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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만에 다시 만난 새엄마와 딸, 영화 '더 미드와이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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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28) 영화 ‘더 미드와이프’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영화 <더 미드와이프>에서 조산사 클레어 역을 맡은 카트린 프로. [사진 브리즈픽처스 제공]

영화 <더 미드와이프>에서 조산사 클레어 역을 맡은 카트린 프로. [사진 브리즈픽처스 제공]

35년 전 집 나간 엄마 베아트리체(까뜨린느 드뇌브 분)에게서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한 통. 좀 만나자는 거였지만 클레어(카트린 프로 분)는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필요할 땐 버려놓고 이제 와서 찾다니. 솔직히 이제 완전 남이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엄마가 나간 이후로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았는데... 그렇지만 나와 아빠를 버리고 간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배신감 반 궁금함 반으로 그녀가 살고 있다는 곳으로 가 보는데요.

친엄마와 딸도 아닌 새엄마와 딸의 관계를 그린 이 독특한 영화는 프랑스 개봉 당시 31주(8개월) 동안 상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67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영화입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여자

딸 클레어는 미드와이프, 조산사입니다. 자기 일에 직업의식을 갖고, 오랜 시간 동안 아이를 받아 본 그녀만이 가진 노하우로 초보 엄마들에게 도움을 주는 베테랑이죠. 채식주의자에 술을 즐기지 않으며, 편한 옷을 즐겨 입고, 취미로는 텃밭을 가꿉니다.

클레어의 텃밭. 극중 클레어는 텃밭 가꾸는 일을 좋아한다. 클레어의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 [사진 브리즈픽처스 제공]

클레어의 텃밭. 극중 클레어는 텃밭 가꾸는 일을 좋아한다. 클레어의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 [사진 브리즈픽처스 제공]

반면 엄마 베아트리체는 한평생 일정한 직업을 가져보지 못한 백수입니다. 그런 그녀의 주 수입원은 카드게임이죠. 고기와 술을 즐겨 먹고 화려한 옷을 좋아합니다. 한마디로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할까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두 여자는 마치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연상케 합니다. 매사에 너무 '열심히'인 클레어는 개미, 그 반대인 베아트리체는 베짱이로 그려지는데요. 감독은 이를 “누구나 약간은 의무감을 갖고 살아가고 싶어 하고, 또 약간은 베짱이처럼 인생을 즐기려고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말하며 의도한 구성이라 전했습니다.

이 말을 통해 감독이 제목을 붙인 데는 미드와이프(midwife), 조산사라는 원래의 의미도 있지만 미드(mid, 중간의) 와이프(wife, 부인) 양면성을 나타내는 의미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뻔한 모녀관계 이야기 탈피

베아트리체가 클레어를 다시 찾은 이유는 (예상하신 분도 있겠지만) 자신의 병 때문이었습니다. 뇌종양, 위치가 좋지 않았고 문득 죽음이 두려워진 그녀는 딸을 찾은 거죠.

영화 <더 미드와이프>에서 클레어의 새엄마 베아트리체 역을 맡은 까뜨린느 드뇌브. [사진 브리즈픽처스 제공]

영화 <더 미드와이프>에서 클레어의 새엄마 베아트리체 역을 맡은 까뜨린느 드뇌브. [사진 브리즈픽처스 제공]

이런 스토리 흐름이라면 뻔한 모녀관계 이야기(예를 들어 헌신적인 엄마의 사랑에 비해 무관심한 딸. 이후 엄마는 병에 걸렸고, 이를 계기로 딸은 엄마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가 펼쳐지면서 관객들의 눈물 콧물을 쏙 빼겠다고 하시겠지만, 아닙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모녀 관계를 그린 영화를 벗어난 영화라 볼 수 있습니다.

새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와 이들이 서로 떨어져 있던 시간이 '헌신적인 사랑'과 연결 짓기 어려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들 두 사람은 서로 전혀 다른 친구 관계 같습니다. 왜 서로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전혀 다른데 쿵짝이 잘 맞는 친구 있잖아요. 마치 그런 친구같이 투닥거리죠. 그러다가 서로에게 동화됩니다.

자타공인 바른 생활의 표본 클레어는 베아트리체의 자유로움에,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던 베아트리체는 클레어를 통해 자신과 그동안의 삶에 대해 깊이 되돌아보죠.

결말도 뻔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죽음에 다다랐어도 끝까지 자유를 찾아 떠난 엄마와 그녀를 찾지 않는 딸. 이후 딸에게 우편으로 보낸 뜨거운 키스를 담은 편지는 열린 결말을 의미합니다.

감독 자신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구성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여배우, 까뜨린느 드뇌브와 카트린 프로는 이 영화에서 엄청난 앙상블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진 브리즈픽처스 제공]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여배우, 까뜨린느 드뇌브와 카트린 프로는 이 영화에서 엄청난 앙상블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진 브리즈픽처스 제공]

영화 속 장면 중 클레어의 도움으로 태어난 여자가 다시 클레어의 도움으로 아이를 낳게 됩니다. 그 여자는 태어나자마자 수혈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는데요, 클레어가 직접 수혈해 살아났죠.

이 장면은 마르탱 프로보스트 감독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감독 자신도 태어난 직후 조산사가 피를 헌혈해 줬기 때문에 건강하게 살 수 있었고 출생신고 역시 조산사였음을 알게 되며 감사함을 느꼈다 전했는데요. 그래서 그는 영화를 자신의 조산사에게 헌정한다고 말했습니다(영화 첫 장면에서 자막으로 나옵니다). 감독은 조산사라는 직업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많은 조산사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고 전했는데요.

실제로 영화 속 등장하는 출산 장면들은 조산사 역을 맡은 카트린 프로가 영화 촬영 전부터 훈련을 받으며 준비했으며, 아기를 낳을 산모와 가족들의 동의하에 자연 분만하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법으로 출생 3개월 미만의 아기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촬영지를 벨기에로 옮겼다고 하네요. 이 덕분에 새 생명이 탄생하는 아름다운 순간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길 수 있었습니다.

자극적인 영화들을 싫어하시는 분들이나 지치신 분들이라면, 프랑스가 사랑하는 두 레전드 배우가 함께한 따뜻한 영화 <더 미드와이프>를 추천해 드립니다.

더 미드와이프

영화 <더 미드와이프> 포스터. [사진 브리즈픽처스 제공]

영화 <더 미드와이프> 포스터. [사진 브리즈픽처스 제공]

감독·각본: 마르탱 프로보스트
출연: 캐서린 프로트, 까뜨린느 드뇌브
촬영: 이베스 카페
음악: 그레고와르 헷젤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17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8년 3월 22일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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