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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주총 첫 질문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슈퍼 주총데이 화두는 지배구조 개편

중앙일보

입력

“삼성전자가 지난해 최대 실적을 낸 것은 반도체 덕분인데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내세워 불안하다. 어떤 전략이 있나?”

23일 서울 서초대로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나온 주주의 첫 질문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우려였다. 이에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반도체 산업은 기술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아 단기간 투자로 기술격차가 줄지는 않을 것”이라며 “자만하지 않고 차별화를 계속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주주를 안심시켰다.

이날 다른 주주들도 적극적으로 마이크를 잡으며 맘에 담았던 말을 쏟아냈다. “정경유착이 없도록 신경쓰라” 같은 쓴소리도 나왔고, “청소기의 성능이 기대 이하” 같은 문제 제기도 적지 않았다. 회초리를 맞은 삼성전자 임원들은 최대한 오해를 풀 수 있게끔 적극적으로 답변에 임했다.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5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 모습 [중앙포토]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5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 모습 [중앙포토]

지난해 350여명이 참석한 삼성전자 주총에 이날은 500여명이 참석했다. 예상보다 인원이 많이 몰려 삼성전자 측이 마련한 빵 등 간식이 동이 나 현장 직원들이 당황하는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연루,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 등의 악재 속에 치러진 전년과 달리 별다른 해프닝 없이 무난하게 종료됐다.

이날 삼성전자는 최고재무책임자(CFO)직에서 물러난 이상훈 사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처음으로 분리하는 것으로 이사회의 독립성, 투명성 강화를 위한 조치로 풀이되고 있다. 또 외국인(김종훈 키스위모바일 회장)ㆍ여성(김선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ㆍ전문가(박병국 서울대학교 전기ㆍ정보공학부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해 이사진의 다양성ㆍ전문성을 높였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주식을 50 대 1의 비율로 액면분할하는 안건도 처리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풀려난 뒤 처음 열리는 주총이라는 점에서 그의 참석 여부에 관심이 쏠렸으나, 이 부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5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 모습 [중앙포토]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5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 모습 [중앙포토]

이날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SDIㆍKTㆍLGㆍ우리은행ㆍ롯데손해보험ㆍ코오롱ㆍ한진ㆍ대한항공 등 총 549개 상장기업이 주총을 개최했다. 이른바 ‘슈퍼 주총데이’다.  기업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지배구조 개편’이 주요 화두였다.

효성은 투명경영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조현준 그룹 회장이 맡던 이사회 의장직을 사외이사인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명예교수에게 넘겼다. 2016년 사외이사에게 의장직을 맡긴 삼성전기는 이번에도 사외이사인 권태균 전 조달청장을 신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정치권의 외풍에 휘둘린다는 지적을 받은 KT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승인했다. 회장 최종후보의 선정 주체를 종전의 CEO추천위원회에서 이사회로 바꾸고, 심사 기준에 후보의 기업 경영 경험을 명시하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바람막이’ 논란이 된 참여정부 인사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과 김대유 전 경제정책수석을 새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시민단체ㆍ노조원이 구호를 외치며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KT새노조는 논평을 통해 “KT에서 고질적인 CEO 리스크가 반복되는 가장 큰 원인은 내부 견제가 전혀 없는 거수기에 불과한 담합적인 이사회에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 의결권자문사의 반대 등으로 마찰을 빚은 경우도 있다. 롯데쇼핑과 롯데제과는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했다. 일부 기관에서 재선임 안건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지만 주총에서는 이견 없이 안건이 통과됐다.

금융당국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주총에서 3연임이 확정됐다.  KB금융 주총에서는 노조가 주주 제안한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의 사외이사 추천 안건과 정관변경 안건이 모두 부결됐다.

한 재계 단체 관계자는 “회사 측 안건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주총장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면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소액주주권 강화 등으로 이런 현상이 더욱 확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해용ㆍ김지아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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