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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부터 AI까지…난제 풀 열쇠 '양자컴퓨터'가 온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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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면 왜 잠이 잘 안 오는 걸까."
이 간단한 질문에 현대 과학은 명확하게 답을 못한다.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의 분자 구조와 그 안에 있는 다양한 원자들의 상호 작용, 에너지의 크기 등을 파악해야 카페인 각성 효과의 원인을 알 수 있는데 인류는 아직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제리 차우 IBM리서치 연구원은 “현존하는 최고 성능의 반도체를 지구 크기, 아니 은하수만큼 끌어모아도 카페인 분자에 담긴 방대한 정보를 분석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IBM이 지난해 공개한 16큐빗 퀀텀컴퓨터를 한 연구원이 바라보고 있다. [사진 IBM]

IBM이 지난해 공개한 16큐빗 퀀텀컴퓨터를 한 연구원이 바라보고 있다. [사진 IBM]

글로벌 IT 기업들이 이런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다. 카페인 분자를 직접 분석하려는 게 아니다. 현재의 슈퍼컴퓨터가 풀지 못하는 복잡하고 방대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양자(quantumㆍ퀀텀)컴퓨터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구글ㆍIBMㆍ인텔ㆍ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IT 기업들이 앞장서서 전 세계 산ㆍ학ㆍ연 리더들과 손을 잡고 기술 경쟁에 나섰다.

IBM과 손잡은 삼성전자 "양자컴퓨터로 AI·반도체 연구 추진" 

IBM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 중인 ‘IBM 싱크2018(Think2018)’에서 양자컴퓨팅 분야에서 글로벌 연대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빈드 크리시마 IBM리서치 디렉터는 “2년 전 처음으로 5큐빗(qubit) 양자컴퓨팅 프로세서를 내놓은 IBM은 1년 뒤인 지난해 5월 16큐빗을, 몇 달 뒤에 다시 20큐빗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면서 ‘IBM Q’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큐빗은 양자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는 최소 단위다. 큐빗 크기가 커질수록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지난해 11월 IBM은 50큐빗의 양자컴퓨터 프로세서도 개발했다고 공개했다.

IBM이 지난해 공개한 16큐빗 양자컴퓨터 프로세서

IBM이 지난해 공개한 16큐빗 양자컴퓨터 프로세서

이날 크리시마 디렉터는 ‘공상과학(SF)이었던 퀀텀, 이제 현실이 되다’는 주제의 기조연설에서 “IBM Q 생태계에는 글로벌 최고 대학은 물론 삼성전자·JP모건체이스·다임러 같은 글로벌 선두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무대에 오른 박성준 삼성종합기술원 박사(상무)는 “IBM Q 시스템을 통해 퀀텀 연구에 씨를 뿌리고 있다”며 “삼성 내부에 전문 연구팀을 꾸려서 인공지능(AI)ㆍ반도체ㆍ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퀀텀컴퓨터로 할 수 있는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IBM은 지난해부터 개발자와 기업 등이 IBM의 5큐빗 양자컴퓨터를 써볼 수 있도록 클라우드에 공개했다. 우군 확보 차원이다. 일명 IBM Q 익스피어리언스인 이 서비스엔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8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대학 1500곳과 연구소 300곳, 고등학교 300곳도 이를 교육과 연구에 활용 중이다. 현재까지 60건 이상의 연구논문이 여기서 나왔다. IBM의 이번 콘퍼런스에서도 양자를 주제로 한 강연마다 사람들이 몰려들며 큰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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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 10억년 걸릴 계산을 100초 만에

물질의 양자적 성질을 활용한 양자컴퓨터는 디지털 컴퓨터보다 연산 능력이 월등히 높다. 현재 사용 중인 디지털 컴퓨터가 0과 1이라는 2가지 상태로 정보를 구분하는 비트(bit) 단위로 연산을 한다면, 양자컴퓨터는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 상태(중첩)도 정보로 처리할 수 있다.

가령, 디지털 컴퓨터가 동그란 도넛에 대한 정보를 앞ㆍ뒷면 2가지로만 처리할 수 있다면, 양자컴퓨터는 360도 각도에서 본 도넛 모양은 물론이고 도넛이 빙그르르 회전 중인 상태도 정보로 표현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에 탑재되는 프로세서의 성능을 나타내는 큐빗이 커질수록 처리할 수 있는 연산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IBM이 개발 중인 50큐빗 양자컴퓨터는 한 번에 2의 50 제곱(약 1125조) 비트의 정보를 연산할 수 있다. 현재 일반인이 PC로 쓰는 64비트 컴퓨터의 경우 한 번에 64비트를 전송한다.

2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BM 싱크2018 콘퍼런스에서 전시된 '50큐빗 양자컴퓨터'의 저온유지장치. 가운데 원통형 부분의 양자 증폭기에 50큐빗 프로세서가 탑재된다. 박수련 기자

2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BM 싱크2018 콘퍼런스에서 전시된 '50큐빗 양자컴퓨터'의 저온유지장치. 가운데 원통형 부분의 양자 증폭기에 50큐빗 프로세서가 탑재된다. 박수련 기자

퀀텀 연구자인 제시카 포인팅 메사추세츠공대(MIT) 연구원은 “현재 컴퓨터가 10억년 걸려서 풀 문제를 양자컴퓨터는 단 100초만에 끝낸다”며 “양자컴퓨터로는 기존 컴퓨팅 성능으로는 풀지 못했던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BM은 이번 콘퍼런스에서 양자컴퓨터의 핵심 설비인 저온유지장치도 공개했다. 양자컴퓨터가 연산할 때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섭씨 영하 273도 이하의 극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IBM 측은 “현재 50큐빗 상태의 프로세서가 극저온 상태에서도 작동한다”고 말했다.

신약·AI 연구 퀀텀점프 기대…구글·MS·인텔도 

양자컴퓨터로 가장 큰 혁신이 기대되는 분야는 화학이다. 자연계의 다양한 물질의 구조를 양자컴퓨터로 분석할 수 있다면 신약이나 신물질 개발도 가능하다. 삼성전자가 언급한 AI도 양자컴퓨팅 파워로 ‘퀀텀 점프’를 기대하는 분야다. AI가 양자컴퓨터를 통해 월등한 연산 능력을 갖게 되면 컴퓨터가 현재보다 훨씬 빠르게 머신러닝(기계학습)을 할 수 있다. 금융업의 리스크 분석이나 물류ㆍ교통 산업 등 복잡한 변수들을 참고해 최적의 결과를 찾아내야 하는 일도 현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구글 내 양자컴퓨터 연구조직인 '구글 퀀텀 AI랩'이 지난 5일 공개한 72큐빗 양자컴퓨터 프로세서. [사진 구글]

구글 내 양자컴퓨터 연구조직인 '구글 퀀텀 AI랩'이 지난 5일 공개한 72큐빗 양자컴퓨터 프로세서. [사진 구글]

구글도 양자컴퓨터 개발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구글은 이달 초 열린 미국물리학회에서 72큐빗 프로세서(일명 브리슬콘)를 선보였다.
구글 퀀텀 AI 줄리안 켈리 박사는 “72큐빗 프로세서를 통해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의 성능을 뛰어넘는 ‘양자 우위’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2014년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공동으로 퀀텀 AI 연구소를 설립했던 구글은 양자컴퓨터를 인공지능에 접목할 방안을 찾고 있다. 이외에 반도체 강자 인텔도 올해 1월 가전ㆍIT전시인 CES에서 49큐빗 프로세서를 공개하며 경쟁하고 있다. 2006년부터 양자컴퓨터를 연구해온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양자컴퓨터에서 알고리즘을 실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컴퓨터 언어를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려면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다. 계산을 넘어 알고리즘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정확도가 높아야 한다.
구글의 줄리안 켈리 박사는 “양자컴퓨터의 프로세서가 시뮬레이션의 범위를 벗어나는 알고리즘을 실행할 수 있으려면 큐빗 용량을 늘리는 것만 갖고는 안된다”며 “결정적으로 (프로세서에서 처리하는 정보량인 큐빗이 커져도) 양자컴퓨터의 판독·연산 오류율이 1~2큐빗 만큼 낮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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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박수련 기자 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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