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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촌오거리 사건 억울한 누명자를 만든 그들은 지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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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의 법률 대리인이었던 박준영 변호사. [연합뉴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의 법률 대리인이었던 박준영 변호사. [연합뉴스]

범행과 무관한 사람이 잘못된 수사와 재판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10년이나 옥살이를 한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강도’ 사건의 진범에게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당시 사건에 관여했던 경찰, 검찰, 판사 중 피해자에게 사과한 이는 아무도 없다.

“진범 2003년 자백 때 구속만 했어도…”

재심 법정 앞에서 만난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당사자 최모씨와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 [사진 박준영 변호사]

재심 법정 앞에서 만난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당사자 최모씨와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 [사진 박준영 변호사]

최초 목격자에서 살인자로 억울한 누명을 쓴 최모(33‧당시 16)씨의 재심 사건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사건 재수사가 진행됐던 2003년 검찰의 행태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박 변호사는 28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진범은 지금 나타난 게 아니라 2003년 제보로 잡혔고, 그 당시 뉘우친다면서 자백을 다 했었다”며 “그런데도 그 당시 검사가 불구속으로 수사지휘를 하고 무혐의 처분을 하는 바람에 당시 처벌받으려 했던 진범의 의사가 묵살됐다”고 말했다.

2003년 3월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접한 군산경찰서 황상만 반장은 진범 김모(37‧당시 19)씨를 붙잡았고, 김씨는 수사 초기에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김씨가 진범이 맞는다면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재판에 넘긴 꼴이 되는 경찰과 검찰은 발칵 뒤집혔다. 유죄 판결까지 내린 법원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검찰은 진범 김씨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해버렸다. 범인이 이미 검거돼 복역 중이라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풀려난 김씨는 진술을 번복했고,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서 진범 김씨는 재판 한 번 받지 않고 혐의를 벗었다.

박 변호사는 “그때 잡혔으면 진범은 처벌받았을 것이고, 이미 출소했을 것이다. 그리고 억울한 옥살이 10년을 했던 친구도 그때 풀려났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진범 풀어준 검찰, 아직 현직에”

박 변호사에 따르면 2000년 첫 번째 수사 당시 수사와 재판에 관여했던 검사나 판사들은 대부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가혹수사를 했던 경찰의 경우 이미 퇴직한 수사관이 많으며 현역에 있던 경찰관 한 명은 2년 전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박모 경위가 재판이 시작된 뒤 너무 괴로워하며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박 경위와 함께 증언했던 현직 경찰관 한 명이 여전히 경찰 조직에 남아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2003년 재수사 당시 불구속 수사를 지휘하고 무혐의 처분해 진범을 풀어줬던 검사는 여전히 현직에 있다고 박 변호사는 전했다.

그는 ‘그분들 가운데 누구 한 분이라도 억울한 옥살이한 분에게 사과한 사람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한 명도?’라고 재차 묻는 말에도 “네”라며 단호했다.

박 변호사는 “세상에는 제가 다 한 거로 나오는데 그건 아니다. 익산 사건 같은 경우 당시 용기를 내서 재수사했던 황상만 반장의 결심이 없었다면 재심 무죄, 진범 유죄판결은 절대 있을 수가 없다”며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어야 정의로운 결과를 볼 수 있다. 주변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에 관심 갖고 용기 있는 실천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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