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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땅'서 빚은 신의 물방울 격이 달라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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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호 20면

이스라엘 와인의 90%는 유대교 율법에 따라 만든 코셔(Kosher)와인이다. 유대교를 믿는 남성만이 와인 오크통을 관리할 수 있다. 이도교는 오크통을 만질 수도 없다.

이스라엘 와인의 90%는 유대교 율법에 따라 만든 코셔(Kosher)와인이다. 유대교를 믿는 남성만이 와인 오크통을 관리할 수 있다. 이도교는 오크통을 만질 수도 없다.

대다수 한국인에게 이스라엘은 두 가지 이미지로 기억된다. 끝없는 종교 분쟁과 척박한 사막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이스라엘은 북으로는 레바논, 동으로는 시리아·요르단, 남으로는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갈등 요소가 다분하다. 그러나 국토는 황량하기는커녕 올리브와 레몬나무로 사철 푸르다. 서쪽에 지중해를 접하고 있고, 수량 4조ℓ에 이르는 갈릴리호수를 품은 덕분이다. 건조하고 청명한 날씨는 이스라엘 농산물의 품질을 높인다. 특히 헤르몬산(2749m)이 있는 북부 고지대는 양조용 포도가 생산지로 이름이 높다. 지중해 바닷바람이 뜨거운 대지를 식혀 포도 송이를 단단히 여물게 한다.

이스라엘 와이너리 투어 #지중해 햇볕과 바람이 빚은 와인의 풍미 #고대 와인 재연하고 유기농법 실험 하기도

척박한 사막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스라엘은 사시사철 푸르다. 내리 쬐는 태양 아래 지중해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포도로 양질의 와인을 빚기 좋은 환경이다.

척박한 사막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스라엘은 사시사철 푸르다. 내리 쬐는 태양 아래 지중해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포도로 양질의 와인을 빚기 좋은 환경이다.

나라 없이 떠돌던 유대인은 1948년 이스라엘 땅에 깃발을 꽂았다. 나라의 기틀을 갖춰지자 와인에 대한 꿈도 피어올랐다. 유럽의 선진 양조 기술을 익힌 유대인이 고향 땅에서 자신만의 와인을 빚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초반 이스라엘 와인 산업이 급성장했다. 이것이 면적 2만770㎢ 불과한 전라도 크기의 이스라엘 땅에 현재 와이너리 350여 개가 자리 잡게 된 배경이라 하겠다.
보르도에서만 연간 8억병을 만드는 와인 종주국 프랑스에 비하면 이스라엘의 와인 생산량은 한해 350만병으로 하잘것없다. 그러나 각종 와인 대회에서 이스라엘 와인이 입상하자 주목도가 커졌다. 이스라엘 와인의 20%는 미국·유럽 등으로 수출된다.

유럽과 미국에서 선진 양조 기술을 익힌 젊은 와인 메이커들이 이스라엘의 와인 산업을 이끈다.

유럽과 미국에서 선진 양조 기술을 익힌 젊은 와인 메이커들이 이스라엘의 와인 산업을 이끈다.

이스라엘경제무역대표부 야라 시모니는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의 발원지에서 만들었다는 스토리도 이스라엘 와인을 띄우는 데 한몫을 했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와인을 소개하고자 나선 이스라엘의 초대에 호기심을 갖고 응했다. 2월 하순, 이스라엘 와이너리 15곳을 방문했다. 이중 4군데를 골라 소개한다. 이스라엘의 와인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였다.

예수가 마신 와인

레카나티 와이너리 와인메이커 길 샤츠버그. 팔레스타인 거주지에서 수확한 포도로 고대 와인을 재연한다.

레카나티 와이너리 와인메이커 길 샤츠버그. 팔레스타인 거주지에서 수확한 포도로 고대 와인을 재연한다.

이스라엘에서 와인 비즈니스는 ‘신생’ 산업이 아니라 ‘복원’ 사업이다. 이스라엘 땅에서 수 천 년 전 와인을 빚었다는 게 이유다. 근거는 ‘성경’이다. 구약 성서에는 와인이라는 단어가 140회 등장하고, 예수는 자신의 피를 와인에 빗댔다. 유대왕국이 멸망한 이후, 술을 금기하는 이슬람 세력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와인도 실종됐다.
고대 와인은 어떤 맛이었을까. 의문에 답을 찾기 위해 2000년 이스라엘 아리엘대학 연구진이 이스라엘 전역을 뒤졌다. 그 결과, 세계 어느 나라에도 등록되지 않은 토착 화이트와인 품종 ‘마라위’와 레드와인 품종 ‘비투니’를 팔레스타인 거주지에서 발견했다. 팔레스타인 농부가 기른 포도를 받아다가 유대인이 와인을 제조하는 곳이 레카나티(Recanati) 와이너리다. 대도시 텔아비브에서 차로 1시간 떨어진 헤퍼 벨리(Hefer Valley)에 있다. 와이너리를 방문하면 연간 2000병 밖에 생산하지 않는 ‘고대 와인’을 맛볼 수 있다. 마라위는 단 맛이 거의 없어 식전주로 알맞고, 비투니는 피노누아처럼 가볍게 즐기기 좋은 와인이었다. 시음비 15셰켈(약 5000원).

프랑스 와인이 꽃 피다

1세기가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스라엘 최초의 와인 양조장 카멜 와이너리.

1세기가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스라엘 최초의 와인 양조장 카멜 와이너리.

1882년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을 계기로 전 세계 흩어져 살던 유대인이 이스라엘 땅으로 밀려들었다. 당시 오스만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이스라엘에서 정착민과 유대인의 충돌이 빈번했다. 이 갈등을 불식한 것이 와인이었다. 유럽 최고 부자 가문 로스차일드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북부 소도시 지크론 야코브(Zichron Yaakov)에 와이너리를 세웠다. 프랑스 5대 와이너리 중 하나인 샤토 라피트 로쉴드(château Lafite Rothschild)를 소유한 로스차일드는 유대인 이민자에게 양조기술을 전파했다. 이것이 이스라엘 최대·최고(最古) 양조장 카멜(Camel) 와이너리의 탄생 스토리다.
1892년 첫 와인을 만든 카멜 와이너리는 지금도 연간 150만병의 와인을 제조한다. 와이너리 투어(25셰켈·약 8000원)를 신청하면 와인 4종류를 맛보고 건물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드물게 아이스와인도 만든다. 일반적으로 포도 1㎏으로 와인 1병을 빚는데, 아이스와인은 수분이 빠져나와 농축된 포도 6㎏을 써야 한다. 맛과 향이 달콤해서 디저트로도 손색없다.

갈릴리에 자라는 포도

갈릴리 주변 경사진 비탈면에 포도를 키우는 키쇼 와이너리.

갈릴리 주변 경사진 비탈면에 포도를 키우는 키쇼 와이너리.

국제공항이 있는 텔아비브에서 차로 2시간을 달리면 갈릴리호수에 닿는다. 면적 166㎢에 달하는 담수호는 갈릴리바다(Sea of Galilee)로도 불린다. 고대 히브리어에 호수와 바다의 구분을 두지 않은 탓이다.
갈릴리호수는 산길을 오르다가 급작스럽게 푹 꺼진 땅에 고여 있다. 호수 수면은 지중해 해수면보다 200m 낮다. 갈릴리호수를 가운데 두고 주변은 온통 비탈진 언덕이다. 일찌감치 휴양지로 개발돼, 주변에 드라마틱한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고급 리조트가 즐비하다. 요즘 비탈면은 포도밭으로 개간되고 있다. 일교차가 크고, 배수가 잘 된다는 특성 덕분이다. 갈릴리 주변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은 향과 풍미가 뛰어나다. 키쇼(Kishor) 와이너리는 갈릴리 주변 해발 5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와인을 만든다. 소도시 카르미엘(Karmiel)에 여행객을 위한 비지터센터(입장료 35셰켈·약 1만1000원)를 두고 있다.

음악을 듣고 자란 와인

지중해식 샐러드와 궁합이 잘 맞는 로템 와이너리의 쇼비뇽블랑 와인.

지중해식 샐러드와 궁합이 잘 맞는 로템 와이너리의 쇼비뇽블랑 와인.

와인을 마시고 숙취가 심하다면 와인 자체를 의심해봐야 한다. 포도를 기를 때 뿌리는 농약 성분이 녹아들었거나, 부패를 막기 위해 이산화황을 첨가한 와인일 수 있다. 로템(Lotem) 와이너리는 이스라엘 최대 유기농 와이너리로 갈릴리호수 북부에 있다. 육군 대령으로 예편한 뒤 와인 메이커가 된 요나단 코린이 이끌고 있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손으로 수확한 포도만 고집한다. 와인 발효를 위해 첨가하는 이스트도 직접 배양해서 쓴다. 와인 숙성실에는 24시간 음악이 흐른다. 코린은 “와인과 음악이 공명하면 와인 맛이 더 좋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설명을 들어서인지 로템 와이너리의 와인은 뒷맛이 깔끔하다고 느껴졌다. 열매를 으깨지 않고 지그시 눌러서 짜낸 과즙으로 만든 화이트와인 쇼비뇽블랑을 추천한다. 입장료 35셰켈·약 1만1000원

◇여행정보=이스라엘은 외교부의 경보 2단계인 ‘여행 자제’ 국가다. ‘철수 권고’ 지역인 가자지구, ‘특별여행경보’ 지역인 서안(West bank) 방문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대한항공이 인천~텔아비브 노선을 주 3회(화·목·토) 운항한다. 와이너리 투어는 각 와이너리에 예약 후 방문하거나, 현지 여행사 이스라엘와인투어(israelwinetour.co.il) 등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4~10월 사이 방문할 계획이라면 더위에 유의해야 한다. 기온은 30도 안팎이며 볕이 뜨겁다. 우리나라보다 7시간 느리고 화폐는 셰켈(1셰켈=약 310원)을 쓴다.

이스라엘=글·사진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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