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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도 쉬지 않고 '작업', 10년 버틴 뚝심의 사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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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상원의 포토버킷(17)

"You, Never Give Up!
You, Never Give Up!
You, Never Give Up!"

윈스턴 처칠의 옥스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이다. 역사상 가장 짧은 연설이라고 한다.

“포기하면 편하다.” 방송인 박명수의 그 유명한 엉뚱한 어록 중 하나다. 설마 포기하면 편하기야 하겠나. 금연 중 담배 참기를 포기하고 한 대 피워 물었을 때 잠깐의 쾌락 뒤에 밀려오는 그 자괴감은 느껴 본 사람만이 안다. 성공을 위해서는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겠지만, 실제로는 자주 포기하는 세태를 빗대어 반어적으로 말한 것 아닐까?

10년 뚝심과 유연함으로 사업론칭에 성공한 박완수 대표. [사진 이상원]

10년 뚝심과 유연함으로 사업론칭에 성공한 박완수 대표. [사진 이상원]

부동산 중개법인 ㈜플래너뱅크의 박완수(51) 대표는 10년 전 확신을 갖고 시작한 사업이 금융위기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어 더욱 발전한 모습의 부동산 중개서비스 ‘아라바요’로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아라바요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서비스를 신청한 고객에게 프리랜서 중개인인 ‘플래너’가 원하는 부동산을 찾아 계약을 도와주는 서비스이다.

바쁘고 정보가 부족한 고객은 전문 플래너의 도움으로 쉽고 편하게 원하는 부동산을 찾을 수 있고, 플래너는 창업·유지 비용이 많이 드는 부동산중개업소를 오픈하지 않고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중개를 통해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중개수수료 카드결제도 가능하고, 각종 부가혜택까지 제공되기 때문에 사용하는 고객과 플래너의 수가 크게 늘고 있다.

상사한테 혼나고 후배 깨는 선배보고 창업 결심

박 대표에게 10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새로운 부동산정책과 금융위기로 인해 거래가 얼어붙었을 뿐, 소비자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걸 확인했죠. 그리고 무조건 버티기만 한 것이 아니고 쓴소리도 귀담아듣고 반영하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주주들이 믿고 기다려 준 것이 큰 힘이 되었지요.

박 대표는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해 친구들보다 1년 먼저 졸업을 했다.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하고 싶었고, 바로 건설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3년 후 대학생이 된 친구들이 부러워 뒤늦게 한국외국어대학교 일어과에 진학했다. 빨리 시작하려던 것이  오히려 3년이 늦어진 결과가 됐다. 잘못된 선택은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게다가 돈 벌기의 소중함까지 일찍 깨달을 수 있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1996년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LG카드에 입사했다. 생활서비스 개발부서에서 고객에게 부동산 중개정보를 제공해 주는 서비스를 담당했다. 부동산정보지 사업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각종 서비스가 만들어지던 시기라 소비자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이때부터 단순히 부동산 중개업자의 광고를 대행해 주는 일보다, 고객의 불편을 줄여주고 시간을 절약해주는 서비스에 관심을 가졌다.

생활서비스 마케팅 업무에 정신이 없던 2002년 어느 날, 상사의 방에서 크게 혼나고 나와 후배들에게 화풀이하는 선배의 모습에서 몇 년 후 자신을 봤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잘 배우고 준비해서 창업해야겠다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10년 직장생활을 하고 나이 40을 앞둔 시기에 드디어 마음을 먹었다. 충동적으로 무모하게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부동산 서비스를 담당하면서 부동산 중개 시장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있었다.

부동산 중개사 시험에 합격해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나 높은 창업비용 때문에 중개소를 열지 못하고 있는 소위 ‘장롱면허’ 중개사의 수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참고로 2018년 현재 발급된 중개사 자격증 수는 40만에 육박하지만 개업한 중개사는 약 10만 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매년 약 2만장의 자격증이 새로 발급되고 있다).

아라바요 플래너의 부동산 중개 서비스 개요 [사진 이상원]

아라바요 플래너의 부동산 중개 서비스 개요 [사진 이상원]

이들을 플래너로 모집해 고객과 중개업소를 잇는 ‘프리랜서 중개사’ 역할을 맡기면 고객, 중개업소, 휴면 자격증 소지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중개수수료를 카드결제로 할 수 있게 해 주면 카드회사 매출도 오르기 때문에 카드회사도 제휴파트너로 제격이었다.

서비스 오픈하자 폭발적 반응

법인을 설립하고 서비스를 오픈했다. 예상대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짧은 시간 내에 1000명이 넘는 고객 문의와 함께 실제 100건 이상의 부동산 거래가 플래너를 통해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중개수수료의 50%를 수익으로 받는 플래너들의 반응이 뜨거웠고, 단순한 알선서비스를 넘어서 컨설팅·금융·세무 등 보다 전문적인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았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듯이 성공을 목전에 두었던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해 국제금융위기가 터졌다. 국내 부동산 시장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사건이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얼어붙은 분위기 탓에 거래가 뚝 끊겼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이었지만 박 대표는 사업모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 아래 소나기는 피해 가자는 전략을 택했다. 제휴를 맺고 있던 금융회사들에 기본적인 부동산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공급하며 버티기로 결심했다.

결과적으로 생각보다 긴 시간을 버틴 셈인데, 어려운 점은 없었느냐 물었다.

물론 어려웠지요. 하지만 좋은 기회이기도 했어요. 부동산중개법인은 대표가 중개사 자격증을 가져야 하는데, 이 기회에 자격증도 땄고요. 실제 중개업무를 해보면서 새롭게 배운 것도 많습니다. 주주와 소비자를 대상으로 서비스에 관한 피드백을 받아 새롭게 정비도 해나갔지요. 새로운 의견이 있으면 반영해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어요. 본인이 만든 서비스의 빈틈을 지적하면 일단 방어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인데, 열린 마음으로 반영하고 개선점을 찾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주주들이 신뢰를 갖고 기다려 줬습니다. 저를 믿고 투자해 준 분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면 아마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10년 동안 배당 한 푼 없이 같이 버텨 준 분들께 이 기회를 빌려 감사를 드립니다.

뚝심과 유연함으로 버틴 세월의 보상이라고 할까. 박 대표에게 뜻하지 않은 선물이 찾아왔다. 바로 스마트폰과 애플리케이션의 사용이 보편화한 것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이 없었던 플래너뱅크 초창기에 플래너에게는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s, 개인휴대정보 단말기)를 지급해 주었다. PDA 사용법 교육도 만만치 않았고, 아주 기본적인 고객정보와 매물정보만 제공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과거에는 소비자가 홈페이지나 전화로 서비스를 신청하면 플래너가 PDA로 고객에게 연락했지만, 현재는 플래너뱅크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아라바요’를 통해 모든 서비스가 제공된다. 소비자용 앱과 플래너용 앱이 따로 출시돼 있다. 초기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서비스가 편리해졌다.

부동산 중개 앱 ‘아라바요’ 화면, 고객용(좌)과 플래너용(우). [사진 이상원]

부동산 중개 앱 ‘아라바요’ 화면, 고객용(좌)과 플래너용(우). [사진 이상원]

“수수료 수입 1억 넘는 플래너 키우겠다”

위기를 잘 넘기고 새롭게 출발한 박 대표의 향후 꿈과 목표가 궁금해졌다.

10년 전 사업을 시작할 때는 고객의 발품을 줄여주고 수수료 카드결제를 가능하게 하는 등 고객서비스 측면에 집중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플래너 창업을 지원하는 것을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라 전체가 새로운 일자리 만들기와 찾기에 힘을 쏟고 있지 않습니까. 일단 3000명 플래너를 모집하고 수수료 수입 1억원을 거두는 플래너가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사업을 성공적으로 키워 중개 관련 빅데이터가 쌓이면 이를 기반으로 한 사람의 플래너가 ‘토탈라이프케어’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사업모델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라바요 전문 직무교육 받는 플래너들. [사진 이상원]

아라바요 전문 직무교육 받는 플래너들. [사진 이상원]

언젠가 읽었던 영화감독 류승완이 쓴 책 속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관객 300만명 넘는 영화가 하나도 없었는데 10년 동안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류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 “운도 있었지만 쉬지 않고 작업사이클을 돌렸죠. 영화 못 찍을 때는 CF도 찍고요. 뭐라도 계속 찍으니까 투자사에서도 뭔가 터뜨리지 않을까 하는 거죠.”

박 대표 또한 어려움에 부딪혔지만 계속 ‘작업사이클’을 돌려 이겨냈다. 다른 사람이라면 포기하고 회사를 닫을 위기에서 그는 오히려 직접 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중개업무를 했다. 마케팅 대행업무를 하면서 비용을 마련하기도 했다. 투자자들도 쉬지 않고 노력하는 그의 자세를 보며 뭔가 기대를 하지 않았을까. 후속 투자까지 이루어졌다. 뚝심과 유연함으로 위기를 버텨 낸 박완수 대표의 자세에서 켜켜이 쌓인 내공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상원 밤비노컴퍼니 대표·『몸이 전부다』저자 jycyse@gmail.com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www.joongang.co.kr/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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