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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하우스→텃밭→미래섬?…서울시장 영욕 깃든 노들섬

중앙일보

입력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물놀이 장소로 첫손에 꼽히던 곳이 노들섬이다.

고운 모래밭이 펼쳐진 노들섬의 동쪽은 ‘한강 백사장’으로 불리며 여름철이면 서울시민의 강수욕장으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서울광장에 겨울이면 설치되는 스케이트장이 당시에는 노들섬에 있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노들섬이 서울의 복합 휴양지로 이름을 날렸던 셈이다.

역대 서울시장. 왼쪽부터 이명박·오세훈 전 시장, 박원순 현 시장 [중앙포토]

역대 서울시장. 왼쪽부터 이명박·오세훈 전 시장, 박원순 현 시장 [중앙포토]

191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의 용산과 연결된 강가여서 신초리라는 마을이 위치했던 이 곳은 일제시대인 1917년 한강인도교가 세워지면서 중지도(中地島)라는 섬으로 바뀌었다. 다리를 떠받치는 기둥을 튼튼히 하기 위해 주변의 흙을 모아 쌓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인 1995년 일본식 지명 개선사업에 따라 중지도라는 이름 대신 지금의 노들섬이란 이름이 쓰이기 시작했다. 노들이란 이름에 관해선 여러 해석이 있지만 조선시대 ‘백로(鷺)가 노닐던 징검돌(梁)’이라는 뜻의 노돌 또는 노들에서 유래했다는 해석이 있다. 같은 어원을 가진 지명을 가진 곳이 노들섬 위에 놓여진 한강대교 남단에 위치한 노량진(鷺梁津)이다.

노들섬 전경 [중앙포토]

노들섬 전경 [중앙포토]

그런 노들섬이 또다시 서울시민의 주목을 받고 있다. 6·13 지방선거를 맞아 노들섬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놓고 논쟁이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불을 지핀 사람은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는 우상호 의원이다. 우 의원은 27일 기자회견에서 “한강에 새로운 미래의 숨결을 불어넣겠다”며 “그 첫걸음으로 박원순 시장이 텃밭으로 사용해왔던 노들섬을 미래섬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노들섬을 4차 산업 기술의 종합세트장으로 만들어 세계가 찾아오는 서울의 명소로 만들겠다”는 ‘뉴 한강 프로젝트’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동안 노들섬은 역대 서울시장의 정체성을 투영하는 시험장과 같았다. 청계천 사업으로 서울 중심부를 바꿔놓은 이명박 전 시장은 임기 막바지였던 2005년 1월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 건립 계획을 세웠다.

바통을 이어받아 2006년 7월 취임한 오세훈 전 시장은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오페라하우스뿐 아니라 다양한 공연과 전시 행사를 할 수 있는 복합문화단지를 추진했다. 호주 시드니에 버금가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서울시의회의 주도권을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이 아닌 민주당이 쥐게 되면서 복합문화단지 사업은 좌초 위기에 몰렸다. 그러다 2011년 8월 무상급식을 반대하던 오세훈 전 시장이 주민투표 무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이 사업도 결국 물거품이 됐다.

2011년 10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수도 서울의 시정을 이끌게 된 박원순 시장은 노들섬을 정반대의 용도로 쓰기 시작했다.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겠다며 텃밭으로 꾸민 것이다.

그런 도심농업 계획도 오래가지 못했다. 2015년 11월 서울시는 1년 내내 공연이 가능한 무대, 다양한 예술인이 모일 수 있는 문화집합소, 예술인이 회의와 숙박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노들 스테이’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대로 현재 노들섬에선 공사가 한창이다.

박 시장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당선된다면 노들섬 개발 계획은 크게 수정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우 의원처럼 새로운 시장이 탄생하면 노들섬의 앞날은 또 바뀌게 될 가능성이 크다.

노들섬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든 간에 백로가 노닐던 곳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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