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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봉침 女목사' 논란에 입 연 검사장 "콩으로 메주 쑨대도 못 믿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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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택 전주지검장. [중앙포토]

송인택 전주지검장. [중앙포토]

"이익 있는 곳에 의견 있다."
어느 정치학자의 말이다. 사람은 자기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관심이 많고 거기에 관해서만 주장한다는 얘기다.

송인택 전주지검장 인터뷰 #여목사-정치권 커넥션 의혹 #검찰 수사 축소 및 외압설까지 #지방선거 '뜨거운 감자' 부상 #"문무일 검찰총장이 도입한 #검찰수사심의위 회부 요청" #외부서 수사 공정성 판단

이른바 '전주 봉침 여목사 사건'도 마찬가지 양상으로 전북 지역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6·13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서다. 논란이 된 여목사는 전 장애인 복지시설 대표 A씨(44·여)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A목사가 장애인 단체 대표라는 신분과 남성 성기에 봉침(벌침)을 놓는 시술을 이용해 전북 지역 이너서클((inner circle·핵심 권력층)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돈과 이권을 챙긴 정황이 있는데도 외압을 받은 검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한 의혹이 있다"며 연일 날을 세우고 있다. A목사가 '봉침 목사'로 불리게 된 배경이다.

이미 A목사는 허위 경력증명서를 바탕으로 장애인 복지시설을 설립해 기부금 및 후원금 명목으로 3억여원을 가로챈 혐의(사기·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로 지난해 6월 불구속기소 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A목사는 의료인 면허 없이 직원 2명의 몸에 봉침을 시술한 혐의(의료법 위반)도 받고 있다. 최근엔 자신이 입양한 신생아 2명(현재 7세·4세)의 얼굴 등에 5차례 봉침을 놓고 차도 한복판에서 아이를 안고 눕는 등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검찰에 송치됐다.

지난 22일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A목사(44·여)가 2014년 6월 전북 전주시 중앙동 4차선 도로 중앙선 부근에서 자신이 입양한 남자아이(당시 3세)를 품에 안은 채 드러누워 괴성을 지르고 있다. [사진 동영상 캡처]

지난 22일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A목사(44·여)가 2014년 6월 전북 전주시 중앙동 4차선 도로 중앙선 부근에서 자신이 입양한 남자아이(당시 3세)를 품에 안은 채 드러누워 괴성을 지르고 있다. [사진 동영상 캡처]

지난해부터 공지영 작가를 중심으로 A목사에 대한 여러 의혹을 제기했지만, 검찰은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데다 세간에 떠도는 소문에 가타부타 논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최근 전북 지역 국회의원 10명 중 가장 많은 7명이 포진한 민주평화당까지 나서 직접 검찰을 겨냥하자 그간 침묵을 지키던 송인택(55·사법연수원 21기) 전주지검장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민평당은 지난 14일 전북도의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봉침 여목사 사건'의 진상 조사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키로 했다. 이 사건을 선거 쟁점으로 부각한 셈이다. 정동영 의원은 "어떤 세력들이 검찰에 압력을 넣었는지 밝혀야 하며 추후에는 특검 대상도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지영 작가가 지난해 9월 29일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A목사의 1심 재판이 열린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지영 작가가 지난해 9월 29일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A목사의 1심 재판이 열린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지난 22일 오후 전주지검 집무실에서 만난 송 검사장은 "당시 수사엔 전혀 문제없다"고 잘라 말했다. "외압이 없었다"는 취지다. 지난해 8월 전주에 부임한 그는 '봉침 여목사 사건' 수사를 직접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해 10월 열린 국정감사를 준비하며 당시 수사 자료를 검토했다.

그간 검찰에 대한 '축소 기소' 의혹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한 데 대해 그는 "검찰은 수사와 재판 결과로서 말한다. 정치 공세나 추측성 의혹 제기에 일일이 대응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이런 그가 침묵을 깬 배경에는 일부이긴 하지만 최소한의 '팩트 체크(사실 확인)'도 없이 검찰은 물론 A목사 사건을 심리 중인 법원까지 권력에 휘둘리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분위기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 임현동 기자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 임현동 기자

송 검사장은 "이번 사건에 의구심이 들면 문무일 검찰총장이 검찰의 개혁 조치로 만든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회부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정식 문서로 요청하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 문 총장에게 구두로 이 사건의 수사가 제대로 됐는지 검찰수사심의위에 회부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봉침 여목사 사건'에 대한 묻지마식, 혹은 아니면 말고식 폭로가 도를 넘기 전에 절충안을 낸 것이다. 다만 그는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검찰은 당분간 공판에 집중하고, 심의 시기는 재판이 끝난 뒤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문 총장은 지난해 8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주요 사건들에 대해 수사와 기소 전반에 걸쳐 외부 전문가들이 심의하도록 하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학계·언론계·법조계 등 다양한 직역(職域)의 외부 전문가 250명으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원회는 국민적 의혹이 일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을 제3자의 관점에서 심의해 검찰의 공정성 및 중립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1월 2일 발족했다. 검찰총장은 수사심의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존중·수용해야 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해 12월 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해 12월 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대검에 따르면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수사를 개시·진행할 때는 물론 구속영장을 청구·재청구하거나 재판에 넘길 때, 항소나 상고를 결정할 때마다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한다.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현안위원회', 수사가 끝난 사건 중 검찰총장이 심의를 요청한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점검위원회'를 각각 구성한다.

서울북부지검에 꾸려진 '강원랜드 수사단'이 강원랜드 채용 비리와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산하 수사점검위원회의 점검을 받는다. 송 검사장이 심의를 요청한 '봉침 여목사 사건'도 수사가 끝난 상태여서 수사점검위원회에서 다루게 된다.

공지영(사진 가운데) 작가가 지난해 10월 30일 전주지법 앞에서 전북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연 기자회견에서 봉침 시술과 아동 학대 의혹이 있는 A목사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지영(사진 가운데) 작가가 지난해 10월 30일 전주지법 앞에서 전북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연 기자회견에서 봉침 시술과 아동 학대 의혹이 있는 A목사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송 검사장은 "지금은 우리(검찰)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지 않느냐"며 "의혹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외부 전문가의 눈으로 점검하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회부하는 것밖에 없다. 제3자의 객관적 판단을 받아보면 그간 제기된 의혹이 근거가 있는지 판가름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까지 민평당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자료를 요청한 적은 없다"고 전했다.

송 검사장과 인터뷰를 한 이날 민평당은 전북도당 차원에서 성명을 내고 집권 여당이자 '호남 라이벌'인 더불어민주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전북도당은 "전주의 한 여성 목사가 집권당 소속 대선 후보와 함께 사진을 찍었고, 전북 지역 전·현직 국회의원 등 유력 정치인과 친분을 과시하며 장애인 단체 운영에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재차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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