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신각수의 퍼스펙티브

북핵 엔드게임 시작 … 완전한 핵 폐기 견지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북핵 해법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고위급 대표단이 교환 방문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대화 의사 표명과 함께 4월 말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의 길이 열렸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 비핵화 약속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한반도의 평화 구축 동력 유지에 분수령이 될 것이다.

북·미 중재자 넘어 당사자로서 #국익 반영된 교섭 결과 얻으려면 #북핵 동결이나 일부 감축이 아닌 #완전하고 불가역적 핵 폐기 견지 #한·미, 교섭 전략·전술 조율하고 #중·일·러 소외 안되게 배려 필요 #정부는 초당적 대응에 노력하고 #한반도 평화·통일 맥락서 다뤄야

김정은 시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국제사회의 예상을 뛰어넘는 진척을 보였다. 지난 6년간 미사일 실험 86회와 핵 실험 4회로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의 미사일 실험 31회와 핵 실험 2회에 비해 거의 3배에 달한다. 핵탄두의 소형화·경량화·표준화·다종화·양산화를 이루었고 20~4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운반 수단은 한국·일본과 괌을 겨냥한 단·중거리 미사일을 실전 배치했고, 미 본토까지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또 고체연료·이동발사대·잠수함발사미사일 개발을 통해 기동성과 은닉도를 높였다. 사실상 핵 무장 완성까지는 2차 공격 능력 확보에 필요한 핵탄두 실전 배치 및 ICBM 재진입·통제 기술의 확보와 실사 실험만 남았다는 점에서 비핵화 기회의 창은 향후 1~2년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 북핵 시계가 얼마 남지 않은 ‘진실의 순간’을 향하고 있는 엄중한 상황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왜 북한은 대화로 태도를 급변했을까? 미국이 군사 옵션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에 대한 우려, 강한 이빨을 가진 국제사회의 제재가 올 하반기에는 심각한 효과를 미치게 됨에 따른 경제·사회적 불안 대비, 핵 무장이 거의 완성 단계에 다다른 자신감에서 강한 교섭 지위를 활용한 안보·외교·경제 이익의 확보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국제사회의 강한 압박이 북한의 전략적 셈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상황이 더 악화하기 전에 대화에 나서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고위급 남북 접촉과 대미 설득을 통해 긴장 모드를 일단 평화 모드로 전환해 압박·연계의 양 축을 가동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직 비핵화라는 긴 터널의 시작에 불과하다. 비핵화 달성을 위해서는 북핵 문제를 교차하는 긍정적·부정적 요소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긍정적 요소로는 우선 북한의 미국 본토 공격 능력 보유가 가까워짐에 따라 미국이 북핵 문제를 최우선 외교 과제의 하나로 삼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미국은 강한 압박을 통해 북한이 전략적 셈법을 바꾸게 할 다양한 지렛대를 가지고 있고, 북한의 후견 역할을 하는 중국을 움직일 힘도 있다. 둘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주요국의 제재가 시장에 의존하게 된 북한 경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이행되면 북한 수출의 90%와 주요 외화 소득원인 해외 노동자 송출이 영향을 받아 북한 경제의 생존이 위협받게 된다. 핵·경제 병진정책이 작동하지 않고 북한 체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셋째, 향후 교섭과 북한의 행동을 통해 확인돼야겠지만 북한이 ‘핵보유국 인정과 핵 군축’ 입장에서 비핵화로 선회한 점이다. ‘위협 해소와 체제 보장’ 조건의 내용과 범위가 문제지만 일단 교섭의 실마리가 제공된 셈이다. 넷째, 진보 성향의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북한에는 방향 전환을 모색하는 상대로 적합하다는 점도 대화 동력을 끌어내고 있다. 남북 간 대화 통로가 마련되고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것도 비핵화에 관한 북한의 합리적 판단을 유도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섯째, 중국이 북핵 문제에 협조적 태도로 바뀌었고 제재 이행, 유사시 개입 시사 등 다양한 형태로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점도 북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여섯째, 북핵 위협을 둘러싼 미국의 군사 옵션이 현실화한 점이다. 강압 외교의 일환이지만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광인(madman) 전략’이 북한과 중국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곱째, 미국의 전략 우선순위가 중동에서 아시아로 바뀐 점도 북핵 해결에는 도움이 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시리아·이스라엘 등 중동 문제에 직접 개입을 피하고 있다.

부정적 요소로는 무엇보다 북핵 프로그램의 완성도와 투입한 자원을 고려할 때 선뜻 완전한 비핵화를 받아들일지 의문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후세인·카다피의 몰락은 김정은 정권의 생존에 핵무기가 불가결하다는 인식을 주었으며, 태영호 전 주영 공사가 증언하였듯 3대 세습 체제에서 출신과 업적 면에서 부족한 김정은에게는 핵 개발이 정통성의 원천이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둘째, 대북 국제 제재로 인해 한국은 북한을 움직일 지렛대가 거의 없다. 남북관계 개선만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가져올 수 없고 비핵화 진전 없이는 남북관계의 진전도 한계가 있다. 1·2차 핵위기 때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의 불가측적 행태는 유사한 김정은의 스타일과 겹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점이다. 또 러시아 스캔들로 인한 미국 내 정치적 어려움과 11월 중간선거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넷째, 미국의 대중 무역 조치와 중국을 ‘전략적 적대자’로 보는 대중 전략의 변화도 북핵 해결 동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다섯째, 북한이 비핵화에 응한다고 해도 기존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의 광범위한 내용에 비추어 한미동맹을 흔들려 할 수 있기에 상당한 공방이 예상된다. 여섯째, 이번 교섭이 남북한·미국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다른 6자회담 참여국인 중국·일본·러시아의 관여·협조 여부도 변수가 될 것이다. 일곱째, 이란 문제, 이·팔 문제 등 중동 정세가 긴박해지면 미국의 북핵 문제 해결 동력에 지장이 초래될 가능성도 있다.

낙관도 비관도 해서는 안 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비핵화를 위한 정면 승부처를 맞았다. 이번이 비핵화를 위한 최후의 기회라는 점에서 전망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한국은 북·미 중재자를 넘어 당사자로서 우리 국익이 반영된 비핵화 교섭 결과를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사항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첫째, 우리 교섭 목표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폐기(CVID)’를 견지하여 동결이나 일부 감축으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한이 체제 생존의 근간이자 대남 군사력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개발한 핵·미사일 프로그램 일체를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인 만큼 낙관적 기대는 금물이다. 둘째, 한미 간 철저한 공조를 유지해야 한다. 북한 핵무장 관련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 미국은 제3국 비확산과 본토 공격 능력 차단에 중점을 두고 있어 차이가 있다. 미국이 교섭 타결까지 완전한 비핵화 입장을 견지하도록 확고히 대응해야 한다.

셋째, 북핵 교섭 결과 우리의 전략 자산인 한미동맹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북한은 2016년 7월 정부 대변인 성명에서 밝힌 바와 같이 비핵화 조건으로 남한 핵무기 공개, 핵무기·기지의 철폐·검증, 핵 불반입 보장, 대북 핵 불사용 약속, 미군 철수 선포 등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2005년 9·19 공동선언에서와같이 비핵화의 종점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가 완성되도록 설계하는 것으로 그치게 해야 한다.

넷째, 교섭 전략과 세부 전술에 이르기까지 비핵화 로드맵의 내용에 관하여 꼼꼼한 한·미 조율이 필요하다. 특히 타협 대상이 되는 다양한 사안 간의 시간 배열과 적절한 시점이 중요하다. 동결-검증-비핵화의 시차를 최대한 단축해야 북한의 시간 벌기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대북 지렛대일수록 핵심 이익인 비핵화에 사용할 수 있도록 배치해야 한다. 최종 타결까지 압박과 연계의 두 축을 함께 지속 가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섯째, 대화가 남북한·미국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다른 이해 당사국인 중국·일본·러시아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 이미 중국과 일본에서는 소외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이란 핵 합의에서와 같이 국제사회 대 북한, 특히 5(한·미·중·일·러):1(북한)의 구도가 필수다. 여섯째, 비핵화의 과정이 단기간에 마무리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에서 북한이 추가 핵·미사일 활동을 중지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실효적이고 신뢰 가능한 검증·감시 체제를 초기 단계에 구축해야 한다. 2008년 6자회담이 중단된 것도 검증 문제였다는 점에서 쉽지 않겠지만, 북한의 위장 교섭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해야 한다.

일곱째, 정부는 초당적 대응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비핵화 관련 세부사항에 대한 실효적·종합적 대처가 가능하도록 정부 부처 간 협의·조정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핵은 북한 문제의 일부이므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큰 맥락에서 다루어야 한다.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 장치들이 북핵 교섭의 최종 결과에 반영되도록 창의적 발상을 해야 한다.

지난 27년간 국제사회는 2차례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핵 해결에 실패했다. 동북아에 몰린 4대 강대국이 최빈국 북한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은 핵 비확산 역사의 최대 모순의 하나다. 그만큼 북핵 문제는 동북아의 복잡한 파워 매트릭스에 직결된 난제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비핵화는 물 건너가고 한반도 평화에 결정적 위기가 초래될 우려가 크다.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핵무장 완성 단계의 진입으로 ‘성공의 덫’에 빠진 북한을 진정한 비핵화로 이끌어야 한다. 남북 축을 통해 북한에 비핵화가 ‘생존의 길이자 평화와 경제 발전의 문’임을 설득하면서, 북·미 축을 통해 북한이 비핵화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여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필요조건을 달성해야 한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