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서…"
경기도 하남시 산불감시원 채용비리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청탁을 받은 시장과 시의원 등이 해당 부서에 명단 등을 건네는 등 합격을 요구하면서 정당하게 지원한 이들이 피해를 봤다. 부정 합격한 이들은 합격은 모두 취소됐지만 일부는 하남시의 재 채용시험에 통과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오수봉 하남시장 등 7명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입건 #지인 등에게 청탁받아 산불감시원 부정 채용
경기 하남경찰서는 23일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 방해와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오수봉(60) 하남시장 등 7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입건된 이들 중에는 오 시장의 비서실장 A씨(61)과 시의원 B씨(52), 하남시의 한 부서 국장, 관련 업무 담당 부서 과장과 팀장, 청원경찰 등도 포함됐다.
이들은 올해 초 진행된 하남시 산불감시원 채용에서 지인 등을 통해 청탁받은 23명을 합격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오 시장의 경우 지역 모임에서 만난 관계자가 작성해서 건넨 13명의 명단을 비서실장을 통해 산불감시원 채용 부서에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B시의원과 하남시의 국장, 청원경찰 등도 '친척', '친한 지인'이라며 1~3명씩 10명의 채용을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부서 과장과 팀장 등 담당 공무원들은 오 시장 등이 추천한 응시자들에게 면접에서 쉬운 질문을 하는 방법 등으로 이들의 채용에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산불감시원은 봄철(2월 1일~5월 15일)·가을철(11월 1일~12월 15일) 5개월 동안 주 5일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근무하고 6만5440원의 일급이 지급돼 중·장년층의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앞서 하남시는 지난 1월 산불감시원 채용공고를 내고 61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서류심사(20점)와 체력시험(30점), 면접(50점)을 거쳐 31명을 합격시켰다. 여기엔 오 시장이 건넨 명단에 들어있던 13명과 다른 사람들이 청탁한 10명 등 23명이 모두 포함됐다.
이런 사실은 해당 부서의 C주무관(9급)이 시청 내부게시판에 "산불감시원 채용 시험이 불공정하게 진행됐고 검정 과정에서도 조작이 있었다"고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C 주무관은 "과장과 팀장이 합격시켜야 할 사람의 이름이 적힌 쪽지 등을 줬고 이들이 모두 합격됐다"며 "부정청탁 속에 치러진 이번 시험이 무사히 넘어간다면 다음 이 자리에 오게 될 공무원도 이런 상황을 겪게 될 것이기에 바로 잡기 위해 알리게 됐다"고 밝혔다.
하남시는 C주무관의 폭로 이후 자체 조사를 벌여 부정 합격한 23명의 채용을 취소했다. 오 시장도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오 시장은 경찰에서 "지역 모임 단체에서 활동하는 관계자가 '사정이 딱한 사람들이고 전에도 산불감시원을 했다고 한다'며 13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건네길래 검토해보라고 해당 부서에 전달했을 뿐 채용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시의원 B씨 등은 해당 부서 과장이나 팀장 등을 통해 별도로 채용을 부탁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금품이 오간 정황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경찰은 말했다.
반면 산불감시원의 채용을 담당한 해당 부서 과장과 팀장 등은 "위에서 명단 등이 내려왔길래 '합격을 시키라는 '지시'라고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산불감시원 채용이 공채 형식으로 이뤄지는 일인 만큼 오 시장이 명단을 전달한 것이 직권을 남용해 담당 공무원에게 부당한 지시를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하남시가 부정 채용된 이들의 합격을 취소한 뒤 이들을 포함한 기존 응시자 53명을 상대로 재시험을 치렀는데 합격 취소자 23명 중 11명만 다시 합격했다"며 "청탁으로 합격했던 이들 중에 부적격자도 다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오 시장 등 7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또 하남시에 부정청탁으로 채용됐었던 23명에게도 과태료 부과를 통보할 방침이다.
하남시 관계자는 "검찰 등에서 연루된 공직자들이 문제가 있다고 통보하면 이들을 징계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남=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