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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안희정 대망론 꺼진 충남, 야당은 이인제 등판으로 가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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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의 정치 속으로

인물난에 올드보이 찾는 한국당

이인제 곧 출마회견, 선거전으로 #이완구 재보선 투입도 아직 유효 #여 우세 속 야는 미투 반전 기대감 #캐스팅 보트 지역서 바람일지 주목

6·13 지방선거가 불과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자유한국당의 공천 작업은 난산을 거듭하고 있다. 텃밭인 영남을 제외하면 선뜻 후보로 나서겠다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높은 지지율이 일차적 원인이다. 여기에다 사정 당국의 수사와 세무조사 가능성이 가뜩이나 움츠러든 한국당 성향 후보군을 얼어붙게 만들었다고 한다. 유일한 예외 지역이 충남이다. 여권의 유력 차기 대선주자로 꼽혔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까지 낙마하자 충남지사 선거구도는 출렁이고 있다. 후보군 움직임도 빨라졌다.

한국당은 주초부터 연 이틀째 어수선했다. 충남지사 후보에 이인제 고문을 전략공천키로 사실상 결정하자 정용선 예비후보가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 후보측 당원들은 홍문표 사무총장 사무실을 찾아 경선을 촉구했다.

하지만 성일종 충남도당위원장은 “나서지 않겠다는 이 고문에게 여러 차례 강제하다시피 출마를 요청한 마당에 경선하라는 건 도리가 아니다”며 “안희정 쇼크 전엔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제 와서 경선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게 당의 입장”이라고 전략공천을 기정사실화했다.

실제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당의 충남지사 후보군은 대체로 주저하는 분위기였다.

충남지사 선거구도

충남지사 선거구도

안희정 쇼크 전엔 나서겠다는 후보 없어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린 지난 23일 오전 국립 대전현충원 현충광장. 천안함 폭침 생존 장병인 예비역 병장 전준영씨가 산화한 동료 장병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자 훌쩍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점점 커졌다.

그의 북받친 목소리가 몇 차례 떨리더니 ‘보고 싶다 동혁아’를 외치자 행사장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다. 앞 좌석의 이인제 고문과 이명수(아산갑) 의원도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눈시울이 붉었다.

함께 앉은 두 사람은 모두 한국당의 강력한 충남지사 후보들이다. 두 사람 중 홍준표 대표가 먼저 염두에 둔 전략공천 대상자는 이명수 의원이었다. 홍 대표는 그때까지만 해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필승카드”라며 이 의원 띄우기에 주력했다. 하지만 정작 이 의원이 소극적이었다.

이 의원에게 먼저 물었다.

홍 대표는 ‘필승카드’라는데 왜 주저하나.
“충청남도에서 과장·국장을 거쳐 행정부지사까지 지냈다. 도정에 복귀한다는 명분은 좋지만 현실적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다.”
현실적 여건이란.
“의원직을 던지고 나가야 하는데 유권자에게 내세울 후임자가 마땅치 않고, 막대한 선거 비용을 감당할 자신도 없다.”
당에 그런 뜻을 전했나.
“내가 충청 후보로 뛰게 될 경우 재보선 후임자론 이완구 전 총리를 추천했고 선거비 문제도 얘기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한국당의 충남지사 후보는 누가 될까.
“인지도를 생각하면 이인제 고문이다.”

정권 독주에 균형 잡으려는 표심 쏟아질 것

눈물 꽤나 쏟았다는 옆자리의 이인제 고문은 조금 다른 이유로 사양했다.

충남지사 후보에 공천 신청은 했나.
“하지 않았다. 경기지사를 한 게 23년 전이다. 이젠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뒤에서 도와야 할 입장이다. 내가 나설 상황이 아니다.”
재보선에도 관심이 없나.
“어려운 지역에서 기여할 수 있다면 당에 힘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보선 후보도 이제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충남 판세는 어떻다고 보나.
“정당 지지율 등 여러 지표만 보면 한국당은 어둡고 암담한 상황이다. 하지만 선거 민심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한다. 지금 시점에서 낙관하거나 비관할 일이 아니다. 특히 충청은 중심, 균형을 잡으려는 민심이 강하다. 현 정권의 독주에 균형을 잡으려는 표심이 본능적으로 나올 거라고 본다.”
안희정 전 지사 낙마에도 한국당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여론조사만큼 그렇게 불리하다고 보지 않는다. 안 전 지사는 이미 출마하지 않기로 했던 사람이다. 본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으니 이번 선거는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본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 나갈 때 승리를 장담하고 나간 게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니 높은 사명감과 열정으로 승리했다.”

여 후보는 양승조 대 복기왕 경선 승자 될 듯

한국당의 충청권 ‘올드 보이’엔 6선 관록의 이인제 고문과 함께 충남지사를 지낸 이완구 전 총리도 있다. 지난 연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돼 성완종 리스트의 멍에를 털어냈다. 충남 지역에서 출마하려는 기초·광역 의원 예비후보들이 이 전 총리의 충남지사 도전을 촉구하는 연판장을 작성해 당에 전달하기도 했다. 홍 대표 역시 “이 전 총리가 명예회복을 원한다면 당에서 적극 돕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한국당 박찬우 전 의원의 낙마로 치러지는 천안갑 재보선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홍 대표가 길환영 전 KBS 사장을 천안갑 당협위원장으로 영입한 뒤 지난 주말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떠나면서 한 말은 “정치권에서 3개월은 긴 시간이다. 현재 출마 여부를 논하기엔 이르다. 한 달 후에 보자”는 것이었다. 또 “충청 대망론은 꺾이지 않는다. 역할이 주어지면 피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도 내놨다. 지금 상황에선 재보선 지역이 완전히 마무리된 것도 아니어서 그의 재보선 등판은 아직도 유효한 카드다.

당초 충남지사 선거는 한국당 내부에서조차 “어렵다”는 비관론이 지배적이었다. 민주당 경선전이 결국 본선이란 말이 많았다. ‘충청 대망론’을 앞세운 안희정 전 지사의 영향력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박수현 전 대변인과 4선의 양승조(천안병) 의원, 복기왕 전 아산시장 등이 출사표를 냈다.

모두 경쟁력이 만만치 않은 데다 한국당은 대항마를 찾지 못했다. 하마평에 오른 정진석 의원 등은 모두 고사했다. 인지도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정용선 전 충남경찰청장이 유일한 공천 신청자였다. 복수의 후보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희정 쇼크에 이어 박수현 전 대변인의 중도 사퇴가 몰아치면서 당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패색이 짙던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반전 기회를 잡았다는 분위기가 감돌자 그동안 잠행하며 정치적 행보에 나서지 않았던 ‘올드 보이’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중량감 있는 이 고문과 이 전 총리가 동시에 출마하는 ‘쌍끌이’에 나서면 한국당으로선 지역 시너지와 함께 충청발 바람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충청 대망론 꺼지자 거물급 후보에 갈증 커져

당장 판세가 뒤집힐지 여부는 미지수다. 대선 주자, 경기 지사, 노동부 장관 등의 경륜을 고려하면 이인제 고문의 출마는 파괴력이 있을 거란 전망이 많다. 김종필 전 총리에 이어 이회창, 반기문, 안희정 등 30년간 지속돼 온 ‘충청 대망론’이 꺼져 지역에선 충청권을 대표하는 거물급 카드에 대한 갈증이 있다. 여기에다 경험이나 인지도를 고려하면 당의 지방선거 흥행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신선감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 고문은 유력한 대선 주자였다. 13대 경기도 안양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16대부터 충남 논산·계룡·금산 지역구에서 각기 다른 당적으로 도전했다. ‘피닉제(불사조를 의미하는 피닉스와 이인제의 합성어)’란 별명은 어떤 악재에도 당선돼 부활한다는 뜻에서 생겼다. 그런데 이번엔 체급이 다른 충남지사 선거다.

이완구 전 총리의 경우 대법원의 무죄판결에도 ‘정서적으로도 무죄’란 이미지를 회복하기엔 아직 시간이 짧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 탓에 민주당에선 ‘구시대 인물과 새시대 인물의 대결 구도로 가면 최상의 그림’이란 말이 나왔다. 안희정 쇼크가 여당을 불리하게 만든 건 사실이지만 안 전 지사 개인의 문제로 정리되면 여당 후보들이 극복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선 충청발 반전 분위기 확산 기대감

한국당은 여권 전체를 성 추문 프레임에 맞춰 공격중이다. 홍 대표는 16일 천안에서 충청 민심점검회의를 열고 “충절과 예절의 고장에서 충남 도지사의 그릇된 행동과 도지사 후보의 잘못된 행동으로 충청인의 자존심이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안희정 전 지사와 박수현 전 대변인을 겨냥했다. 홍문표 사무총장은 “민주당은 충남에 도지사를 비롯해 어떤 후보도 내면 안 된다”고 압박했다.

충청은 영호남에 비해 지역색이 뚜렷하지 않아 늘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지역이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렸던 박 전 대변인이 낙마했지만 여론조사상으론 아직도 여권 지지가 앞서 있다.

현재 조사는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안희정 이슈가 확산되면서 기존 민주당 지지층, 특히 도덕성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20·30대 지지가 좀 더 흔들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래저래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으로 갑작스레 떠오른 충남이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