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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타일] 치마 입은 남자, 미투 셔츠 입은 여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19일부터 6일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뜨겁게 달군 2018 FW 헤라서울패션위크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39개의 쇼가 펼쳐진 가운데 주요 패션 트렌드를 꼽아봤다.

2018 FW 헤라서울패션위크 리뷰 #남성·여성복 개념 급격히 무너져 #처진 어깨·소매 등 빅 사이즈 인기

성의 경계를 허물다, 젠더리스

보머 재킷에 체크 셔츠를 스커트처럼 두른 남자 모델이 눈길을 끈 ‘푸시버튼’(왼쪽). ‘미스지 콜렉션’에 등장한 #미투 #위드유 등의 해시태그 티셔츠. [사진 2018 FW 헤라서울패션위크]

보머 재킷에 체크 셔츠를 스커트처럼 두른 남자 모델이 눈길을 끈 ‘푸시버튼’(왼쪽). ‘미스지 콜렉션’에 등장한 #미투 #위드유 등의 해시태그 티셔츠. [사진 2018 FW 헤라서울패션위크]

젠더리스(Genderless)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전 세계 패션 업계의 메가 트렌드다. 이번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도 핑크와 라벤더 등 부드러운 파스텔톤을 남성복에 적용하는 단순한 시도부터 남성복의 테일러링을 여성복에 적용하는 방식까지 소재와 패턴·장식·컬러·스타일링 등에서 남녀의 경계는 사라졌다.

디자이너 박승건의 ‘푸시 버튼’쇼에서 남자 모델들은 높은 하이힐을 신고 워킹에 나섰다.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시스루 레이스 블라우스와 코르셋 장식의 팬츠는 남성의 몸 역시 슬림함을 돋보이게 했다. 반대로 여성복에서는 매니시한 재킷과 넓은 통의 보이프렌드 진 등이 등장했다.

장광효 ‘카루소’의 남성 모델 역시 여성복을 연상시키는 시스루 블라우스에 카키색 팬츠와 워커를 매치했다. 재킷에 주름치마를 입는 방식도 눈길을 끌었다. ‘쿠만유혜진’의 유혜진은 남성복 비스포크 수트 테일러링을 여성복 정장과 코트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젠더리스를 실현했다.

오버사이즈 트렌드는 계속된다

몇 시즌째 계속되는 오버사이즈 트렌드가 여전히 서울패션위크를 물들였다. 부풀린 소매와 과장된 실루엣, 커다란 로고, 바닥에 끌릴 만한 크기의 가방, 어깨에 닿을 정도로 커다란 모자 등이 그것이다.

장형철의 ‘오디너리 피플’에서는 실제 어깨선보다 한참이나 떨어진 붉은색 재킷을 입고 광택이 돋보이는 에나멜 가죽 팬츠를 입은 모델이 등장했는가 하면, 셔츠와 코트의 소매가 손끝까지 내려올 정도로 긴 상의가 끊임없이 런웨이를 채웠다. 가수 현진영의 노래 ‘흐린 기억 속의 그대’에서 영감을 받아 90년대로 회귀한 듯한 올드스쿨 힙합 룩을 선보인 박환성의 ‘디앤티도트’에서도 빅 로고가 적용된 후디, 오버핏의 스웨트 셔츠, 커다란 패딩 베스트, 야전 상의와 재킷 등이 등장했다.

남노앙의 ‘노앙’ 컬렉션은 ‘패션 속 위트’를 비일상적일 정도로 과장된 볼륨감에서 찾았다. 몸 전체를 폭 감싸듯 두른 담요 스타일의 패딩과 여러 겹을 겹쳐 입어 실루엣 자체를 과장시킨 아우터, 상하의 할 것 없이 모두 오버 사이즈인 재킷과 와이드 팬츠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등판 전체를 감싸고 허리에 닿을 만큼 커다란 후드 디테일과 이렇게 커도 될까 싶을 만큼 커다란 가방은 일상의 지루함을 견뎌내기 충분할 만큼 위트가 넘쳤다.

패션에 메시지를 담다

왼쪽부터 2018 FW 헤라서울패션위크 중 푸시 버튼, 노앙, 빅팍, 블라인드니스 무대.

왼쪽부터 2018 FW 헤라서울패션위크 중 푸시 버튼, 노앙, 빅팍, 블라인드니스 무대.

트렌드를 넘어 디자이너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표현해 이 자체를 스타일로 승화시키려는 시도가 이번에도 돋보였다.

환경오염과 생태계 붕괴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는 ‘세이브 더 울프(save the wolf)’를 주제로 잡은 ‘빅팍’이 대표적이다. ‘늑대를 구하라’라는 직관적인 메시지가 그대로 반영된 늑대 프린트와 문자가 코트·재킷·스웨트 셔츠 등 다양한 의상에서 빛을 발했다.

신규용·박지선 듀오 디자이너가 선보인 ‘블라인드니스’는 반전 메시지를 담았다. 이들은 현장에서 배포한 쇼 노트를 통해 스페인 내전의 아픔을 표현한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와 ‘한국 전쟁 대학살’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임을 명시했다. 군복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밀리터리 패딩 의상들에 꽃문양과 러플·진주 등의 섬세한 장식을 더해 평화를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디자이너 지춘희의 ‘미스지콜렉션’ 오프닝 의상들에는 ‘미투(ME TOO)’ 메시지가 담겼다. 해시태그를 붙인 ‘미투(ME TOO)’ ‘위드유(WITH YOU)’를 비롯해 말하다(Speak), 신뢰(Trust), 존엄(Dignity) 등의 폰트가 적힌 티셔츠가 등장했다.

다만, 이번 패션위크에 아쉬운 점들도 있었다. 세계 4대 패션위크에서 서너 시즌 전 이미 선보여 세계적으로 유행한 디자인을 답습한 부분이 여럿 눈에 띄었다. 슬리퍼 형태의 구두에 털 장식을 한 ‘블로퍼’나 양털을 뭉친 듯한 질감의 ‘테디베어 코트’ 등이 대표적인 예다. 패션위크는 지금부터 6개월 후의 트렌드를 새롭게 제시하는 자리다. 그런데 서너 시즌 전의 유행 아이템이 새로운 영감이나 재해석 없이 그대로(혹은 더 조잡하게) 등장한 점은 씁쓸하고 아쉬운 부분이었다.

몇몇 디자이너의 적극성 또한 아쉬웠다. 세계4대 패션위크의 경우 쇼 초대장은 물론이고 현장에서 배포하는 쇼 노트를 통해 이번 쇼의 주제는 무엇인지,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지, 음악·무대·메이크업 등 쇼의 완성을 도와준 외부 협력 스태프와 브랜드를 짧게라도 소개하는 게 일반적이다. 주관적인 패션의 객관화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또 협업한 이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선 쇼 노트를 생략한 경우가 많았다. 해당 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관객들의 신선한 충격을 노린 걸까. 쇼를 관람한 후의 느낌과 평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니 알아서 판단하라는 걸까. 그도 아니면 쇼 노트를 만들 여유가 없었던 건지, 혹 쇼가 시작되는 순간까지도 디자이너의 생각이 덜 정리된 건 아닌지 아쉽게 느껴진 부분이었다.

서정민·유지연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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