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가스처럼 비집고 올라와 당을 흔드는 것 용납하지 않겠다”(21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바퀴벌레는 연탄가스에 죽느냐”(22일 정우택 한국당 의원)
6ㆍ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당 내홍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우택ㆍ나경원ㆍ이주영ㆍ유기준 의원 등 4선 이상 중진과 홍 대표의 대립이 노골화되면서다. 중진들은 지난 22일 모여 홍 대표의 리더십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앞으로도 정례 모임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당초 지방선거는 여권이 우세한 분위기 탓에 제1야당인 한국당이 내부의 결속을 중시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홍 대표 체제에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일단 똘똘 뭉쳐야한다는 정서가 여전히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 안팎에서 홍 대표에 대한 반발이 터져나오는 이유는 뭘까.
당 관계자는 “같은 당인데 서로 험한 말을 주고받다보니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 같다”며 “보수가 점잖다는 건 다 옛말”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과거 최고위원ㆍ중진의원 연석회의 개최를 요구하는 중진들을 향해 ‘부패로 수사받는 사람’ ‘원내대표 꼴찌한 사람’ 등이라 특정해가며 비꼬았다.
또 친박근혜계 의원들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는가 하면, 반발 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고름’, ‘암 덩어리’ 등 거친 표현을 내뱉었다. 이주영 의원은 “개별적으로 대화해 보면 같은 우려들을 하고 있지만, 쉽게 말하지 못한다. 상처 주는 당 대표를 피한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재선의 김진태 의원은 “대표로서 품위를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지쳤다. 6ㆍ13 지방선거시까지 모든 선거일정을 당 공식기구에 맡기고 대표는 일체의 발언을 자제해 주길 당부드린다”며 “안 그러면 다같이 죽는다”고 비판했다.
언쟁에 그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질 조짐이 나타나는 이유는 21대 총선 공천권 때문이다. 홍 대표는 지난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방선거가 끝나면 어차피 다시 한 번 당권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조기 전당대회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반홍 중진’들을 향해 “강북 험지로 차출”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정우택 의원은 “(지방선거 패배 시에도) 다음 총선까지 본인이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마각(馬脚 : 가식 속에 숨긴 본성)을 드러낸 것”이라며 “그럴 시간이 있으면 지방선거를 이끌어갈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반발했다.
한동안 중진들이 잠잠했던 요인 중에는 “차라리 홍 대표가 지방선거를 잘 치르고, 내년 6월까지 임기를 마치는게 낫다”는 판단도 있었다. 어차피 중요한건 21대 총선 공천권을 누가 행사하느냐이고, 내년쯤에는 리더십 교체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강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홍 대표의 당 대표 연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방선거 직후 전당대회를 하게되면 새 당대표의 임기가 2020년 6월까지라 21대 국회의원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다. 홍 대표는 이미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6+a곳 확보를 못하면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현재 최고위원 3명이 공석인 상황도 조기 전당대회의 명분이 될 수 있다.
중진들이 당내 여론을 주도하지 못하는 모양새라 결국은 초ㆍ재선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재선 의원은 “지방선거 승리를 명분으로 침묵하다보면 홍 대표 체제가 공고해질 것이고, 섣불리 나서서 ‘반홍 세력’으로 낙인 찍히면 공천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초선 의원은 “홍 대표가 다 잘한다고 할 순 없지만 일단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결속력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홍준표 진영을 단일대오로 묶어세울 뚜렷한 구심점이 없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