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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시진핑 권력을 보며 따라한 이상한 행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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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아침 운동을 하다 대형 상가 지하 주차장 앞에서 빨간 완장(腕章)을 봤다. 지난해엔 없었던 일이다. 완장엔 즈안쉰뤄(治安巡邏)라고 쓰여있다. 치안 순찰자라는 의미다. 다가가 물었다.

- 시진핑 권력 강화 분위기 맞물려 완장 찬 사람들 늘어

완장을 차고 주차장을 지키는 경비원 [출처: 차이나랩]

완장을 차고 주차장을 지키는 경비원 [출처: 차이나랩]

-어디 소속인가

“상거 건물 소속 보안(保安)이다.” (보안은 한국말로 경비원을 말한다)
-주차 관리 요원 같은데 완장은 왜 차나.
"위 사람이 차라고 해서 차는 거다.”
-언제부터 찼나.
“두 달 전에 근무를 시작해 잘 모른다.”
-완장엔 치안 순찰이라고 쓰여있다. 치안 유지 활동을 하나.
“이상한 차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지 지킨다. ”
-이상한 차량인지 어떻게 아나.
“...”
-긴 몽둥이는 왜 들고 있나.
“근무자 수칙이다.”

# 대형 상가 앞을 지나는데 환경미화원 할아버지가 눈에 띈다. 거리를 쓸고 있었다. 그 역시 빨간 완장을 차고 있다. 완장엔 왕징웨이스(望京衛士)라 적혀있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왕징 지역 호위무사라는 뜻이다. 할아버지가 웬 호위무사? 낯설었다. 역시 다가가 몇 마디 물었다.

완장을 차고 청소하는 할아버지 [출처: 차이나랩]

완장을 차고 청소하는 할아버지 [출처: 차이나랩]

-청소하시는데 왜 완장을 차고 있나

“얼마 전부터 높은 분이 차라고 했다.”
-왕징 호위무사라고 쓰여있다. 치안활동도 하나.
“나는 거리 청소하는 사람이다.”
-완장 차고 일하면 기분이 어떤가.
“기분 나쁠 건 없다. 멋있고 폼 나지 않나.”

3월 24일 베이징 근교 운몽산 정상에서 만난 완장. 매일 산으로 출근해 산불 예방 등 감시를 한다 [출처: 차이나랩]

3월 24일 베이징 근교 운몽산 정상에서 만난 완장. 매일 산으로 출근해 산불 예방 등 감시를 한다 [출처: 차이나랩]

주차 관리원, 청소원만 완장을 찬 게 아니다. 주택가, 거리는 물론이고 상가, 시내버스, 지하철역까지 완장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아파트 부녀자들도 완장을 차고 입구를 지키고 심지어는 산 정상에도 완장이 있다. 모두 치안 관리 완장을 차고 있다. 심지어는 수년 전 사라진 버스 안내원들도 다시 돌아왔는데 예전처럼 대부분 여성이 아니라 대부분 완장 찬 남성이다. 그들의 호칭도 안내원이 아니라 치안 요원으로 바뀌었다. 버스에서 행여 일어날 수 있는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한 안전 요원이지 예전같은 “스톱, 오라이” 하는 안내원이 아니라는 거다. 한데 하는 일은 예전 안내원들과 똑  같다. 완장들은 자신들이 왜 완장을 찼는지 모른다. 그저 위에서 시킨 대로 한다는 말만 한다. 가끔은 완장을 자랑하는 이도 있다. 위에 있는 환경미화원 할아버지처럼.

완장을 찬 버스 안내원. 그는 일반인과 다르게 완장을 오른쪽에 찼다 [출처: 차이나랩]

완장을 찬 버스 안내원. 그는 일반인과 다르게 완장을 오른쪽에 찼다 [출처: 차이나랩]

중국에서 완장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권력과 감시, 통제로 지탱되는 사회주의 국가의 특징이다. 중국에서 완장이 처음 나타난 건 청조 말이다. 당시 무인들이 계급을 표시하는 완장을 찼던 게 시초다. 완장이 태생적으로 힘과 권력, 그리고 계급을 상징한다는 얘기다. 1905년엔 아예 군복에 완장이 붙어 있었다. 1936년엔 국민당 정부가 군 계급에 따라 호화로운 완장을 만들어 부착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른바 완장 전성시대였다. 중국 공산당 인민 해방군도 이 전통을 그대로 받아 완장을 사용하고 있다. 완장은 주로 왼쪽 팔 중간에 차는 게 관례다. 지금도 대부분 왼팔에 찬다. 그러나 일부는 오른 팔에 차기도 한다. 정해진 규정이 없고 제 맘대로다.

중국의 각종 완장 [출처: 바이두 백과]

중국의 각종 완장 [출처: 바이두 백과]

완장이 힘과 계급을 달고 다니다 보니 폐해도 적지 않았다.  문혁 시대 홍위병들의 완장은 광란의 살기를 동반했다. 인민재판을 주관하고 형을 집행하는 공포가 완장에서 나왔다. 이후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절 중국 경제가 발전하고 민도가 올라가면서 완장의 행보는 좀 뜸했다. 그런 완장이 시진핑 주석이 등장하면서 갑자기 부활의 몸짓을 하고 있다. 황제에 버금가는 시진핑 권력이 민간으로 스며들면서 완장이라는 형태로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중화부흥을 위해 14억 인민을 한 방향으로 유도할 완장의 필요성이 대두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완장을 차고 아파트 정문을 지키는 부녀자들 [출처: 차이나랩]

완장을 차고 아파트 정문을 지키는 부녀자들 [출처: 차이나랩]

사실 완장은 한국에서도 그리 좋은 추억이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정치권력의 폭력성과 보통 사람들의 암울한 삶은 빨간 완장 속에 그대로 스며있다. 오죽하면 윤흥길이 그의 대표작 『완장』을 통해 권력의 피해함과 잔인성을 해악과 풍자로 그려냈겠나. 시진핑의 절대권력은 분명 통제 강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완장도 그 파생 상품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완장이 폭력과 통제, 그리고 억압으로 돌연변이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베이징=차이나랩 최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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