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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디스플레이 … 잘나가는 중간재 수출 타격 불보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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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호 05면

한국, 새우등 터지나 

한국의 1, 2위 교역 대상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위기에 처했다. 당장 반도체 등 중간재 수출 감소가 불가피한 데다 무역전쟁이 확대돼 세계 교역이 위축될 경우 대부분의 산업으로 피해가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대중국 수출액 1421억 달러 #그중 79% 중간재·부품이 차지 #중국의 대미 수출 품목에 많이 쓰여 #3각무역 구조 탓 한국도 영향권 #차·컴퓨터 등은 반사이익 가능성 #미 보복, 한국으로 확대 우려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라 연간 최대 6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최고 25%의 고율 관세가 부과된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에 얼마만큼의 관세를 부과하느냐다. 대상 품목에 따라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어떤 상품이 실제로 피해를 받게 될지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1300개의 관세 대상 품목 후보군 가운데 앞으로 15일간 관계부처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품목을 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첨단 정보기술(IT) 제품 및 로봇·항공우주·전기차 등이 포함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중국 정부가 ‘중국 제조 2025’ 계획에서 꼽은 핵심 전략 제조업 품목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바로 “핵심 전략 제조업 품목에 관세 부과”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중국 제조 2025’는 2015년 5월 중국 국무원이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발표한 산업 고도화 전략이다. 10대 전략 산업으로 ▶차세대 IT 분야 ▶고정밀 제어 및 로봇 ▶항공 및 항공우주 장비 ▶해양 장비 및 첨단 기술 선박 ▶농업 기계 ▶신에너지 및 전기자동차 ▶바이오 의약 및 고성능 의료기기 ▶선진 궤도 설비 등을 꼽았다.

이들 품목에 대한 미국의 무더기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한국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중국이 한국에서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든 다음 미국에 수출하는 3각무역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주요 대중 수출상품은 반도체·평판디스플레이·무선통신기기·합성수지·석유화학 중간원료 순이다. 중국은 이를 가공해 전자기기 등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다.

USTR에 따르면 중국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주요 제품은 전자기기, 기계설비, 가구 및 침구, 완구 및 스포츠용품, 신발 등이다. 이 가운데 가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제품이 한국산 원료와 중간재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대중 수출 규모는 1421억 달러다. 이 가운데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78.9%에 이른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면 여기에 필요한 한국산 중간재 수요 역시 덩달아 감소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대미 수출 품목에는 컴퓨터·휴대전화·TV·가전제품 등이 많은데, 여기엔 한국에서 수입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중간재가 많이 쓰인다. 특히 현재 한국의 수출 호조를 이끄는 반도체가 유탄을 맞을 수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997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17.4%를 차지했다. 반도체 수출국 1위가 중국이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아직 구체적인 관세 부과 품목이 나오지 않았지만 무역 구조상 반도체를 비롯한 한국의 중간재 수출 타격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우려가 반영되면서 반도체 업종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4% 가까이 하락했고 최근 고공행진을 거듭했던 SK하이닉스 주가도 6.21% 급락했다.

관세 10% 땐 한국 성장률 0.6%P 하락

반면에 중국을 통한 우회수출 규모가 크지 않은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중국산 제품과 미국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무선통신기기와 컴퓨터 등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은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대표적인 상품이지만 중국을 통한 우회수출이나 중국산 자동차와의 경쟁은 거의 없다. 휴대전화와 TV·냉장고 등 미국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이 경합하는 가전제품이 고율 관세 품목에 포함될 경우 한국이 대미 수출에서 혜택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에 이어 한국 역시 미국의 과녁이 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비록 한국 제품에 대한 철강 관세 부과를 일시적으로 면제했지만 대미 무역 흑자를 많이 내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함께 한국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타깃이 될 수 있다”며 “정부와 산업계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전체 수출량 96만 대 가운데 40만 대 정도를 북미 지역으로 수출했고, 르노삼성도 부산공장에서 닛산 브랜드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를 매년 10만 대 이상 생산해 전량 미국으로 보내왔다.

KB증권에 따르면 2015~2017년 미국에 쌓인 무역 적자의 약 58%가 자동차·전자·기계에서 나왔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자동차와 IT 부문은 대미 흑자 규모가 크며, 수출이 증가하고 있어 추가 규제 가능성이 있다”며 “세부적으로 보면 컴퓨터·냉장고·무선통신기기·반도체 등이 무역 흑자가 큰 부문”이라고 짚었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대미 직접 수출도 감소할 수 있다.

개별 품목의 피해도 문제지만 관세 부과에 따른 교역 규모의 감소로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것이 최악의 상황이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경제 규모가 큰 두 나라의 교역 축소는 전 세계적으로 파문을 불러올 수 있다.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면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수출이 줄고, 성장률이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세계 평균 관세율이 현재 4.8%에서 10%로 높아지면 국내 수출액은 173억 달러 줄어들고 고용은 15만8000명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 성장률은 0.6%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박현영·조현숙·하남현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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