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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물러날지 모르는데 …'자위대 명기 개헌' 진도 빼는 아베

중앙일보

입력

“이건 이상하지 않나. 매번 다른 안을 제시하다가 당 대회 직전이 되니 이번에 나온 안으로 정하자고 밀어부치는 건…”

자민당 '총리 지휘 필요한의 자위 조직'문안 정리 #"평화헌법에 손 대는 첫 총리"아베 희망사항 반영 #지지율 30%에 공명당과 야당 반대 '산 넘어 산'

22일 오후 3시간에 걸쳐 진행된 일본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 회의를 마치고 나온 비주류파 의원이 터뜨린 불만이다.

이날 자민당 회의에선 그동안 논란을 거듭해온 평화헌법 9조를 어떻게 바꿀지 조문이 사실상 확정됐다.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함으로써 '자위대 위헌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집념이 일단 첫 결실을 본 순간이었다.

모리토모 의혹으로 코너에 몰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9일 국회에 출석해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모리토모 의혹으로 코너에 몰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9일 국회에 출석해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이날 사실상 결정된 문안은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9조의 내용은) 우리나라의 평화와 독립,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의 자위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총리가 최고 지휘자인 자위대를 보유한다’는 내용이다.

‘전력불보유와 교전권 불인정’이란 기존 내용을 그대로 두면서도 “이 내용이 자위대 보유와 충돌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문안을 끼워넣는 방식이다.

아베 총리와 경쟁관계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 등은 그동안 “군대 불보유 조항을 그대로 두고 자위대를 명기하는 건 논리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럴려면 9조2항의 '군대 불보유, 교전권 불인정' 관련 조항을 아예 없애자는 입장이었다.

일본 헌법기념일인 2016년 5월 3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서 개헌파 집회가 열린 가운데 아베 신조 총리의 영상 메시지가 상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헌법기념일인 2016년 5월 3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서 개헌파 집회가 열린 가운데 아베 신조 총리의 영상 메시지가 상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군대 불보유’ 관련 조항을 완전히 들어낼 경우 개헌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더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해왔다. 어떤 형태가 됐든 ‘일본 역사상 가장 먼저 헌법에 손을 댄 총리’로 남고 싶은 게 아베 총리의 희망인 셈이다.

일단은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것으로 물꼬를 튼 뒤 2단계, 3단계 개헌을 통해 다른 조항에도 손을 대겠다는 게 아베 총리의 구상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7년 초당파 의원 모임의 신헌법 제정 추진대회에 참석해 헌법 시행 70주년인 올해 개헌의 역사적인 첫걸음을 내딛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지지통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7년 초당파 의원 모임의 신헌법 제정 추진대회에 참석해 헌법 시행 70주년인 올해 개헌의 역사적인 첫걸음을 내딛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지지통신]

 이달 25일로 예정된 당 대회를 앞두고 자민당 개헌추진본부는 이런 아베 총리의 뜻을 살펴 서둘러 조문 정리를 시도했다. 일부 비주류의 반대속에서도 “개헌추진본부 본부장에게 일임한다”는 식으로 어영부영 정리가 됐다. 이날 결정된 조문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아베 총리와 가까운 논조를 유지해온 산케이 신문조차도 23일자에서 “당내 반대파, 공명당, 야당…(개헌)장애물들 뿐”이란 기사에서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가장 먼저 아베 총리에겐 개헌을 밀어부칠만한 동력이 없다. 모리토모(森友)재단 특혜 의혹 관련 문서 조작 파문으로 내각 지지율은 겨우 30%를 넘기는 수준이다. 앞으로도 관련 악재가 줄줄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아베 내각이 언제 붕괴될 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임에도 총리는 자민당을 통해 개헌을 밀어부치고 있는 모양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평화헌법 9조 개헌 자체에 미온적이다.

또 모리토모 의혹과 관련해 '아베 정권 무너뜨리기'에 여념이 없는 다른 야당들이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에 선뜻 협조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또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한다해도 실제 개헌을 위해선 국민투표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

내각 지지율이 땅에 떨어진 가운데 국회와 국민투표를 넘어서야하는 아베 총리의 미션은 그야말로 ‘산넘어 산’수준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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