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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도 못다 푼 숙제 … 블랙홀 증발의 미스터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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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호 27면

[조현욱의 빅 히스토리] 블랙홀 물질의 정보는 어디로

블랙홀 상상도. 스티븐 호킹 박사는 블랙홀이 증발할 때 정보를 어디에 남기는지를 알아내지 못한 채 지난 14일 타계했다. [AFP=연합뉴스]

블랙홀 상상도. 스티븐 호킹 박사는 블랙홀이 증발할 때 정보를 어디에 남기는지를 알아내지 못한 채 지난 14일 타계했다. [AFP=연합뉴스]

우주에서 정보가 영원히 사라질 수 있는가? 지난 14일 별세한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제기했고 마지막까지 탐구했던 의문이다. 이날 과학전문지 라이브사이언스는 “그의 ‘가장 흥미로운’ 과학적 질문은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다”고 보도했다. 호킹의 가장 유명한 논문 ‘블랙홀 폭발?’이 발표된 것은 44년 전인 1974년이었다. 이것은 물리학자들에게 충격을 줬다. 고전적인 개념에 따르면 블랙홀은 완전히 차가워야 한다. 모든 것을 흡수하고 아무것도 방출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70년대엔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었다.” 미국 로욜라대 물리학자 로버트 맥니의 말이다.

‘모든 것 흡수, 아무것도 방출 안 해’ #기존 이론 대신 ‘열 방출, 소멸’ 제기 #소멸 때 물질 정보 들어있지 않아 #‘블랙홀의 정보 역설’ 문제 생겨나 #경계면 너머 홀로그램에 정보 저장 #‘부드러운 털’ 이론 제시, 더 밝혀야

이 같은 블랙홀은 에너지를 전혀 방출하지 않으며 어떤 물질도 여기서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차갑고 조용한 상태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호킹의 논문은 이 천체를 살아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천체가 소멸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70년대 초반 호킹은 양자역학적 효과를 검토한 뒤 깨달았다. 블랙홀은 마치 열과 온도를 지닌 물체이기라도 한 것처럼 원칙적으로 복사파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블랙홀이 에너지를 방출한다면 질량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블랙홀이 수축하면서 온도가 높아지며 더욱 빠른 속도로 복사파를 내놓게 된다는 것을 호킹은 발견했다. 결국 블랙홀은 아마도 완전히 사라지거나 아주 작은 덩어리로 수축할 것이다.

블랙홀 증발의 이 같은 최후 단계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력을 다루는) 상대성이론과 (입자를 다루는) 양자역학을 완전히 통합하는 굳건한 양자 중력 이론이 있어야 한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만물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라고 부른다. 호킹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원래 제목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의 계산에 따르면 소멸 단계에서 블랙홀이 내놓는 것은 오로지 열밖에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블랙홀을 만들게 된 물질의 상태에 대한 정보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이는 양자역학의 기본 법칙에 어긋난다”고 맥니는 말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모든 입자의 미래와 현재 전체는 원리상 파악이 가능해야 하며 일련의 인과관계와 확률론적 사건을 통해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만일 블랙홀이 자신의 정보(역사)가 복원 불가능하게 지워진 상태로 상호 구별이 불가능한 입자들의 수프를 내놓는다면 이 같은 원리에 근본적으로 위배된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블랙홀의 정보 역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는 양자 중력 이론이 만들어진 이래 이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스티븐 호킹. [베를린 AP=연합]

스티븐 호킹. [베를린 AP=연합]

호킹이 경력 후반부에 발표한 가장 극적인 논문은 2014년 발표된 ‘블랙홀의 정보 보존 및 날씨 예보’다. 이에 따르면 전통적인 의미의 블랙홀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블랙홀의 주변은 심지어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경계면 즉 ‘사건의 지평선’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의 논문은 이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빛이 갇혀 버린 겉보기 사건의 지평선이 존재하지만 이 지평선은 사라질 수 있고 여기서 빛이 탈출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그는 썼다. 이것은 사실상 블랙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블랙홀의 정보 역설을 해결하기 위한 호킹의 마지막 시도는 2016년 논문이었다. 케임브리지대의 맬콤 페리, 하버드대의 앤드루 스트로밍어와 함께 발표한 ‘블랙홀의 부드러운 털(Soft Hair on Black Holes)’이다.

이들은 블랙홀이 부드럽거나 에너지가 없는 입자들(소위 ‘털’)로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이 털은 블랙홀이 방출하는 입자에서 사라진 정보를 블랙홀 경계면 너머에 있는 홀로그램 판에 저장한다. 그러므로 정보는 형태가 바뀌기는 하지만 정말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홀로그램 판을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이나 정보 역설을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아직 미해결의 과제다. 우리는 이 문제에 접근할 새롭고 구체적인 도구를 이번에 제시한 것”이라고 이들은 논문에 썼다. 블랙홀의 정보 역설은 양자 중력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핵심 질문의 하나로 남아 있다.

한편 호킹의 마지막 연구는 또 다른 우주의 존재에 관한 것이었다고 18일 영국 더타임스가 보도했다. 벨기에 KU 루뱅대의 토머스 헤르토흐 교수와 함께 쓴 논문의 제목은 ‘영구 인플레이션으로부터의 유연한 출구?’다. 헤르토흐 교수는 “호킹이 사망하기 2주 전에 내용을 최종 협의하고 동의를 얻었다”고 밝혔다. 논문은 1급 학술지에 제출돼 검토가 진행 중이다. 이는 우리 우주가 무수한 우주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다중우주(multiverse)’ 이론에 관한 것이다. 우선, 우주는 아주 작은 점으로부터 지수적으로 초팽창해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본다. 문제는 ‘우리의’ 빅뱅은 무한한 수의 여러 빅뱅과 함께 일어났어야 한다는 점이다. 해당 이론에 따르면 이에 따라 각각 별개의 무수한 우주가 만들어져야 했다.

다중우주가 우주배경복사에 흔적을 남겼으며 우리는 이를 우주선에 설치한 탐지기로 측정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다. 우주배경복사란 빅뱅의 흔적으로 온 우주에 퍼져 있는 태초의 빛을 말한다. 하버드대 천문학과의 학과장인 에이비 뢰브는 해당 논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학을 이용해 이 같은 수학적, 철학적 병목을 우회하고 다중우주에서 존재할 수 있는 유형의 우주에 대해 실질적인 예측을 내놓았다.”

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서울대 졸업. 중앙일보 논설위원, 객원 과학전문기자,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역임. 2011~2013년 중앙일보에 ‘조현욱의 과학산책’ 칼럼을 연재했다. 빅 히스토리와 관련한 저술과 강연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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