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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람] 경산 '나무재벌' 함번웅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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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2년간 민둥산을 일구어 100억원대 산으로 탈바꿈시킨 함번웅씨가 경북 경산에 있는 자신의 산에 심은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 경산=조문규 기자

"산은 꾸준히 돈을 벌어주는 다이아몬드 광산이나 다름없습니다."

경북 경산시 용성면 송림리 '동아임장' 대표 함번웅(64)씨는 이런 신념으로 22년간 산에 묻혀 살며 민둥산을 100억원대 이상 가는 산으로 가꿨다.

29일 송림리에서 호수를 끼고 1㎞ 남짓 골짜기로 들어가자 함씨의 동아임장이 나타났다.

입구에는 산수유가 노란꽃을 활짝 피웠다. 인부 5명과 나무 아래에 더덕을 심던 함씨는 "산 110㏊(약 33만 평)에 130여 종 100여 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며 "나무 한 그루에 1만원씩 쳐도 100억원은 넘는다"고 설명했다.

건축업을 하던 함씨는 1977년 평당 100원 남짓인 4000만원에 이 산을 사들였다. 당시엔 나무 한 그루 찾기 힘든 민둥산이었다. 임씨는 산림경영이 위험이 작고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 직원 40명이던 건축회사를 84년 처분했다.

"건축업과 달리 세금 적고 노조 없지, 공해 산업도 아니어서 잘만 하면 재산이 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

그는 4년간 정부가 권장하는 소나무.느티나무.참나무.낙엽송.시더 등 '목재용 나무'를 심었다. 나무를 심은 뒤 벌채허가를 받으려면 30여 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초기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돈이 들어갔다.

이익을 빨리 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외국을 오가며 산림경영 기법을 배웠으나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시골장터의 노인에게서 약재와 기능성 식물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산수유는 혈압 강하, 허깨나무는 지방간 해독, 딱총나무는 골다공증, 개오동나무는 가려움증과 신장병 등에 좋다는 것이었다.

함씨는 북한에서 발간된 '동의학'을 구해다 읽는 등 기능성 식물에 대해 공부했다. 6년 넘게 읽은 책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래서 자작나무.물박달.허깨.딱총.참죽.산사.오가피.옻나무 등을 수만~수십 만 그루씩 심어 나갔다. 이들 나무는 수확기간도 1~15년으로 짧다.

나무 밑에는 더덕을 심고 염소를 방목했다. 지금도 염소는 100여 마리 된다. 봄이면 자작나무 등에서 수액을 채취하며, 입장료를 받고 산나물 캐기 행사를 열어 수입을 올린다. 수액 판매가는 한때 수천만원에 이르기도 했다.

장아찌.나물 등을 해먹는 참죽 잎을 조기 생산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도 만들었다. 묘목을 키우는 곳엔 종이 박스를 덮어뒀다. 습기를 유지하고 잡초를 막기 위해서다.

그는 "수십 년씩 목재용 나무가 자라는 동안 소득을 올리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했다"고 말했다.

키운 나무 중 느티.모과.시더.자작.떼죽.전나무 등은 주로 조경.가로수 등으로 판다. 약리 작용이 있는 딱총.물박달.참죽.음나무 등은 묘목으로 팔거나 가지.새순을 잘라 약재.식용으로 시중에 내놓는다.

함씨는 이렇게 해 연간 1억원 가까이 소득을 올린다. 그는 "지난 22년간 42억원을 투자, 20억원을 벌어 썼지만 날로 가치를 더해 가는 나무와 산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자랑했다.

그는 "1, 2년생 묘목을 1000~2000원에 구입해 10년만 잘 가꾸면 10만원짜리는 충분히 된다"며 산에 투자할 것을 역설했다. 그는 산림경영 기법을 전국에 전파한 공로로 2003년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경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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