들이 무한도전을 좋아해 주셨던 이유는 친근해서라기보다는 뭔가 특별하고 달라서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멤버들과 얘기했던 게 매주 친근한 예능도 좋지만, 무한도전의 처음을 생각해보자는 거였다. 우리가 힘들어서 멈추는 게 아니다. '무한도전 이름에 맞는 일을 지금 하고 있나' 스스로 물었다. 1년에 하나를 하든, 10개를 하든 매주 특별했으면 한다. 우리가 준비가 되고 할 얘기가 있으면 돌아올 수 있는 계기는 분명 있을 것이다. 돌아오고 싶어하는 멤버들의 의지도 분명히 강하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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