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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로봇경찰 공권력까지, 도시지배 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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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국가와 기업이 경쟁하는 시대②

2014년 호세 파딜라 감독이 리메이크 한 '로보캅'. 인간의 두뇌와 기계의 몸을 가졌다. [영화 로보캅]

2014년 호세 파딜라 감독이 리메이크 한 '로보캅'. 인간의 두뇌와 기계의 몸을 가졌다. [영화 로보캅]

2028년 미국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 최고의 명성을 구가했던 도시는 할렘으로 전락합니다. 도박과 마약, 온갖 범죄가 들끓는 ‘무방비 도시’가 돼버렸죠. 급기야 시 정부는 파산을 선언하고 한 기업이 도시의 운영권을 인수해 ‘델타시티’란 이름의 대규모 건설사업을 시작합니다. 이때 경찰병력과 같은 치안권도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죠. 기업이 시민들을 물리적으로 구속할 수 있는 공권력까지 갖게 된 겁니다.

 이는 1987년 개봉해 엄청난 흥행과 이슈몰이를 한 영화 ‘로보캅’의 이야깁니다. ‘토탈리콜’, ‘원초적 본능’, ‘스타십 트루퍼스’ 등 1980~90년대 할리우드를 주름잡았던 폴 버호벤 감독이 연출했죠. 영화는 자본에 국가·사회가 예속되고, 타락한 기업이 시민들이 사적 영역까지 통제하며 막대한 부를 이뤄가는 디스토피아의 미래 모습을 다룹니다.

원조 '로보캅'. [중앙포토]

원조 '로보캅'. [중앙포토]

 그 중심에 ‘OCP(Omni Consumer Products)’라는 거대기업이 있죠. 처음 경찰 권력을 인수한 OCP는 나중에 도시의 소유권을 갖더니 마지막엔 다른 자본에 도시를 팔아먹기도 하죠. ‘omni(전체)’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OCP는 시민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도시 전역과 시민의 일상 곳곳에 그들의 손이 뻗쳐 있는 거죠. 기업이 일터인 동시에 소비처이고, 정부인 동시에 삶의 모든 것을 관할하는 ‘완전체’입니다.

 로보캅은 OCP가 지배하는 디트로이트에서 인간과 로봇이 결합된 경찰입니다. 나중에 OCP는 골치 아픈 경찰 노조(공권력이 민영화 됐기 때문에 노조가 존재함) 때문에 로보캅 대신 100% 로봇 경찰로 대체하려 합니다. 이처럼 거대 자본으로 시민들을 지배하는 OCP에 맞서 싸우는 게 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입니다.

국가를 넘어선 초국적 거대자본

 로보캅은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기업과 결탁한 정치인은 자본의 하수인이 돼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법과 정책을 만들죠. 기업에 붙은 언론은 편향적인 뉴스만 내보냅니다. 기업은 시장을 장악한 것에서 모자라 도시의 행정과 공권력까지 집어 삼키죠. 이 영화는 1980년대 후반 구소련의 붕괴로 한껏 들떠 있던 서구 서계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우수성에 도취해 있던 이들에게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보여줌으로써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한 거죠.

영화 '로보캅'에서 디트로이트시를 지배하는 초국적기업 '옴니코프'. [영화 로보캅]

영화 '로보캅'에서 디트로이트시를 지배하는 초국적기업 '옴니코프'. [영화 로보캅]

 기업이 사회를 지배하는 미래,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학계에서는 이와 비슷한 논의를 ‘초국적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이라는 모델로 설명해 왔습니다. 어느 한 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나라에서 생산·판매 활동을 하는 세계적 기업들이죠. 이들에겐 국가 간 장벽도, 영토의 한계도 없습니다. 다국적기업과 비슷한 의미지만 초국적기업은 자본집단이 웬만한 국가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우려스런 상황을 꼬집는 뜻이 강합니다.

세계적 정치학자 안토니오 네그리가 쓴 '제국'. [Harvard University Press]

세계적 정치학자 안토니오 네그리가 쓴 '제국'. [Harvard University Press]

 세계적 정치학자인 안토니오 네그리는 그의 책 『제국(Empire)』에서 “제국주의와 식민 질서, 소비에트의 장벽이 무너진 지금 ‘제국’이라는 새로운 체제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경제·문화적 교환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전 세계적인 움직임이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제국’의 핵심 주체는 특정 국가가 아니라, 국경과 국적을 초월한 초국적기업과 이들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자본의 흐름이죠.

새로운 정부 모델 ‘기업국가’

 그런데 요즘엔 ‘초국적기업’이 한 발 더 나아가 ‘기업국가’의 형태로 나아갈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궁극적으로 영화 로보캅의 OCP 같은 방향으로 가는 거죠.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시의 실질적 지배자 웨인 엔터프라이즈,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타이렐 코퍼레이션도 일종의 기업국가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경희대 미래문명원장을 지낸 안병진 교수는 “기업의 힘이 갈수록 커지고 정부의 힘은 약해지면서 미래의 ‘기업국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합니다.

2018년 1월18일자 이코노미스트 커버 사진. 아마존·구글·페이스북을 '타이탄(거인)'으로 묘사했다.

2018년 1월18일자 이코노미스트 커버 사진. 아마존·구글·페이스북을 '타이탄(거인)'으로 묘사했다.

 현존하는 기업 중 이런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들입니다. 이들은 국가보다 속속들이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죠. 기업이 소유한 개인정보의 양은 이미 정부의 데이터베이스를 뛰어넘었습니다. 이용자들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옷을 즐겨 입는지, 소비습관은 어떻게 되는지 등 플랫폼 사용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업은 알 수 있죠. 이를 통해 그 사람의 성향과 사고방식, 행동패턴까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보는 국가 간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죠. 이렇게 모인 빅데이터는 전 세계인을 하나의 영향력 아래 묶어두는 권력이 될 수 있습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5000만명이 넘는 페이스북 사용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건 기업의 빅데이터 정보가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당시 이 자료를 토대로 유권자의 성향을 분석한 정보가 도널드 트럼프 캠프에 전해졌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만약 이 같은 일이 더욱 심화된다면 기업의 힘이 특정 정치인을 당선시키거나 떨어뜨리는데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을까요.

심화되는 독점현상, 또 다른 제국주의

 기업국가의 실현 가능성이 높은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지난 회에 살펴본 것처럼 거대독점 자본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거죠. 유통 공룡 아마존이 온·오프라인 시장 모두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예입니다. 레닌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자본은 독점으로 치닫고, 이는 다시 한 국가를 넘어 다른 국가를 침략하는 제국주의로 진화한다’고 설명했습니다.

1920년 모스크바에서 연설하고 있는 레닌. [중앙포토]

1920년 모스크바에서 연설하고 있는 레닌. [중앙포토]

 거대 독점자본으로 성장한 기업은 또 다른 시장을 추구하기 위해 더 넓은 영역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다만 과거의 제국주의는 국가가 중심이 돼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형식이었죠. 하지만 미래 사회에선 제국을 만드는 주체가 국가가 아닌 기업입니다. 앞서 네그리가 ‘제국’의 핵심을 기업과 자본의 흐름으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로보캅의 이야기처럼 오랫동안 정부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공권력과 시민의 은밀한 사생활 곳곳에 침투해 영향력을 넓혀가는 것이죠.

 그리고 이 같은 독점 모델은 오늘날 많은 기업이 추구하는 성장 전략입니다. 안병진 교수는 “최근의 기업혁신 모델은 시장에서 1등을 차지해 2등과 격차를 벌리는 게 아니라 완벽한 시장 지배를 목표로 한다”며 “독점적인 기업이 시장지배를 강화하면서 이들의 권력과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이 더욱 세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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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들의 몸집은 이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죠. 숫자로만 보면 타이탄(거인) 기업들은 이미 국가를 뛰어넘어 기업가치가 웬만한 나라의 1년 GDP를 넘는 경우도 많습니다. 2017년 기준 시가총액 1위인 애플(7556억 달러)을 국가 GDP와 비교하면 네덜란드(18위·8244억 달러) 다음인 19위입니다. 상위 10개 기업의 시가총액(4조3620억 달러)은 세계 4위인 독일(3조6158억 달러)을 훌쩍 뛰어넘죠. 한국(1조5297억 달러)의 3배에 달하고요. 물론 특정 국가가 생산한 부가가치의 총합인 GDP와 시가총액을 단순 비교하는 게 한계도 있지만, 그 만큼 기업의 힘과 영향력이 커졌다는 사실은 충분히 증명할 수 있죠.

공공영역까지 넘보는 거대 자본들

 확대되는 기업의 영향력은 복지와 의료, 교육 등 공공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습니다. 2018년 1월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버크셔 헤서웨이의 워런 버핏,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등 3명은 의료 분야에서 공통의 프로젝트를 실천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3개 회사 직원들을 위한 독립적인 헬스케어(의료·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죠. 세 회사가 공동의 기업을 만들어 아마존(54만1900명)과 버크셔 헤서웨이(36만7000명), JP모건(24만명)의 직원을 상대로 헬스케어 서비스를 펼치겠다는 겁니다. 국가의 의료복지 시스템이 따라올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한 거였죠.

'윤석만의 인간혁명' 더 보기

 한국처럼 건강보험이 준의무적 성격이 아닌 미국에서 3개 회사의 이번 선언은 매우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오바마케어 이후 건강보험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던 터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큰 기대를 하고 있죠. 마땅히 정부가 해야 했지만 수십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건강·의료 문제를 힘 있는 기업들이 나서 해결책을 찾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다른 한편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단순히 세 회사가 직원 복지 차원에서만이 일을 시작했을까요? 기업의 궁극적 목표는 이윤 추구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도 결국엔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 될 거라는 지적이죠. 이들의 사업 모델이 구체화 되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의료·보험·제약 시장에 문어발식 확장이 가능해 집니다. 아마존의 IT 연결망과 버크셔 헤서웨이와 JP모건의 막대한 자금력이 동원되면 또 다른 ‘타이탄’이 나올 수 있단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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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단순하게 기업이 성장하는 것을 우려하는 건 아닙니다. 자본과 시장의 메카니즘이 소수에 독점되고, 신생기업이 새롭게 시장에 진출하며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까지 파괴하는 게 문제입니다. 거대독점자본으로 성장한 기업은 영화 로보캅, 블레이드러너처럼 국가의 역할까지 대신하려 들 수 있다는 거죠. 영화처럼 기업이 공권력을 갖고, 도시와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세상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가의 개념과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공적 영역까지 움켜쥐려는 기업의 도전에 맞서 국가의 실질적 운영 주체인 정부는 어떤 대응을 하고 나설까요. 미래 국가의모습과 제도,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어떻게 펼쳐질지 다음 주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은 매주 일요일 아침 업데이트 됩니다.

#홈페이지(http:www.joongang.co.kr/issueseries/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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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는

 윤 기자는 2010년부터 교육 분야를 취재했다. 특히 인성·시민 교육 및 미래와 관련한 보도에 집중했다. 앞으로는 성적과 스펙보다 협동과 배려, 공감 같은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이란 책을 냈다. 유네스코가 15년마다 주최하는 세계교육포럼에서 세계시민교육 심포지엄의 기조발표자로 나서기도 했다. 중앙인성연구소 사무국장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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