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론

미·중 통상전쟁 시대, 한국이 살아남는 길

중앙일보

입력 2018.03.26 01:36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통상분과장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통상분과장

하루 10억 달러씩 무역수지 적자를 미국에 안기는 중국을 손보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폭탄 공세가 시작됐다. 장기 집권 기반을 구축하고 21세기 중반까지 미국을 추월해 세계 최고 강대국을 선언한 시진핑은 물러서지 않을 태세이다. 미·중 통상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그 파편은 고스란히 한국에 날라올 전망이다.

한·미 FTA 협상 최종 타결 전에
자의적 무역제제 없앨 약속받고
‘한국은 중국 편’ 오해 없게 하며
중국 리스크 최소한으로 줄여야

그 파편의 경로는 중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 그리고 한국에서 중국으로의 중간재 수출이다. 중간재를 해외에 의존하는 조립 중심의 중국 경제구조가 빗어낸 결과이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의 70% 이상이 중간재라는데 심각성은 더 커진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주력 수출품이 타격을 받고, 한국의 경제 성장에도 파문을 몰고 올 것이다.

미·중 통상전쟁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미국의 선전포고는 트럼프 이전부터 준비된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중국 제품과 자본에 개방된 천혜의 시장이었지만, 중국 시장은 세계 기업에 조금만 열린 ‘기회의 땅’이었다. 세계 무역 체제에 편입된 중국의 경제 발전이 계속되면 중국의 개방이 가속화되고, 덜 억압적인 정치 체제로 바뀔 것이라는 미국의 전략적 계산은 실패했다. 지금 미국에서는 중국의 감추어진 야심을 미국이 과소평가했음을 반성하는 고해성사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추격이 미국의 턱밑까지 따라온 지금, 중국의 야심을 저지하지 못하면 미국은 쇠퇴하고 중국의 시대가 열린다는 위기의식이 미국 정가에 흐르고 있다.

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중국에 반감을 가진 미국인은 26%포인트 증가했다. 작년 조사에 미국인의 22%가 중국이 미국의 적대국, 43%는 심각한 문제라고 답했다.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의 자전적 이야기인 『힐빌리의 노래』는 지난해 미국을 울린 최고의 책이었다. 러스트벨트의 곤궁한 삶이 중국 때문이라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지금, 그들은 행동을 원하고 있다. 그들에게 이 전쟁은 불공정과 약탈을 끝내는 정의로운 성전이다.

시론 3/26

시론 3/26

미·중 통상전쟁 시대,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난세를 견뎌낼 전략적 지혜는 무엇인가. 첫째, 중국의 미국 수출 장벽이 높아진 만큼 한국의 반사적 이익도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존재는 여기서 빛날 수 있다. 문제는 FTA로 확보한 저관세의 혜택을 미·중 통상전쟁 구도에 휘말려 날려버리지 않아야 한다. FTA 혜택을 무력화시키는 미국의 자의적 무역 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미 FTA 최종 타결 전에 받아내야 한다. 한국이 중국과 유사한 경제 체제가 아니라는 확신을 미국에 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둘째, 미국 정가에서 한국이 ‘중국 편’이라는 어설픈 오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 한국 정치 못지않게 양극화된 미국 정치이지만, 유독 중국 견제에는 초당적 합의가 있다. 국가 안보와 연계된 미국 기술의 해외 유출을 규제하려는 강력한 법안이 공화·민주 양당의 지지를 받으며 추진되고 있다. 퀄컴을 인수하려던 브로드컴의 인수 계획 불허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브로드컴의 배후에 아른거리는 중국 정부의 그림자를 미국은 본 것이다. 한국이 명확한 태도 표명을 주저한다면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도 암초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셋째, 통상 네트워크를 강화해서 방화벽을 높이 쌓아야 한다. 미국이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살아남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가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CPTPP는 국가 통제 하의 중국 경제를 개방과 혁신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전략이다. 한국이 CPTPP의 바깥에 머문다고 중국이 한국에만 자국 시장을 열어줄 리 만무하다. 저자세 통상 외교는 중국의 허장성세를 더 키울 따름이다.

넷째, 중국 리스크를 최소로 줄여야 한다. 사드(THAAD) 보복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기회론에 올인하고 있다. 독립성이 보장된 규제 기관, 입법·사법의 견제와 균형, 언론의 자유, 정부 견제를 자임한 시민단체 등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에는 있지만, 중국에 없는 것은 중국 리스크로 전이된다. 중국의 본질을 외면하는 기회론은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로 귀착된다.

미·중 통상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한국을 지배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안미경중) 프레임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말아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경제 판 바꾸기를 시도해야 한다. 지금까지 제조업이란 한 날개로 날아 오른 한국은 또 다른 날개를 달아야 한다. 절대 다수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서비스업을 고급화·수출화하는 비전이 필요하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통상분과장

모비온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