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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대출이 불안한 5가지 이유] 정확한 통계 없고 이자 갚기도 벅차

중앙일보

입력

자영업 정의도 불분명해 통계 착시 우려 … 경기 지지부진한데 금리 인상 초읽기

폐점포가 늘어선 서울 한 대학가 상가.

폐점포가 늘어선 서울 한 대학가 상가.

가계대출 증가에 대한 위험성이 끊임없이 지적되는 가운데, 자영업자 대출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금융당국도 자영업자 부채 관련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자영업자 대출이 왜 불안할 걸까? 여러 각도로 지적되는 자영업자 부채의 위험 요소를 짚어봤다.

① 얼마나 많은지 정확히 모른다: 자영업 부채를 두고 제기되는 가장 큰 문제는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기준에 따라 자영업자 대출 추정 규모는 290조원에서 650조원까지 다르게 나타난다. 이로 인해 자영업 대출이 관리 사각지대에 있었던 만큼 문제 발생 때 위험성이 더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자영업자 대출 규모를 파악할 때 지금까지 가장 많이 활용된 자료는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이다. 사업자등록을 한 기업 대출 중에서 개인사업자 대상의 대출만 뽑아 합한 수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1월 말 290조3000억원이다. 그러나 자영업자는 개인사업자 대출만 받는 게 아니다. 사업 자금을 개인 자격의 가계대출을 받아 마련하기도 한다. 두 종류의 대출을 동시에 받는 것도 가능하다. 지난해 10·24 가계부채 종합대책 발표에서 개인사업자 대출 차주 가운데 가계대출을 동시에 받았다는 경우는 81%에 달했다. 이에 따라 한은은 지난해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기존 개인사업자 대출자 중에 가계대출을 따로 받은 사람의 가계대출 규모까지 모두 합친 자영업자 대출 규모를 집계했다. 이에 따르면 자영업 대출은 2016년 말 기준 480조2000억원이다.

최근 나온 다른 통계에서는 자영업 부채가 더 크게 집계되기도 한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나이스신용평가로부터 받은 2012~2016년 자영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자영업자의 대출 총액은 520조1419억원이다. 한국은행 추산치보다 40조원가량 많다. 원화대출 기준인 한은 집계에 더해 외환대출, 리스 등의 대출까지 모두 포함돼 규모가 더욱 커졌다. 금감원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자영업자 대출 규모도 520조원으로 비슷하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지난해 2월 금감원은 자영업자 부채 규모를 650조원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 수치는 ▶개인사업자 대출 ▶개인사업자 대출자의 가계대출 ▶사업자 대출을 받지 않은 개인사업자의 가계대출까지 더한 통계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시 자영업자 중에서 개인사업자 대출을 아예 받지 않고 가계대출로만 돈을 빌린 사람들도 통계에 포함시켰지만, 이후 이 항목은 자영업자 부채 개념으로 포함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최근 통계에서는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대출 기준의 문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자영업자’가 누구인지도 불분명하다. 자영업자에 대한 뚜렷한 법률적 정의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일반적인 통념을 바탕으로 자영업자를 구분한다. 이게 부처마다도 다르다. 통계청의 자영업자는 ‘근로자를 1인 이상 고용하거나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고 자기 혼자 또는 1인 이상 파트너(무급으로 일하는 가족 포함)와 함께 사업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사업자등록과는 무관하다. 무등록 사업자인 노점상이나 일부 대리운전 기사, 농부도 자영업자로 잡힌다. 국세청의 자영업자 기준은 납세 대상 사업자 중 법인을 제외한 개인사업자다. 무등록 사업자는 빠지지만 부동산업이나 임대업자가 대거 포함된다. 대부분의 대출 통계는 이 기준을 바탕으로 한다. 뒤집어 보면 지금 집계되는 자영업자 대출 규모에는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영세자영업자는 빠진다는 얘기다. 부동산 임대업자나 의사나 변호사 같은 고소득 자영업자의 부채가 통계에 착시를 일으킬 소지도 있다.

② 규모는 모르지만 빠르게 늘고 있다: 기준에 따라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달라지지만 증가 추세는 공통적으로 관측된다.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 2015년 210조4000억원, 2016년 240조원, 2017년 262조3000억원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3년 만에 무려 38%나 증가했다. 2016년 말 520조원으로 집계된 한은의 기준으로 봐도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2012년 318조8000억원, 2013년 346조1000억원, 2014년 372조3000억원, 2015년 422조5000억원으로 해마다 증가해왔다. 김종민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서는 자영업자 대출이 1년 만에 약 57조원(12.2%)이나 늘어났다. 2012년 354조5926억원에 불과하던 자영업자 대출금액은 4년 만에 거의 166조원이나 증가했다. 한 해 평균 40조원 이상 불어난 셈이다. 같은 기간 가계부채 증가율(39.5%)과 비교할 때도 자영업자 대출은 46.7%에 달해 증가 속도 면에서 가계부채보다 빨랐다.

③ 대출의 질이 좋지 않다: 또 다른 위험 징후는 자영업자 대출이 저신용 대출이나 비은행권에서 돈을 빌리는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자영업자가 상호금융권, 보험사, 카드·캐피털사 등 비은행 금융회사에서 받은 대출은 항상 법인기업 대출, 가계대출보다 빠르게 늘었다. 특히 비은행권 대출은 대부분 고금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비은행 금융회사의 개인사업자대출은 전년 동기 대비 42.3% 증가했다.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대출(10.1%)은 물론 비은행 금융회사의 법인기업대출(17.2%)이나 가계대출(7.6%) 증가율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이 같은 증가세에 비은행 금융회사의 개인사업자대출이 기업대출과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7.5%, 9.6%로 전년 말 대비 각각 3.1%포인트, 1.7%포인트 상승했다.

부실 대출의 비중도 크다. 금감원에 따르면 생계형 대출의 13.8%(5조3000억원), 일반형 대출의 10.1%(18조원), 기업형 대출의 4.0%(6조5000억원), 투자형 대출의 1.7%(2조4000억원) 등 32조2000억원이 신용도 7등급 이하의 저신용자 대출로 파악됐다. 전체 자영업자 대출의 약 6.1%가 부실 위험이 큰 저신용자를 상대로 대출된 셈이다. 부동산·임대업을 제외하면 연체율도 높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정호성 연구위원이 ‘BOK경제연구’에 실은 ‘가계대출 부도요인 및 금융업권별 금융취약성: 자영업 차주를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음식점이나 여관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대출 상환을 연체할 확률은 4.13%다. 도매 및 소매업은 연체할 확률이 3.9%로 두 번째로 높았다. 같은 자영업이라도 부동산·임대업(0.73%)보다 훨씬 높다. 앞서 지적한 부동산·임대업의 자영업 포함 문제를 감안하면 실제 영세 자영업자의 대출 부실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얘기다.

④ 금리와 경기 변동에 취약하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내 자영업의 폐업률 결정요인 분석’ 연구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0.1%포인트 올라가면 자영업자의 폐업 위험은 7~10.6% 높아진다. 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가산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자영업 대출자의 부도 확률은 0.127%포인트 증가한다. 비자영업 대출자에 비해 증가율이 3.6배 높다. 중복 대출이 많고 비은행 금융권 대출이 많아 금리 상승에 따른 부실 위험이 더 큰 것이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시중 금융권 대출금리가 상승하면서 자영업자의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폐업에 이르면 대출은 고스란히 부실이 된다. 한은 보고서에 따르면 대출총량보다 금리가 폐업에 이르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미국이 올해 4번이나 기준금리를 인상한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금리 역전에 따른 자본 유출을 걱정하는 한국 역시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경기 침체와 더불어 유동성의 급격한 축소 역시 자영업자의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연구에 따르면 저소득, 매출 감소 자영업자는 경기 침체와 유동성 축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영업자에 많은 다중 대출자도 마찬가지다. 이런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 경기가 침체되고 동시에 대출이 까다로워지면 제2금융권 또는 비제도 금융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상환 부담 가중은 결국 연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⑤ 빚 갚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자영업자의 소득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통계청의 ‘2017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 가구(2016년 기준)의 평균 소득증가율은 12.7%로 임시·일용근로자(4.2%)나 상용근로자(3.1%)보다 낮게 나타났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3.1% 늘어나는 동안 숙박·음식점업 GDP는 0.8% 오르는 데 그쳤다. 이들의 평균 소득(2016년 기준 월 137만원)은 업종 중 가장 낮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제자리다.

전망도 좋다고 할 수 없다. 특히 17년 만에 최대폭으로 오른 최저임금은 자영업자에게 가장 큰 부담이다. 높은 임대로나 프랜차이즈의 ‘갑질’도 자영업 소득 개선에 걸림돌이다. 정부가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프랜차이즈 감시 강화, 임대료 인상 제한 등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친다. 청년실업과 1인가구 증가, 회식문화 간소화라는 근본적인 사회 구조 변화도 전망을 어둡게 한다. 그런데도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의 진입이 잇따르면서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소득 기반 악화로 자영업 3년 생존율은 2010년 40.4%에서 2015년 37.0%로 하락한 것으로 추정됐다.

버는 돈을 빚 갚는 데 쓰는 비중도 크게 비교된다. 자영업자는 원리금 상환액이 처분가능소득의 34.8%나 되는 반면 상용근로자는 22%로 집계됐다. 자영업자의 경우 소득증가율이 낮은데 이마저도 빚 갚는 데 쓰며 허덕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자영업가구 중 가계부채 한계가구는 12만1749가구인 것으로 추정됐다. 가계부채 한계가구는 소득으로 원리금을 정상적으로 상환하기 어려운 가구 중에서도 자산을 모두 매각해도 부채 전체를 갚기 어려운 가구를 말한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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