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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내 250곳 동시다발 도시재생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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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당정이 도시재생 뉴딜 사업 모델로 꼽은 독일 팩토리 베를린. 베를린 미테 지역의 낡은 양조장을 도시재생 방식으로 바꿔 스타트업 창업 공간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주변 지역도 활성화됐다. [사진 국토교통부]

당정이 도시재생 뉴딜 사업 모델로 꼽은 독일 팩토리 베를린. 베를린 미테 지역의 낡은 양조장을 도시재생 방식으로 바꿔 스타트업 창업 공간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주변 지역도 활성화됐다. [사진 국토교통부]

쇠퇴한 도시를 되살리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도시재생은 재개발이나 재건축처럼 단순히 기존 도심이나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게 아니다. 경제·환경·사회·문화적으로 쇠퇴한 도시의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주거복지를 강화해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다는 개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는 27일 당정 협의를 거쳐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에 따르면 앞으로 5년간 전국 250곳에 청년 창업 공간과 복합 문화시설 등 도시재생 혁신 거점이 조성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매년 10조원씩 50조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당정,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 발표 #전면 재개발 대신 인프라 재정비 #매년 10조씩 총 50조 투입 계획 #지자체 신청받아 8~9월 대상 결정 #투기 우려해 시범사업선 서울 제외

하지만 정부 주도 아래 실패한 과거 도시재생 정책을 되풀이한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성공 모델을 만들어 확산하기보다는 250곳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것 때문에 ‘선택과 집중’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시재생 지역 내 상생협의체 만들어

도시재생 대상이 되는 250곳은 지방자치단체의 신청을 받아 8~9월쯤 결정한다. 이 중 100곳은 창업 공간과 청년 임대주택, 각종 공공서비스 지원센터 등이 모이는 복합 앵커시설(도시재생 어울림 플랫폼)로 조성한다. 또한 국·공유지와 노후 공공청사 등 유휴 공간을 활용해 청년 창업 공간, 복합 문화공간 등 구도심 내 혁신 거점 공간을 50곳 이상 만든다.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지역 상권 활성화 거점도 100곳 이상 조성할 계획이다. 낙후된 지역을 일자리가 생기고 주거 환경이 좋은 도시로 바꾸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도시재생 과정에서 원주민과 영세 상인이 다른 지역으로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도시재생 지역 내 상생협의체 구축이 의무화된다. 지역 영세 상인을 위해 시세의 80% 이하로 최대 10년간 저렴하게 임대할 수 있는 공공임대상가도 조성된다.

정부가 도시재생 뉴딜의 모델로 삼은 사례는 독일 팩토리 베를린과 스페인 포블레노우 지역의 ‘22@바르셀로나 프로젝트’다. 팩토리 베를린은 낡은 양조장을 스타트업 창업 공간으로 만들어 주변 지역을 활성화했다. 스페인 포블레노우는 19세기 방직산업으로 성장한 스페인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탈산업화 바람이 불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스페인 중앙정부와 바르셀로나시는 2002년 도시재생 계획을 세우고 대규모 투자와 집중 육성에 나섰다. 그 결과 포블레노우는 현재 8000여 기업이 입주한 첨단 산업단지이자 사무·상업·주거·문화·교육 기능이 골고루 섞인 도시로 변모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포블레노우가 변신하는 과정에서 집값이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투기 때문은 아니었다. 익명을 원한 한 국책연구원 연구원은 “포블레노우는 오랜 기간 이어진 도시재생으로 살기 좋은 공간이 됐기 때문에 땅값이나 집값이 서서히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 발표에 앞서 시범사업을 하면서 서울·세종·부산 일부 지역을 제외했다. 부동산 투기나 과열을 우려해서다. 최창규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서울 강북 등에도 도시재생이 절실한 곳이 많은데, 도시재생 과정에 뒤따르는 집값, 땅값 상승을 우려해 제외한 것은 부동산 정책에 얽매인 중앙정부식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서울시도 이번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중앙정부 주도하면 성공 어렵다” 지적도

도시재생 사업은 현 정부에서 처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추진됐다. 하지만 ‘보여주기식, 예산 나눠먹기식 정책’이라는 비판 속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번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을 두고도 이런 우려가 나온다.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도시재생 사업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250곳이나 되는 곳에서 동시다발로 추진해서는 포블레노우 같은 성공 모델을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끌고 가는 모델에 대한 우려도 있다. 최창규 교수는 “도시재생은 지역의 자생력을 스스로 키워 생존하는 모델인데 정부가 목표 기한을 정해 끌고 가면 걸음마도 하기 전에 달리기를 시키는 꼴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5년 목표를 두고 중앙·지방정부가 주도하는 모델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도시재생 사업을 해본 현장에서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 작업에 참여한 서민호 국토연구원 도시재생센터장은 “5년 안에 모든 것을 이루겠다는 것이 아니라 도시재생이 지속할 수 있도록 기반과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정책이 과거 정부와 다른 것은 2022년까지 도시재생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지자체에 넘겨주는 것을 명시한 것”이라며 “지자체가 예산을 자율로 집행할 수 있는 예산총액 자율배분제도도 로드맵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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